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향기

젊어도 보았네 늙어도 보았네

엄마라는 나무에 자식이라는 꽃을 피워 그 향기가..."

시인의 숲(명시의 향기~)

김 지하

가을비 우산 2009. 2. 1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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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이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흐르락 소리 문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 소리 탄식 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무화과                                                    

 

돌담 기대 친구 손 붙들고
토한 뒤 눈물 닦고 코풀고 나서
우러른 잿빛 하늘
무화과 한 그루가 그마저 가려섰다.


내겐 꽃시절이 없었어
꽃 없이 바로 열매맺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친구는 손뽑아 등 다스려주며
이것봐
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그게 무화과 아닌가
어떤가


일어나 둘이서 검은 개굴창가 따라
비틀거리며 걷는다
검은 도둑괭이 하나가 날쌔게
개굴창을 가로지른다

 


 

 

 

거울 겨울 2                                             

 

설운 것이 역사다
두려운 것 역사다
두려워도 피할 수 없는 것 역사
아하
그 역사의
잔설 위에 서서 오늘 밤
별밭을 우러르며
역사로부터 우주를 보고
우주로부터 역사를 보고
잔설 속에서 아리따운 별밭을 또 보고.

 

 

 

 

 

길                                                         


걷기가 불편하다
가야 하고 또 걸어야 하는 이곳
미루어 주고 싶다.
다하지 못한 그리움과
끝내지 못한 슬픈 노래를
허나
길은 걸어야 하고 생각은
가야 하나 보다.


눈물이 흐른다.
보내야 하고 잊어야 하는 이곳
눈 있어 보지 못한 너와
입 있어 말 못하는 내가


허나
길은 걸어야 하고
생각은 가야 하나 보다.


 

 

 

 

들녘                                                        

 

무엇이 여기서
무너지고 있느냐
무엇이 저렇게 소리치고 있느냐
아름다운 바람의 저 흰 물결은 밀려와
뜨거운 흙을 적시는 한탄리 들녘
무엇이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느냐
참혹한 옛 싸움터의 꿈인 듯
햇살은 부르르 떨리고
하얗게 빛바랜 돌무더기 위를
이윽고 몇 발의 총소리가 울려간 뒤
바람은 나직이 속살거린다
그것은 늙은 산맥이 찢어지는 소리
그것은 허물어진 옛 성터에
미친 듯이 타오르는 붉은 산딸기와
꽃들의 외침소리
그것은 그리고
시드는 힘과 새로 피어오르는 모든 힘의 기인 싸움을
알리는 쇠나팔소리
내 귓속에서
또 내 가슴 속에서 울리는
피끓는 소리
잔잔하게
저녁 물살처럼 잔잔하게
붓꽃이 타오르는 빈 들녘에 서면
무엇인가 자꾸만 무너지는 소리
무엇인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소리.

 


 

 

 

서울길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돌아오리란
댕기풀 안스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팔러 간다


 

 

 

 

만남                                                        

 

밤이라도 이리 깊으면
밤이라 할 수 없겠지


앞길 뒷길 다 끊긴 곳에


문득 노여움처럼
난데없는 희망 한 오리.

 


 

 

 

백방 8                                                   

 

가지 말라
바다가 너를 삼키리라
가지 말라
바다가 너를 밟으리라
삼켜도 밟혀도
떠나가야 하는 바다
떠나가야 하는 바다
바다
네 이름
바다는 그대에게 내 그대에게
백방 뒤꼍 후미진 뻘밭 마지막 떠나던 목선
전 잡고 넘어지던 그대
그대에게 마지막 줄 것
이름뿐
마지막 줄
비단 주머니 속에 든 것은
바다뿐.

