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향기

젊어도 보았네 늙어도 보았네

엄마라는 나무에 자식이라는 꽃을 피워 그 향기가..."

시인의 숲(명시의 향기~)

박두진

가을비 우산 2008. 12. 27. 14:30

도봉 - 박두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가곤

오지 않는다

 

인적 끊긴 곳

홀로 앉은

가을산의 어스름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 보나

 

울림은 헛되이

빈 골 골을 되돌아 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별과 밤은 오리니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청   산   도(靑山道)       -  박두진  -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넘엇 골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

산아, 푸른 산아.

네 가슴 향기로운 풀밭에 엎드리면,

나는 가슴이 울어라.

흐르는 골짜기 스며드는 물소리에,

내사 줄줄줄 가슴이 울어라.

아득히 가버린 것 잊어 버린 하늘과,

아른 아른 오지 않는 보고 싶은 하늘에,

어쩌면 만나도 질 볼이 고운 사람이,

난 혼자 그리워라. 가슴으로 그리워라.

티끌부는 세상에도 벌레같은 세상에도 눈 맑은,

가슴 맑은, 보고지운 나의 사람.

달밤이나 새벽녘,

홀로 서서 눈물어릴 볼이 고운 나의 사람.

달 가고, 밤 가고, 눈물도 가고,

틔어 올 밝은 하늘 빛난 아침 이르면,

향기로운 이슬밭 푸른 언덕을,

총총총 달려도 와줄 볼이 고운 나의 사람. 
푸른 산 한나절 구름은 가고, 골 넘어

골 넘어, 뻐꾸기는 우는데,

눈에 어려 흘러가는 물결같은 사람 속,

아우성쳐 흘러가는 물결같은 사람 속에,

난 그리노라.

너만 그리노라.

혼자서 철도 없이 난 너만 그리노라.

 

                             - <해>(1949) -

 

 

바다 - 박두진

 

바다가 와락

달려든다.

내가 앉은 모래 위에 ...... 

 

가슴으로,

벅찬 가슴으로 되어,

달려오는

푸른바다 ! 

 

바다는,

내게로 오는 바다는,

와락와락 거센 숨결.

날 데리러 어디서 오나 ! 

 

귀가 열려,

머언

바다에서 오는 소리에

자꾸만 내 귀가 열려.

  

나는 일어선다.

일어서며,

푸른 물 위로 걸어가고 싶다.

철벙 철벙

머언 바다 위로 걸어가고 싶다. 

  

햇살 함빡 받고,

푸른 물 위를 밟으며 오는

당신의 바닷길...... 

 

바닷길을 나도,

푸른 바다를 밟으며 나도,

머언, 당신의 오는 길로 걸어가고 싶다


  

하늘 /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기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봄의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봄볕처럼 마음이 익는다 
 


흙과 바람 / 박두진


흙으로 빗어졌음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리.
바람으로 불어넣었음 마침내
바람으로 돌아가리.
멀디먼 햇살의 바람 사이
햇살 속 바람으로 나부끼는 흙의 티끌
홀로서 무한 영원
별이 되어 탈지라도
말하리.
말할 수 있으리.
다만 너
살아생전
살의 살 뼈의 뼈로 영혼 깊이 보듬어
후회 없이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고.
 

 

산에 살어 -박두진(1916~1988)

 

먼 첩첩 열굽이 꽃골짜기 돌아든 곳

내가 온 곳을 따라 너도 오라 숙아

머리에는 고운 산꽃을 따 달어 이브처럼 꾸미고

한아름 붉은 꽃을 가슴에 안고

새처럼 사뿐히 달려오듯 내게 오라 숙아


화장도 생활도 풍속도 버리고

여기 먼 아무도 없는 골에

천년을 산에 살러

내게 오라 숙아

 

 

오월에/박두진  

 

푸른 한 점 구름도 없이 개인 하늘이 호수에 잠겼습니다.
호수는, 푸른 하늘을 잠근 호수는, 푸른 머언 당신의 마음
볕 포근히 쏘이고, 푸른 나뭇잎 하늘대고,
하느대는 잎 사이, 여기저기 붉게 피는 꽃 무데기.

