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우산 2014. 3. 5. 14:30

 

    할미 아포? 둘째손녀 유림이는 음력 나이로치면 겨우 한달로 한살을 챙긴 설은 나이다. 우리집은 반드시 나이 계산을 음력으로 따지거든. 그렇다쳐도 두 돌을 넘겼는데 진짜 이녀석 말이 완전 늦네. 행동으로는 온갖 짓 다하면서 말이다. 지언니 유나 보다는 진짜 말이 늦는 셈이다. 안돼! 없다! 등 짧은 단어는 분명한데 문장 연결은 아직 영 아니올씨다다. 그래도 나름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저 통역도 안되는 홍알홍알 외계인 언어로 마구 수다중일 때는 온식구가 배꼽을 잡는다. 또 살다살다 요녀석처럼 특이한 버릇을 하는 아이는 듣도보도 처음인 게 있다. 아무리 자주 봐도 꼭 처음 만나면은 고개를 떨구고 흥! 하면서 시선을 외면 눈을 감고 비실비실 구석으로 달아난다 기어이 붙잡고 아는 체라도 하면 가재처럼 옆걸음을 걷다 안되면 풀썩 바닥에 배를 깔고 죽은 듯이 누워서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꼼짝 안는다. 식당같은 데서 외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란다. 특히 승강기를 타거나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좁비처럼 축 양팔을 늘어뜨리고 고개는 푹 쑥이고 경직된 자세로 마냥 서 있기도. 집에서도 유사한 행동은 변함이 없다 나 참... 그래서 저네 엄마, 아빠, 언니, 직계가족 말고는 다른 이들과는 좀처럼 친해지지가 않는다. 삼촌도, 고모도, 사랑스러운 조카가 넘 시크하고 도도하게 구니까 조카를 향한 짝사랑에 기껏 심술담은 애증?의 괴롭힘으로 자주 울리기도 한다. 울집에 다니러와도 꼭 현관에서 안들어 오겠다고 몇초는 지엄마 뒤에 숨어서 신발 벗기를 거절한다. 결국 비상책은 냉장고에 미리 챙겨놓은 먹거리로 꼬시는 길 뿐이다. "유림아! 할머니랑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가지러 가자" 라고, 녀석 주전부리 식탐이 강하거든. 그래도 비교적 신체 접촉이 잦은 나 할머니도 예외는 아니라서 이름을 불러 반응하기 까지는 적어도 일이십 분의 뜸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참 열없어서, 손녀딸 관심을 끌려고 매번 늙은 할머니가 애기 손녀딸에게 갖은 아양을 다 부려야 하다니 원, ㅎㅎㅎ, 식성도 아주 까탈스럽다. 과자도, 음료수도, 과일도, 반찬도 무조건 지가 선호하는 것 외는 입도 달싹 않는다. 안 무! 안 무! 이럻게 안 먹는다는 표현으로 도리질 입 다물고 두눈을 꽉 감아버리거든, 네 살이나 더 먹은 언니에게도 생긴 거와는 다르게 완전 터프하게 태클에 간을 보고 사사건건 엉겨붙는다. 엄마 아빠가 동생인 자기 편드는 걸 안다 역시 맞이는 타고나는지 큰손녀 유나는 동생의 대책없는 투정 잘도 받아주고 양보하고 참는다. 물론 가끔은 쫓아다니며 심술놓는 동생에게 끄뎅이 잡히고 울기도 하지마는 ㅋㅋ... 그래도 유림이가 기특한 건 간혹 볼일로 지엄마가 떼어놓거나 해도 금방은 숨 넘어 갈듯 악바리로 울다가도 엄마가 아예 안 보이고 그 순간만 넘기면 저를 챙길 사람이 할머니 뿐인줄 금새 눈치차리고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처연하게 티브이도 보고, 업어달라 또 냉장고에서 먹거리 꺼내달라 손을 잡아끌기도... 현실적응 상황판단이 아주 빠르다. 그만큼 울음 뒷끝도 짧고 잠버릇도 아주 순하다. 졸린 눈치면 뽀로로 베개만 챙겨주면 금새 쎄근쎄근이다. 그래도 잘 놀다가도 한번씩 슬그머니 현관으로 가서 "#&@◎⊙♧#?" 뜻모를 혼잣말로 엄마를 찾으면서 약간은 기가 죽어 신발을 혼자 신었다 벗었다,.. 그걸 몰래 지켜보면서 순간적으로 저걸 어미없이 내가 혼자 키운다면 짠해서 어쩔거나 싶어 가슴이 뭉클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엄마가 볼일 무사히 보고 집에 올 때까지 신통하게 잘놀고 버틴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없이 할머니와 잘 놀아놓고도 이젠 완전 친해졌겠지 싶어도 저네 집에 가서 하루라도 지나고 만나면 여전히 언제 봤냐며 흥! 하고 고개를 돌리고 안면몰수 쌩까는 시크한 울 똥강아지. ㅋㅋ 완전 귀여워, 그래도 내가 한번은 지랑 둘이 있다가 손에 상처가 나서 아프다고 울상을 짓자 가만히 다가오더니 어눌한 발음으로 꽃잎같은 입술을 상처에 대고 호! 불어주며 "할미! 아포?" 하더라. 흐미! 좋은 거 이 감동... 나 그날 완전 감정격동 숨 멎는줄 알았네, 그날 이후 나는 더욱 얄미운 손녀사랑 유림이 바라기가 되었다. 말 대신 행동으로 맡 태워 달라고 나를 주저 앉힌다거나, 뒷베란다에 과자 가질러 가자고 내 손을 잡아끈다거나, 업어달라며 바지가랑이를 잡아끈다거나, 언니를 밀어내고 내 무릎위에 앉을 때도, "짜랑해 할미!" 하면서 찰싹 내품에 안기면서 짤막한 두팔로 목을 감싸고 한쪽 어깨에 쫴끄만 얼굴을 가만 기대 작별 인사를 할 때도 "유림아! 할머니는 울 강아지 넘 귀여워 미쳐버려여" 시크하고 도도하고 결코 쉬운 아가씨가 아닌 울 손녀딸 유림이를 할머니가 넘넘 사랑해! 앞으로 예쁜 입술로 언어 표현이 익숙해지거든 낯가람 고만하고 심촌도, 고모도, 그 누구와도 살갑게 친하게 지내자. 아가씨가 넘 까칠하고 도도해도 매력 아니여. 할머니 또 아프면 호! 해주고 "할이! 아포?" 이렇게 위로해줘. 언니 넘 못살게 굴지말고 예쁜 목소리로 빨리 말문 틔우자. 유나야! 유림아! 똑같이 너들 사랑해... 내 아이를 낳고 기를 때는 농삿일과 시집살이로 자식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이제 할머니가 되어 자라는 손녀딸들의 재롱을 지켜보며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던 어른들의 애정 표현을 이 나이가 돼니 절실하게 공감을 하게 된다. 이래서 자손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