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세월 변천사)

역사상 가장 길며 조용한 전쟁 ( 335년 전쟁 )

가을비 우산 2014. 1. 4. 17:31

역사상 가장 길며 조용한 전쟁 ( 335년 전쟁 )

 

335년 전쟁 (1651~1986)은 네덜란드와 영국 남서쪽 해안 바깥에 자리잡은 실리 제도 사이의 전쟁이다.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며, 총 한발도 쏘지 않아 사상자도 가장 적은 전쟁이다.

 

 

 

2. 역사상 가장 짧은 전쟁 ( 잔비바르 전쟁 )

 

영국-잔지바르 전쟁은 영국과 잔지바르간 1896년 8월27일에 벌어진 전쟁으로, 시작에서 끝까지 38분이 소요되어 지금까지 기록된 전쟁중에선 가장 짧았던 전쟁이다.

 

 

 

3. 역사상 최고의 업셋 전쟁 ( 이산들와나 전투 )

 

1879년 1월22일 오전9시, 아프리카 남부 이산들와나 평원을 가득 메운 2만여명의 줄루족 전사들이 1800여명의 영국군을 덮쳤다.

11배가 넘는 병력차에도 영국군은 총기와 신식 무기로 무장돼 있어 오히려 짧고 비용이 덜 드는 승리의 기회로 생각하였는데 오후 2시 시경 끝난 전투의 결과는 줄루족의 압승이었다.

 

영국군은 1,329명(원주민 기병대 471명 포함)의 전사자를 내고 쫓겨난 것이다. 몇 시간 뒤 인근 로크스 드리프트에서 영국군 120명이 또 다른 줄루족 2만 명과 사투를 벌인 끝에 물리쳤지만 이산들와나에서 창과 도리깨·방패로 무장한 군대에 패배했다는 사실은 영국은 물론 유럽에도 충격을 안겼다. 유럽 각국은 이때부터 연발소총과 기관총 개발/보급을 서둘렀다.

 

 

 

4. 역사상 가장 황당한 전쟁 ( 돼지 전쟁 )

 

1859년 6월15일 미국의 이주 지원법 ( Donation Land Claim Act )에 따라 소유권을 얻어 이주한 미국의 농민 라이먼 커플러 (Lyman Cutlar )가 자기밭에서 Large Black 품종의 돼지가 밭 작물의 뿌리를 파먹는 것을 보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매우 화가 나서 돼지를 쏴 죽였다. 그 돼지는 허드슨 베이 회사의 직원인 아일랜드계의 찰스 그리핀 ( Chales Griffin )의 것이었는데 그는 여러 돼지를 방목하여 키우고 있었다. 커틀러는 그리핀에게 10달러를 보상해 줄것을 제안했지만, 그리핀은 100달러를 요구했다. 커틀러는 배상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영국인들이 커틀러를 체포할 것이라고 위협하자 미국인 이주자들은 군사적인 보호를 요청하게 된다.

 

이 소식은 워싱텅과 런던에 들어가게 되는데, 미국은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으로 남북간의 갈등이 고조되던 상황이었다. 제임스 뷰캐넌은 윈필드 스콧을 브리티시 캐나다의 주지사와 협상하게 하여 위기를 해결하게 하라고 했다.

미국측과 영국측은 합의때까지 군사적인 점유 상황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그 기간동안 미국 정착민과 영국 정착민은 자유롭게 상대방측을 드나들고 교류 활동을 했다. 1871년에 이르러 영국과 미국은 미국의 주장을 인정하기로 협정을 맺어 분쟁이 끝났다.

 

 

 

5. 역사상 가장 배고픈 전쟁 ( 감자전쟁 )

 

일명 7년전쟁 (1756~1763), 오스트리아의 왕위 계승 전쟁때 프로이센에게 슐레지엔을 잃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잃어버린 슐레지엔 땅의 회복을 위하여 일으킨 전쟁으로, 유럽뿐 아니라 그들의 식민지까지 합세해 두 진영으로 갈려 싸운 대규모의 전쟁이었다.