오월은, 재재대는, 적은 새의 떼와 더불어,
푸른 호수 가로, 호수 가로, 어울리는데,
당신은, 오월, 이, 부드러운 바람에도 안 설렙니까.
소란한 저자에서 나무와 꽃 잎 사이,
비록 아기자기 대수롭지도 않은 풍경이긴 하나,
내 조용히 묻고, 조용히 또 대답할 말 있어,
기인 한나절을, 나 어린 소년처럼 혼자 와 거닐어도,
당신은, 하늘처럼, 마음 푸른 당신은 안 오십니다.

이제는, 머언 언제 새로운 날 다시 있어,
내, 어느, 바다가 바라뵈는 언덕에 와 앉아,
오오래, 당신을 기다리기, 하늘로 맺혀 오른 고운 피의 얼이,
다시, 저, 푸른 하늘에서, 이슬처럼 내려 맺어
나의 앞에, 붉은 한 떨기 장미꽃이 피기까지,
나는, 또, 혼자, 오오래 소년처럼 기달릴까 봅니다.

 


고향 (故鄕) / 박두진


故鄕 이란다.
내가 낫 자라난 故鄕 이란다.
그 먼, 눈 날려 휩쓸고, 별도 얼어 떨던 밤에,
어딘지도 모르며 내가 태여 나던 곳,
짚자리에 떨어져 첫소리치던,
여기가 내가 살던 故鄕 이란다.

靑龍山 옛날같이 둘리워 있고,
우러르던 예 하늘 푸르렀어라.
구름 피어 오르고, 송아지 울음 울고,
마을에는 제비 떼들 지줄대건만,
막쇠랑, 북술이랑, 옛날에 놀던 동무 다 어디가고,
둘 이만 나룻 터럭 거칠어졌네.

二十年 흘렀는가, 덧 없는 歲月......
뜬 구름 돌아 오듯 내가 돌아 왔거니,
푸른 하늘만이 옛처럼 포근 해 줄뿐,
故鄕은 날 본듯 하여,......
또 하나 어디엔가 그리운 故鄕,
마음 못내 서러워 눈물져 온다.

엷은 가을 볕.
외로운 산기슭에 아버님 무덤.
산딸기 빠알갛게 열매져 있고,
그늘진 나무 하나 안 서 있는곳,
푸른 새도 한마리 와서 울지 않는다.
石竹이랑 산菊花랑 한 묶음 산꽃들을 꺽어다 놓고,
-- 아버님 !......
부를 수도 울 수도 없이, 한나절 뷘산에 목메여 본다.
어쩌면 나도 와서 묻힐 기슭에 뜬 구름 바라보며 호젓해 본다. 

 

 

박두진의 시, 어서 너는 오너라  


●박두진(朴斗鎭)의 시 '어서 너는 오너라'(<청록집>1946)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살구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너이 오 오래 정드리고 살다 간 집, 함부로 함부로 짓밟힌 울타리에,

앵두꽃도 오얏꽃도 피었다고 일러라. 낮이면 벌떼와 나비가 날고 밤이면 소쩍새가 울더라고 일러라.

다섯 뭍과, 여섯 바다와, 철이야, 아득한 구름 밖 아득한 하늘가에, 나는 어디로 향해야 너와 마주 서는 게냐.

달 밝으면 으례 뜰에 앉아 부는 내 피리의 설운 가락도 너는 못듣고, 골을 헤치며 산에 올라, 아침마다 푸른 봉우리에 올라 서면,

어어이 어어이 소리높여 부르는 나의 음성도 너는 못 듣는다.

어서 너는 오너라. 별들 서로 구슬피 헤여지고, 별들 서로 정답게 모이는 날, 흩어졌던 너이 형 아우 총총히 돌아오고,

흩어졌던 네 순이도 누이도 돌아오고, 너와 나와 자라나던, 막쇠도 돌이도 복술이도 왔다.

눈물과 피와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오너라……. 비둘기와 꽃다발과 푸른빛 깃발을 날리며 너는 오너라…….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어서, 철이야, 너는 늴 늴 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실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뒹굴어 보자.