 

 

 

 

 

별빛마저 보이지 않네                                

 

아직은 따스한 토담에 기대
모두 토해버리고 울다 일어나
무너진 토담에 기대 우러른 하늘


아무것도 없는
댓잎 하나 쓰적일 바람도 없는
이렇게 비어 있고
이렇게 메말라 있고
미칠 것만 같은 미칠 것만 같은
서로서로 물어뜯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저 불 켠 방의 초라한 술자리 초라한 벗들


날이 새면
너는 진부령 넘어
강릉으로 오징어잡이, 나는
또 몸을 피해 광산으로 가야 할 마지막
저 술자리


서로 싸우지 않고는 서로 물어뜯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낯선 마을의 캄캄한 이 시대의 한 밤
토담에 기대 우러른 하늘
아아 별빛마저 보이지 않네


 

 

 

 

빈 산                                                     

 

빈산
아무도 더는
오르지 않는 저 빈 산


해와 바람이
부딪쳐 우는 외로운 벌거숭이 산
아아 빈 산


이제는 우리가 죽어
없어져도 상여로도 떠나지 못할 아득한 산
빈 산


너무 길어라
대낮 몸부림이 너무 고달퍼라
지금은 숨어
깊고 깊은 저 흙 속에 저 침묵한 산맥 속에
숨어 타는 숯이야 내일은 아무도
불꽃일 줄도 몰라라


한줌 흙을 쥐고 울부짖는 사람아
네가 죽을 저 산에 죽어
끝없이 죽어
산에 저 빈산에 아아


불꽃일 줄도 몰라라
내일은 한 그루 새푸른
솔일 줄도 몰라라.

 

 

 

 

 

사랑                                                      

 

꽃 피어도
나비
오지 않는다


봄의 적막이
속에 든다


춥고
외로와
사랑하고저 하나
내밀어 볼

없다


온 마음
맨몸이 죽도록
거리를 걷는다
피투성이로 걷는다
사랑하고저.

 


 

 

 

새                                                         

 

저 청한 하늘 저 흰 구름
왜 나를 울리나
밤 새워 물어 뜯어도 닫지 않을
마지막 살의 그리움
피만 흐르네 더운 여름날
썩은 피만 흐르네
함께 답세라 아 뜨거운
새하얀 사슬 소리여


날이 밝을 수록 어두워 가는
암흑속의 별밭
청한 하늘 푸르른 저 산맥 넘어
멀리 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뜨거운 햇살
새하얀 저 구름
죽어 너 되는 날의 아득함
아 묶인 이 가슴

 

 

 

 

새벽 두시                                               

 

새벽 두시는 어중간한 시간
잠들 수도 얼굴에 찬 물질을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
공상을 하기는 너무 지치고
일어나 서성거리기엔 너무 겸연쩍다


무엇을 먹기엔 이웃이 미안하고
무엇을 중얼거리기엔 내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럽다. 가만 있을 수도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새벽 두시다
어중간한 시간
이 시대다

 


 

 

 

생명                                                      

 

생명
한 줄기 희망이다
캄캄 벼랑에 걸린 이 목숨
한 줄기 희망이다


돌이킬 수도
밀어붙일 수도 없는 이 자리


노랗게 쓰러져버릴 수도
뿌리쳐 솟구칠 수도 없는
이 마지막 자리


어미가
새끼를 껴안고 울고 있다
생명의 슬픔
한 줄기 희망이다.

 

 

 

 

애린                                                      

 

땅 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 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땅 끝에 서서
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 숨거나
바람이거나, 구름이거나, 귀신이거나 간에
변하지 않고는 도리없는 땅 끝에
홀로 서서 부르는


불러 내 속에서 차츰 크게 열리어
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리다.
이내 작은 한 덩이 검은 돌에 빛나는
한 오리 햇빛
애린

 

 

 

 

 

중심의 괴로움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 밑으로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 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틈                                                         

 

아파트 사이사이
빈 틈으로
꽃샘 분다


아파트 속마다
사람 몸속에
꽃눈 튼다


갇힌 삶에도
봄 오는 것은
빈 틈 때문


사람은


새 일은 늘
틈에서 벌어진다


 

 

 

 

푸른 옷                                                      

 

새라면 좋겠네
물이라면 혹시는 바람이라면


여윈 알몸을 가둔
옷 푸른 빛이여 바다라면
바다의 한때나마 꿈일 수나마 있다면


가슴에 꽂히어 아프게 피 흐르다
굳어 버린 네모의 붉은 표지여 네가 없다면
네가 없다면
아아 죽어도 좋겠네
재 되어 흩날리는 운명이라도 나는 좋겠네
캄캄한 밤에 그토록
새벽이 오길 애가 타도록
기다리던 눈들에 흘러 넘치는 맑은 눈물들에
영롱한 나팔꽃 한번이나마 어릴 수 있다면
햇살이 빛날 수만 있다면


꿈마다 먹구름 뚫고 열리던 새푸른 하늘
쏟아지는 햇살 아래 잠시나마 서 있을 수만 있다면
좋겠네 푸른 옷에 갇힌 채 죽더라도 좋겠네
그것이 생시라면
그것이 지금이라면
그것이 끝끝내 끝끝내
가리어지지만 않는다면.


