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향기

젊어도 보았네 늙어도 보았네

엄마라는 나무에 자식이라는 꽃을 피워 그 향기가..."

창작.(자작· 수필&산문&시... 836

울오빠

울오빠 / 김귀수 긴병에 효자 없다듯이 십수 년 병상 생활에 햇수를 꼽으며 지친 마음 아득하다 여겼더니 첫새벽 부음을 전해 들으니 모든 것이 찰나인 듯 허망하여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던가요 나는 어이 박복하여 남형제 마다 천수를 못 누리고 이 세상을 원통하다 절통하다 명치끝 마디마디 대못 박힌 슬픔을 남기고 떠나는지요? 가슴 찢는 비통함을 남기고 떠나는지요? 이 동생 흰머리 봉두난발 불원천리 달려와서 오빠의 영정 앞에 어푸러져 숨이 질듯 울기만 했네 먼 길 핑계 말고 생전에 면회 한번 더와볼걸 어이~어이~ 불쌍한 우리 오빠 저 세상에 가시거든 엄마도 만나고 동생도 만나서 이승의 모든 세상살이 까맣게 잊으시고 아픔 없이 슬픔 없이 웃는 얼굴로 복록을 누리소서 술잔에 눈물 담아 오빠의 명복을 빌..

선잠 깨는 아침~

선잠 깨는 아침~ / 김귀수 여명이 밤의 휘장을 걷고 동이 트는 이른 아침 마른기침에 침을 삼키며 선잠을 깨고 나면 계획 없이 맞이하는 하루의 무게에 쓴 하품만 나온다. 지우고 다시 쓰는 무한 반복 꿈의 설계로 주어지는 하루가 넘치는 정열로 짧기만 하더니 이제는 아무리 둘러봐도 황량한 벌판에는 바람에 쓰러져 우는 마른 풀잎들의 흐느끼는 소리만.... 세월의 안갯속에 방황하는 쓸쓸한 조락의 길, 고목이 되어가는 육신 위로 군더더기 진 삭정이로 온몸이 가려운데 어디쯤엔가 심어놓았을지도 모르는 무지개다리 밑의 행복나무 한 그루를 찾아서 세월의 숲 속을 휘청거리며 날마다 헤매어봐도 기억의 왜곡 속애 굴절지는 인생은 그저 눈물 나게 서럽다. 아~청춘도 가고 젊음도 가고 인생의 구비구비 숱한 사연 앞에 가슴이 굳어..

노부(老婦)여

노부(老婦)여 / 김귀수 창가에 턱 고이고 앉아 감은 듯 실눈 뜨고 먼산을 바라보니 무딘 걸음으로 여생 길 가는 검은 실루엣 어디쯤 가고 있을까? 오던 길 되돌아보니 어둠 속의 섬광처럼 삶의 애환들이 찰나로 스친다 좋은 일도 슬픈 일도 지난 것은 모두가 가슴 먹먹한 애증의 세월..... 녹슨 자전거의 체인이 돌아가듯 세월의 나이테가 삐걱 그리며 명치끝을 헤집고 뇌리를 친다 노부 (老婦) 여 마음이 못 견디게 늙기도 서럽거늘 눈물 나게 쓸쓸한 뒷모습 걸음마저 재촉할까? 남은 해가 짧다 하여도 바쁠 일 하나 없으니 이제쯤 세상일에 귀 기울이고 저무는 길도 쉬엄쉬엄 쉬어간들 어떠리..... 지는 해 서산마루에 노을빛 석양이 저리도 고우니 사위어 가는 우리네 인생도 차마 슬프도록 아름다워라

그냥 그리워하자

그냥 그리워하자 / 김귀수 잊었다 잊어버렸다 잊었을 것이다 기억의 언덕 저 너머에 타인의 이야기처럼 스쳐가는 사랑의 그림자이더니 아~상념은 무한하여라 그믐달이 사위어 다시 보름달로 떠오르듯이 짙은 안개를 헤집으면 언제나 그리움의 저 끝에 서있는 그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쓸쓸해지는 그리움이다 마음이 가는 대로 그냥 그리워하자

기도

기도 /김귀수 저무는 세월 끝에서 발길 어디로 가야 하나? 숨결 가쁘게 생각을 주저앉히면 황량한 들판에서 방황하는 나를 만난다 초원을 벗어난 지 이미 오래 뒤엉킨 시간들을 빗질을 하고 낡은 일기장을 넘기듯 세월을 넘기면 석양빛에 물드는 인생의 그림자가 길게 누웠다 서러운 날도 많았네 힘겨운 날도 많았네 한줄기 바람결에 가벼이 소매 끝 눈물 훔치고 미움도 원망도 맺힌 마음 내려놓으니 세상만사가 소롯이 한 세상 머물다가는 내 인생 여정의 과정이었을 뿐 어느 누구 탓이랴.... 돌아보니 이제는 애증의 세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마음을 적시는 상념의 눈물 흰머리 갈기처럼 날리어도 거친 손 가슴에 얹고 살포시 두 눈 감으면 사위어가는 내 삶의 뒷모습이 아름답기를.... 석양빛에 물 들어가는 내 인생이 아름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