* 붕새 :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큰 새, 날개가 삼천 리가 되고, 한 번에 구만리를 난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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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정리
▶갈래 : 산문시, 서정시
▶성격 : 미래 지향적, 예언적, 열정적
▶어조 : 낭만적이고, 격정적인 어조

▶특징 :
① 감각적이고 비유적인 심상을 사용함
② 행의 구분이 없는 산문적 구성을 지님
③ 어구의 반복을 통해 간절한 염원을 표현함
④ 조국을 의미하는 다양한 상징어를 사용함.
⑤ 의성어(어어이, 늴늴늴)와 의태어(두둥실)의 사용으로 격정적, 낭만적 분위기를 조성함


▶구성 : ① 조국 광복의 상황 제시(제1연)        
② 헤어진 동포의 귀환 갈망(제2,3연)
③ 동포의 귀향에의 환호(제4,5연)
④ 민족 공동체적 삶의 재현 열망(제6연)
▶제재 : 복사꽃(한국적 이상향)
▶주제 : 조국 광복에의 열망


1. 이 시의 복사꽃 핀 마을이 상징하는 의미를 두 문장으로 쓰라.
▶일제로부터 광복된 조국을 의미하며, 그 곳은 또한 공동체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복사꽃 핀 마을은 무릉 도원(武陵桃源), 즉 이상향(理想鄕)을 가리킨다.
2. 이 시에서 '너'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80자 내외로 쓰라.
▶직접적으로는 철이를 가리키고 있으나, 그것은 곧 흩어져 유랑하던 우리 민족 전체를 말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참된 해방을 맞는 우리 민족을 상징한다.
3. 이 시에서 리듬감을 살리기 위해 사용한 수사법을 쓰라.
▶반복법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일제가 패망하기 직전에 쓴 작품으로 몰래 간직해 두고 있다가 해방된 이후 발표한 것이라 알려져 있다.

많은 시인, 작가들이 일제에 굴복하여 친일 문학으로 전향하거나 붓을 꺾었음에 비해, 오히려 박두진은

조국 광복의 미래에 대한 분명한 예감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러한 민족 해방에의 열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작품이 존재하기에 동시대의 친일 문학은 상대적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되었을 뿐 아니라,

친일 문학을 비판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가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박두진의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이 시도 산문시의 급박한 호흡을 이용하여 광복의 기쁨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특히, 쉼표를 자주 사용함으로써 산문율조의 긴 호흡을 차단시키고 있으며, 언어 반복의 리듬 감각을 통해,

고양된 감정이나 상승의 분위기를 조성시켜 읽는 이의 정서를 환기시켜 주고 있다. 박두진의 초기시가 대개

일제 치하에서의 민족적 비애나 절망 대신, 광복을 기다리는 밝고 희망적인 태도를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노래하는 데 비해, 이 작품은 구원의 세계, 곧 해방된 조국을 동양적 이상향인 '무릉 도원(武陵桃源)'으로 나타내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이 시의 주제적 핵심은 일제 치하에서 '다섯 뭍과 여섯 바다'로 흩어졌던 우리 민족이 다시 조국땅에 모여

민족 공동체의 삶을 재현하자는 결의와 소망으로 집약된다. 1연은 바로 그러한 재현의 터전이 되는 민족 해방의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오랜 세월 동안 '함부로 짓밟혔던' 조국 강토에 마침내 봄이 돌아옴으로써 복사꽃,

살구꽃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벌과 나비, 새들이 모여들게 된다. 2·3연은 '철이'라는 호칭으로 제유된 '흩어진

우리 민족'을 조국 해방의 터전으로 불러들이는 내용이다. 4·5연은 돌아온 겨레와의 감격적인 재회를 상상으로

보여 줌으로써 눈물과 피로 상징된 슬픔과 고통의 얼룩진 시대를 지나 푸른 깃발, 비둘기, 꽃다발이 가득한 희망과 평화,

영광의 조국땅으로 그들이 빨리 돌아오기를 갈망하고 있다. 마지막 6연은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민족 공동체가

다함께 누릴 행복한 삶의 모습을 나타내는 부분으로, 앞 부분은 1연에서 제시한 평화스럽고 생동감이 넘치는 상황을

반복해서 보여 주고 있으며, 뒷 부분은 민족이 한데 모여 춤판을 벌이는 환희의 모습을 격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 
 
박두진 [朴斗鎭, 1916.3.10~1998.9.16]

 

시인.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한 이후, 자연과 신의 영원한 참신성을 노래한 30여 권의 시집과 평론·

수필·시평 등을 통해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주요 작품으로 《거미의 성좌》 등이 있다.
  
호 : 혜산(兮山)
활동분야  :시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
출생지 : 경기 안성
주요수상 : 아세아자유문학상(1956), 예술원상(1976)
주요저서  :《거미의 성좌》 《박두진문학전집》 
 

   
1916년 3월 10일 경기도 안성에서 출생하였다.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됨으로써 시단에 등단하였다.

