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우산 2012. 4. 19. 13:32

 

    시간 /김귀수 내가 바쁜 것이 아니라 시간이 바쁘다 잠시 한숨을 돌렸는가 싶은 사이 어느새 너는 나를 이따만큼 밀쳐 두고 저만큼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어이상실의 당혹스러움인가. 굳이 냉정하게 외면하듯 스쳐가지않아도 나는 너를 잡을 능력도 재간도 없다. 엄마의 뱃속에서 탯줄을 잡는 순간부터 생명을 담보로 하고 소롯이 내 인생을 너에게 저당 잡혔다 자연의 사철처럼 인생의 계절을 하나씩 겪으며 사노라니 그렇게 녹녹하게 어물쩡 살아온 시간이 아니었기로 돌아보니 하마 싶어서 이제사 가끔씩 때로는 버림당한 기분이 든다. 때로는 왕따 당한 느낌이 든다. 한 치의 양보도 융통성도 없는 너를 두고 여태도 침묵하며 평화롭게 미소 지을 수 있음은 비굴한 복종이 아니라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는 섭리에의 도도한 순응일 뿐이다. 너는 누구에게도 사심이 없이 결과로는 만인에게 공평하기로 애시당초 시간을 거래하고 정복하는 영웅은 없었다 잘 살았기로 못살았기로 또 잘났기로 못났기로 오동나무 관을 싣고 상여 하나가 홍백의 붉은 꽃을 구슬프게 피우며 내 집 대문을 나서거든 남은 자들아 환경으로도 조건으로도 떠나가는 내 인생의 값어치를 논하지 마라. 아흔아홉을 가지고도 백을 채우지 못해 하나를 가진 자를 탐을 하는 어리석은 탐욕의 세상에서 행불행은 지극히 주관적이라 고로 나는 나름으로 한 세상을 잘 살고 가기로 잘 쉬었다 가기로 아마도 어느 때고 세상 하직의 호곡속에 만장의 나부낌이 쓸쓸한 가운 데도 떠나는 나는 기꺼우리라. 너는 나의 의무적인 담보주였지만 나는 너의 책임있는 채무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