 

당시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감자의 효용가치를 알고 농가마다 감자를 심게 하고 스스로도 늘 감자를 주식으로 삼는등 감자 생산을 장려했다. 식량난을 극복하여 부국강병을 꾀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는 7년 전쟁에서 식량부족과 오스트리아군의 군사력에 밀려 지구전으로 대처했다. 끈질기게 버텼지만 프러시아의 상황은 최악이라고 할수 있을만큼 불리했으나 러시아 정변을 계기로 공격으로 전세를 바꿔 기적적으로 승리할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승리의 원인은 다른데 있었다. 오스트리아군이 바바리아 지방의 감자를 전부 먹어버려 식량이 떨어지게 됐던 것이다. 더 이상 전쟁을 할수 없게 된 오스트리아군은 전쟁을 포기했다.

 

 

 

6. 역사상 가장 못된 전쟁(십자군 전쟁 5차 원정)

 

1212년 십자군에 대한 열기가 식어갈 즈음 프랑스의 한 양치기 소년이 수도원을 찾아와

“하나님이 저에게 소년 십자군을 이끌고 성지를 해방하라고 하셨어요.”라고 했다.

그리고 이 소년의 소식을 들은 3만 여 명의 소년이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함께 떠나게헸다.

 

소년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가기만 하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하지만 욕심 많은 배 주인은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이집트로 배를 돌렸다.

폭풍까지 만나 7척의 배 중 5척의 배에 탄 소년들만 살아남았다. 배 주인은 소년들을 노예로 팔아버렸다.

 

 

 

7. 역사상 가장 아찔한 전쟁 (축구 전쟁)

 

1969년 6월 15일 제9회 멕시코 월드컵을 위한 중남미 지역예선 2차전 경기에서 촉발, 1969년 7월 발발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4일간 전쟁. 일명 100시간 전쟁(100 Hour War)이라고도 함

 

1970년 제9회 멕시코 월드컵을 위한 13조 A지역 예선전에서 홈앤드어웨이(home and away) 경기를 가졌던 중앙아메리카의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응원단이 장외 난투극을 벌인 것에서 비롯되어 1969년 7월 양국 간에 전쟁이 발발한 사건이다. 이로 인해 양국의 외교가 단절되고, 결국 100시간 전쟁이라고 불리는 4일간의 전쟁으로 약 1만 7000명의 사상자와 15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8. 역사,신화상 가장 호색한 전쟁(트로이 전쟁)

바다의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남긴 황금 사과를 두고 헤라와 아프로디테(로마신화의 비너스), 아테나가 서로 다투다가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심판을 내려 아프로디테가 주인이 되었다. 그 대가로 파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해 주겠다고 약속한 아프로디테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의 사랑을 얻게 해 주었다.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는 형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 원정길에 나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9. 역사상 가장 유치한 전쟁(뽕나무 전쟁)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와 초나라 국경지대에 자생 뽕나무 밭이 있었고, 이 뽕잎을 서로  따려고 오나라와 초나라 동네들 누에치는 처녀들이 다투었다. 처녀들의 뽕잎 다툼은 오나라와 초나라의 전쟁으로 번졌고, 오나라 왕 "합려"는 초나라에 원한이 있는 "오자서"에게 군대를 주어 초나라를 박살내게 한다


초나라 수도를 점령한 "오자서"는 자신의 부친과 형을 죽인 초나라 전 왕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형틀에 묵은 뒤 300번 매질을 하는 원한서린 보복을 한다


뽕잎을 따려는 처녀들 다툼이 국가가 망하는 전쟁으로 번진것인데 이를 두고 후세사람들은 "뽕나무 전쟁"이라 부르게 된다.

 

 

 

10. 역사상 가장 뻔뻔한 전쟁(베트남 전쟁의 도화선 통킹만 사건)

 

1964년 8월 미국의 정보 수집함대가 베트남 근해의 통킹만의 공해상에서 공격을 받은 사건이다. 미국정부는 이것은 북베트남의 어뢰정에 의한 공격이라고 단정하여 북베트남의 군사시설을 보복 폭격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회는 대통령에게 무력행사를 자유롭게 실행할 권한을 부여하는 결의(통킹만 결의)를 채택하고 미국은 그 후에 본격적인 북베트남으로의 폭격과 베트남으로의 군사개입을 하게 된다.

1971년 미국방부 펜타곤 보고서에 의하면 이 전투는 미국측이 베트남전 개입을 위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베트남전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도 1995년 회고록에서 이 전투가 미국의 자작극이었음을 고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