 
 


 


황톳길                                                   


(1)

황톳길에 선연한
핏자욱 핏자욱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었고
지금은 검고 해만 타는 곳
두 손엔 철삿줄
뜨거운 해가
땀과 눈물과 모밀밭을 태우는
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2)

밤바다 오포산에 불이 오를 때
울타리 탱자도
서슬 푸른 속이파리
뻗시디뻗신 성장처럼 억세인
황토에 대낮 빛나던 그날
그날의 만세라도 부르랴
노래라도 부르랴

 

(3)

대?에 대가 성긴 동그만 화당골
우물마다 십년마다 피가 솟아도
아아 척박한 식민지에 태어나
총칼 아래 쓰러져 간 나의 애비야
어이 죽순에 괴는 물방울
수정처럼 맑은 오월을 모르리 모르리마는

 

(4)

작은 꼬막마저 아사하는
길고 잔인한 여름
하늘도 없는 폭정의 뜨거운 여름이었다
끝끝내
조국의 모든 세월은 황톳길은
우리들의 희망은

 

(5)

낡은 짝배들 햇볕에 바스라진
뻘길을 지나면 다시 모밀밭
희디흰 고랑 너머
청천 드높은 하늘에 갈리던
아아 그날의 만세는 십년을 지나
철삿줄 파고드는 살결에 숨결 속에
너의 목소리를 느끼면 흐느끼며
나는 간다 애비야
네가 죽은 곳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


 

 

 

 

 

회귀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 모두
짧은 눈부심 뒤에 남기고
이리로 혹은 저리로
아메리카로 혹은 유럽으로
하나 둘씩 혹은 감옥으로 혹은 저승으로


가데
검은 등걸 속
애틋했던 그리움 움트던
겨울날 그리움만 남기고
무성한 잎새 시절
기인 긴 기다림만 남기고
봄날을 가데
목련은 피어
흰빛만 하늘로 외롭게 오르고
바람에 찢겨 한 잎씩
꽃은 돌아
흙으로 가데


가데
젊은 날
빛을 뿜던
아 저 모든 꽃들 가데.


 

 

 

 

不歸                                                      

 

못 돌아가리
한번 딛어 여기 잠들면
육신 깊이 내린 잠
저 잠의 저 하얀 방 저 밑 모를 어지러움


못 돌아가리
일어섰다도
벽 위의 붉은 피 옛 비명들처럼
소스라쳐 소스라쳐 일어섰다도 한번
잠들고 나면 끝끝내
아아 거친 길
나그네로 두번 다시는

 

굽 높은 발자국소리 밤새워
천장 위를 거니는 곳
보이지 않는 얼굴들 손들 몸짓들
소리쳐 웃어대는 저 방
저 하얀 방 저 밑 모를 어지러움

 

뽑혀나가는 손톱의 아픔으로 눈을 흡뜨고
찢어지는 살덩이로나 외쳐 행여는
여윈 넋 홀로 살아
길 위에 설까

 

덧없이
덧없이 스러져간 벗들
잠들어 수치에 덮여 잠들어서 덧없이
한때는 미소짓던
한때는 울부짖던
좋았던 벗들

 

아아 못 돌아가리 못 돌아가리
저 방에 잠이 들면
시퍼렇게 시퍼렇게
미쳐 몸부림치지 않으면 다시는
바람 부는 거친 길
내 형제와
나그네로 두번 다시는

 

 

 

 

 

오적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머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고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재벌), 국회의원(국獪의猿) 고급공무원(고급功無猿), 장성(長猩),

장차관(暲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놈이 모여

십년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쌌는다.

