계묘년 새해 차례를 모시고 고향집 가듯 서둘러서 주과포를 챙기고 찾아뵌
엄마의 산소, 추석 때 갈아놓은 꽃이 온통 색이 바래서 다시 사다 꽂았더니
산소 앞이 화사해졌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동생도 찾아와 줘서 한참을 돗자리
깔고 앉아 우리 자매는 자식들의 일상을 생전처럼 엄마 앞에서 설대목밑에
떠나보낸 오빠이야기, 봄 무렵 결혼시킬 당신의 손녀딸 이야기까지 주저리
주저리 고해바치며 우리 자매는 울다가 웃다가 진상을 떨었다.
"얼마나 외로우면 아들 둘을 다 그렇게 빨리 데려갔냐고? 그래서 이제 당신
저승살이가 더 많이 행복해젔냐고?" 두 딸들의 눈물 섞인 하소연에 날씨마저
추위가 누그러지니 무덤 앞의 시간도 견딜만했다. 이 몸이 워낙 추위를 잘 타서
말이다. 부모 없는 손녀딸 고모들이 잘 챙겨서 결혼식 치른 후에 "신혼부부"
데리고 다시 인사 들리마 하고 그렇게 하직 인사 올리고 공원묘지를 떠나왔다.
언제나 엄마 산소에서 돌아서는 발길은 하전 하여라....
강동동 바닷가로 이사 온 지 어느덧 4년 차, 전에 살던 집은 동남향이라 하루종일
일조량이 풍부해 화초가 참 잘 자라서 한해도 거르지 않고 꽃들을 피워주어 큰
자부심을 가졌었는데, 이사 온 아파트는 동향에다 앞에 동이 가려서 더욱 햇살이
머무는 시간이 짧은 탓에 도통 화초들이 꽃 피우기를 거부 봉오리가 맺었다가도
지례 떨어지기 일쑤고 또 시들고 마르고... 해서 화초 키우는데 흥미를 잃어 갈
정도 더니 "우야꼬~ 참말로 우짠 일이고? 계발 선인장이 꽃을 피웠네." 로또 걸린
만큼 신이 나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 마 올해는 집안이 두루 만사 걱정 없이 즐겁고
편안하려나 보다. 흐미~ 좋은 거....
설날이 지나면 곧 내 생일이 된다. 그래서 항상 가족들에게 민폐다. 뭐 그렇다고
설날에 받았다고 생일날 들어오는 짭짤한 봉투를 거절할 용기는 없다는 말씀,
ㅋㅋㅋ 그래서 자식들은 저들 직장 때문에 주말로 앞당겨 생일을 위한 외식으로
민물장어구이집에서 거하게 대접을 받고 봉투도 챙기고, ㅎㅎㅎ
막둥이 친구까지 찾아와서 축하를 해주니 봉투 하나를 더 챙겼다. 완전 부수입(?)
ㅋㅋㅋ 이쁜 내 손녀딸들은 예쁜 목도리 세트를 선물로 챙겼더라.
아이고 귀여운 것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생일 당일엔 옆지기가 소고기 집으로
날 모시니 생일이 좋기는 좋다. 식사 끝나니 노래방까지 풀코스, 이 좋은 날 음주
가무는 기본이란다. 센스 짱! 오래오래 만수무강 하자며 오늘 반주는 백세주 대령이요,
ㅎㅎㅎ 울 옆지기 최고!~ 이래서 맨날 생일만 같아라 하는가 보다.
생일 기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정월 대보름이 찾아왔다. 코로나 때문에 중단되었던
달집 태우기 행사가 강동동 바닷가에서 삼 년 만인가(?) 암튼 그렇게 기다린 행사가
치러졌다. 오곡밥에 아홉 종류 나물밥 만들어 자식 놈들 집집마다 챙겨다 준 후에
행사장에 도착해 보니 그야말로 사람들로 인산인해 장사진을 이루었다.
사물놀이 패들의 흥겨운 공연도 있었고 무용수들의 선비춤도 사뿐사뿐 볼거리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한층 즐겁게 했다.
달이 뜨면 바로 달집 태우기가 시작될 줄 알았는데 웬걸 대보름달이 수평선위로
두둥실 신나게 떠오른 한참 뒤에야 달집 태우기 점화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적힌 소원 쪽지가 무수하게 매달린 달집이 신나게 불타
오르는 걸 보면서 나 또한 두 손 합장 가슴에 손을 모으고 달님을 향해 가족들의
일 년 한 해의 무병무탈 평안을 위해 소원 기도를 간절히 빌었다.