1946년부터 박목월(朴木月)·조지훈(趙芝熏) 등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한 이래, 자연과 신의 영원한

참신성을 노래한 30여 권의 시집과 평론·수필·시평 등을 통해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연세대·우석대·이화여대·

단국대·추계예술대 교수와 예술원 회원을 역임했다.

아세아자유문학상(1956)·삼일문화상(1970)·예술원상(1976)·인촌상(1988)·지용문학상(1989) 등을 수상했다.

저서에 《거미의 성좌》 《고산식물》 《서한체》 《수석연가》 《박두진문학전집》 등이 있다.

2001년 6월 프랑스 아비뇽 근처 고대 로마유적지로 알려진 베종 라 로망(Vaison la Romaine)에 시비가 세워졌는데,

대표작 〈해〉의 첫 구절이 앞면은 한글로. 뒷면은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있다.

 

<작품 활동>

 

초기의 작품에서는 참신하고 법열적인 경지에서 이상향에 대한 열렬한 승화를 추구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광복 후 발표한 그의 대표작 "해"를 전후하여 기독교적인 이상과 결부되어 그의 시의 방향과 특색을 뚜렷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첫 시집 <청록집>, 이어 제2시집 <해>, 제3시집 <오도>, 제4시집 <박두진시선> 등을 간행하였는데, 여기에 수록된 작품은

산, 바다 등의 자연과의 친화 와 교감을 산문적인 율조로 읊었으며, 조지훈, 박목월과는 달리 기독교적 이상과

윤리의식을 짙게 나타낸다.

6.25 사변 이후부터는 강력한 민족의식과 역사적 현실의식을 짙게 가지게 되었고, 특히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한 분노, 저항, 비판의 몸부림으로 발전하여 그의 작품에서도 격정, 분노, 저항의 모습 으로 바뀐다.

이런 경향은 후기 시집 <거미와 성좌>, <인간밀림>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산문 조의 리드 미컬한 호흡률,

청신한 시어가 풍기는 부드러운 정 조, 의성어와 의태어 등의 음성상지의 해조는 절정 에 이른 느낌이 있다.

그의 시는 소재와 의식 지향에 비추어 3기로 구분된다. <청록집>, <해>, <오도>, <박두진시선>을 현실 문제,

사회 문제의 상징적 실상으로 파악하여 역사 와 인류 부조리에 대하여 소극적인 저항을 보인 것이 제 1 기이다. 또한,

<오도>, <박두진시선>에서 엿보인 변화의 징후가 강력히 추진, 실천되어 역사 외 사회와 인류와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적극화한 <거미와 성좌>, <인간밀림>, <하얀날개>, <고산 식물>의 시대가 제 2 기에 속한다. <사도행전>,

수석열전>, <속 수석 열전>, <포옹 무한>의 제 3 기는 기도하는 영혼의 음성을 구상화하는 기독교 신앙 체험의

고백기다. 이들 시편은 세상의 지식과 도덕 기타 인간의 모든 소유를 넘어 겸손과 사랑에 복종하는 높은 신앙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우리 시사에서 이육사 유치환과 함께 남성적 음역을 뚜렷이 개척해 온 혜산 박두진이, 매우 드물게 존재론적 고독과

사랑의 비애를 노래한 초기 명편이다.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펴낸 ‘청록집’(1946년)에 실려 있는 이 아름다운 시편은

산새’도 ‘구름’도 ‘인적’도 모두 사라져 버린 어스름의 ‘가을산’에서 홀로 느끼는 쓸쓸함과 그리움을 담고 있다.


일찍이 소월은 “사랑하던 그 사람”(‘초혼’ 중에서)을 애타게 불러보았고, 윤동주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별 헤는 밤’ 중에서) 불러보았지만, 혜산은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보노라고 말한다.

그때 메아리는 산속을 깊이 돌아 오고, 붉은 해는 서서히 지고, 어스름은 어느새 밤으로 몸을 바꾼다. 이 깊은 밤에

시인은 “삶은 오직 갈수록 쓸쓸하고/사랑은 한갓 괴로울 뿐”이라고 말한다. 시인의 쓸쓸함과 괴로움을 촉발한 것은 ‘삶,

사랑’에 대한 의지였던 것이다. 이때 ‘그대’는 시인에게 끊임없는 ‘쓸쓸함’과 ‘괴로움’을 선사하는 존재이지만, 시인은

 그대’ 없이 홀로 겪어야 하는 “긴 밤과 슬픔”을 통해 ‘그대’를 향한 ‘삶, 사랑’의 깊이를 완성한다

사랑 가운데는 매혹과 소멸을 동시에 꿈꾸는 격정의 사랑이 있고, 부재를 받아들이면서 존재에 가닿으려는

그리움의 사랑이 있다. 이 가운데 이 시편은 현저하게 후자를 지향한다. 혜산 시편의 전경(前景)이 ‘해’의 밝고

역동적인 세계였다면, ‘도봉’의 쓸쓸한 그리움의 세계는 그 확연한 후경(後景)이었던 셈이다. 그 그리움의

진정성이 ‘가을산의 어스름’처럼 낮고 슬프게 번져온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대표시 : 애송시 '해' 

 

 

                                                             ▲ 일러스트= 잠산

 

  

혜산 박두진 선생님의 <묘지송>은 허무하고 부정적인 죽음의 이미지를

환하게 빛나는 향기로운 곳으로 묘사하여 죽음을 자연과 동화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세계로 표현한 시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점에서 <묘지송>을 살펴야 올바른 의미가 다가옵니다.

먼저, 의지적, 찬미적, 상징적 특징은 시 전체적으로 다 나타납니다.

하지만 더욱 부각되는 연이 있긴 하지요.

첫번째 질문과 두번째 질문에 대해 시를 보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꽃구름 속에 / 박두진 작사


꽃바람 꽃바람 마을 마다 훈훈히 불어오라 
복사꽃 살구꽃 환한 속에 구름처럼 꽃구름 꽃구름 화안한 속에 
꽃가루 흩뿌리어 마을마다 진한 꽃향기 풍기어라
추위와 주림에 시달리어 한겨우내 움치고 떨며 살아온 사람들
서러운 얘기  서러운 얘기  아 아 까맣게 잊고
꽃향에 꽃향에 취하여 아득하니
꽃구름 속에 쓰러지게 하여라 나비처럼 쓰러지게 하여라

  

묘지송 / 박두진

 

(글의 원저자: 네이버 54대 명예지식iN&문학디렉토리에디터 -  bird501입니다. 불펌방지 투명택)


북망(北邙)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의지적인 화자의 모습은 앞서도 말씀드렸듯 이 시 전체에서 엿보입니다. 죽어서 묻히는 무덤을 가리키는 북망을

금잔디 기름진데 있어 외롭지 않다라고 하듯, 죽음의 슬픔을 의지적으로 극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고, 4연에서

꽃과 새(자연)속에서 주검들이 누었다 하여 자연과 동화되어 죽음을 인식하는 (소멸의 슬픔을 극복하는)

의지적 자세가 나옵니다.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髑髏)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 이 부분에서 찬미적 자세가 나타납니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고 오히려 어둠속에서

하이얀 촉루(해골)이 빛난다. 썩은 시체의 냄새를 향기롭다 하여 재생과 부활의 이미지로 승화시켰습니다. 

질문자님의 해석도 일리가 있고요, 그렇게 뜻있는 것을 빛난다, 값졌던 것을 향기롭게 풍긴다고 한 것은

시각과 후각 등 감각적 표현을 통해 좀더 구체적하려 했던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뜻있는 것과 값졌다는 것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으로 막상 뭔가 다가오는 것이 적지 않습니까. 그러니 감각을 이용한 표현을

시에서 사용하게 된 것이죠.

 

 

살아서 섧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워 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

리.

--> 상징적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데, 그런 점에서 무덤을

북망이나 금잔디 기름진데로, 구원의 존재를 태양으로 다룬 것은 상징적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이 연은 죽음을 오히려 예찬하기까지 합니다. 죽음을 삶보다 더 행복하다고 여기는 역설적

인식을 하지요. 아마도 이 표현은 삶에의 강렬한 의지를 형상화하기 위해 쓴 것이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시인이 죽음을 좋아했다기보다 죽음을 받아들이되, 현실 삶에서의 고뇌 등을 이겨내려는

의지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글의 원저자: 네이버 54대 명예지식iN&문학디렉토리에디터 -  bird501입니다. 불펌방지 투명택)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

검들이 누었네.

--> 여기서 무덤은 봄볕 포근하다는 표현에서 보듯, 할미꽃, 멧새 등의 자연과 동화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은

역설적 공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시는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 영원한 생명에싀 희망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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