시니어 포럼 참여로 울 옆지기 간절곶을 다녀왔다. 월례 행사이다.
일상 다반사 울 옆지기도 늘 바쁘다. 나 없이 어디든 가면은 카톡으로
일일이 보고를 해대는 통에 덩달아 나도 바빠진다. 으이그~~
그렇지만 내가 무료할까 봐 사진 일기 거리를 쉬지 않고 만들어주니
컴퓨터 작업이 굼뜬 나는 늘 사진 일기가 밀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어쩌겠어? 퇴화해 가는 내 신체적 한계를 회춘시킬 명약도 명의도
없는 것을... 재촉할 이도 급한 일도 아니니 놀아가며 쉬어가며 생각
나면 짬짬이 컴퓨터 앞에 앉아 이 짓을 하는 나에게 그나마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되어 즐거움을 준다.
허리, 팔다리, 게다가 어지럼증까지... 한의원 가서 침을 맞다가 병원 가서 또 치료받다가
이래저래 몸도 마음도 만신창인 어느 날 점심은 나가서 먹자며 한 블록 건너 있는 해장국
집으로 데려가는데 제주도 사람이 사장이라더니 술마저 제주도 술이더라.
선지 해장국 한뚝배기 하면서 집 근처니 어떠겠냐며 연거푸 술잔을 권했더니 울 옆지기
얼굴 보소, 완전 홍당무 되었네. 술 약한 줄 알고는 권했지만 저렇게까지 얼굴애 술이 오를
줄이야. 낮술에 취하면 아비도 어미도 몰라본다는데 어쩌? 아이고 재미지다. 메롱~~
경제가 어렵다지만 어쨌거나 집 주변으로 음식점들이 하나둘씩 자꾸 개업을 한다.
그렇게 생긴 음식점이 순댓국집이다. 생긴 지 얼마 안 되어선가 손님들이 줄을 서서
대기까지 한다기에 우리도 하루는 또 점심 먹으러 순댓국 집을 들렸는데 진짜 빈자리가
없어 자리 나기를 기다려야했다. 건물주가 옆지기와 아는 사이라더니 식당 여주인과도
아는 사이였다. 안면 있다고 특별나게 서비스야 있겠냐마는 그렇게 또 인사를 나누었고
한참 기다려 나온 모듬전골 먹어보니 나쁘지 않았다. 가까우니 저녁에 한잔 생각날 때
다시 찾아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든 언니들과 함께하는 모임이라 코로나 때문이든 날씨 때문이든 만남이 브레이크가
걸릴 때가 많다 건강들을 생각해 가며 모임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모임이 조심스럽고
해서 달모임이지만 건너 뛸때가 많은데 몇 달 만에 다행스럽게 2월에 모임을 했는데 그래도
언니 한 분은 참석을 못했다. 가끔 만나다보니 항상 건강 안부부터 먼저 묻게 된다, 점심 후
바쁜 사람은 가고 한방찻집에 들려 잠시나마 쌓인 이야기를 나누며 없는 사람 뒷담화도 하면서
오래간만에 시원하게 웃기는 했다마는 언양 언니가 이사를 해야 되는데 사는 집이 빨리 안 나가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다. 더구나 혼자 사는데 늘 아픈데가 많은 언니라 항상 걱정이 된다.
혼자 사는 독거노인의 취약점이 절실히 느껴졌다. 내 친구는 그런 언니를 위로하며 우리는
다 함께 기분이 처연해졌다. 늙은 것도 사럽거늘 사람의 온정이 이리도 필요할 수가....
가끔은 나도 혼자라는 느낌이 들 때면 봄을 기다리는 여심이 되어 무심한 듯 얼굴에 분칠하고
셀카 놀이로 시간을 분탕질 치다 또 하늘을 본다. 이렇게 하루 가고 또 저렇게 하루가 가고.
울적한 마음이다가 서러운 마음이다가, 늙음이 서럽거늘 봄빛은 그리 고와서 매화꽃 붉은
송이 눈이 부신데 나는 이렇게 쓰일 곳 없이 늙어만 가니, 그렇게 일월을 보내고 이월도 보내고
어느새 또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춘삼월, 산에 들에 노랗고, 하얗고, 또 붉은 꽃들이 꽃단장
봄맞이로 양지쪽엔 파릇하니 쑥내음이 향기롭다. 아~ 서글픈 한숨 절로 새어 나오니 덧없는
그리움 하나 주름진 가슴속에 등불로 매달아 본다. 이제는 아득한 나의 청춘 나의 봄이여~~~
~~봄날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