 

 

 

 

형님                                                     


희고 고운 실빗살

청포잎에 보실거릴 땐 오시구려

마누라 몰래 한바탕

비받이 양푼갓에 한바탕 벌여놓고

도도리 장단 좋아 헛맹세랑 우라질것

보릿대 춤이나 춥시다요

시름 지친 잔주름살 환히 펴고요 형님

있는 놈만 논답디까

사람은 매 한가지

도동동 당동

우라질 것 놉시다요

지지리도 못생긴 가난뱅이 끼리끼리
 

 

 

 

새 봄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좋아.

 

 김지하 시인

● 약력
  1941년 전남 목포 출생
▲ 1966년 서울대 미학과 졸업
▲ 1969년 문예지 '시인'에 '황톳길' 등 시 5편 발표 등단
▲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1964) '오적(五賊)'사건(1970) 민청학련 사건(1974) 등으로 8년여 투옥
▲ 1988년 문화운동단체 '율려학회' 발족
▲ 첫 시집 『황토(黃土)』(1970) 이후,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1982), 『검은 산 하얀 방』(1986), 『애린』(1986), 장시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6), 『별밭을 우러르며』(1989), 담시집 『오적』(1993), 『중심의 괴로움』(1994) 등의 시집이 있다. 이밖에도 대설(大說) 『南』(전5권, 1994년 완간)을 비롯해, 산문집 『나의 어머니』(1988), 『밥』(1984),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1984), 『남녘땅 뱃노래』(1985), 『살림』(1987), 장시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1991), 대담집 『생명과 자치』(1994),『사상기행』(전2권, 1999), 『예감에 가득찬 숲그늘』(1999), 강연 모음집 『율려란 무엇인가』(1999) 등의 다수의 저서가 있다.
▲ 로터스특별상(1975) 위대한시인상(1981) 크라이스키인권상(1981) 이산문학상(1993) 정지용문학상(2002) 등 수상




대학(서울대 미학과) 시절의 모습

[1970년 이전: 청춘의 격정과 '4월의 피']
8·15해방과 6·25전쟁기를 거쳐, 고교 시절 서울 유학길에 오른 시인은 4·19혁명, 5·16 군사쿠데타,

6·3 대일 굴욕외교 반대 시위―'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3선개헌 반대 등의 격동기를 맞아 투옥·석방·

지명수배·폐결핵 요양 및 1969년 시인 데뷔 등 숨가쁜 청춘기를 보내며 박정희 유신체제와의 정면 대결을 준비한다.


[1970년대: '1970년대를 죽음이라 부르자']

1970년대의 상징은 김지하였다. 담시 「오적」(1970) 필화 사건, 민청학련 사건(1974), 「苦行……1974」

(1975) 필화, 「양심선언」(1975) 등 줄기찬 저항으로 비상보통군법회의로부터 사형선고를 받는

등 8년여 동안 옥고를 치른다. 이때 시인은 '현 정권은 무너지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는 최후 진술을 한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출감된 후 가진 기자회견과 1975년 2월 25일부터
3회에 걸쳐 동아일보에 게재한 옥중기 『고행...1974』필화사건으로 출옥 한달만에
재투옥된 김지하 시인이 서울형사지법 법정에서 공판을 받고 있다.
이『고행...1974』필화사건과 옥중에서 집필한 『양심선언』필화사건으로 김지하 시인은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1980년 12월 20일, 수감 6년만에 석방되었다.



김지하 시인이 원주 자택에서 창작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

[1980년대: '애린'……생명 사상을 찾아]
1980년 말 5공의 형집행정지 조처로 출옥한 시인은 창작과 휴양에 전념하면서 수운, 해월, 강증산 등에서 연원한

 새로운 생명 사상의 체계적 심화를 위해 본격적인 '사상기행'을 시작한다.

시 창작 역시 담시 류의 탁류의 음악에서 『애린』류의 서정시의 세계로 향한다.
  [1990년대: 생명과 율려운동]
1990년대를 맞아 정신적 고투의 과정을 겪는다. 1991년 5월 분신 정국에 기고한 글의 파문은 '젊은 벗들'과의 10년 가까운

불화를 가져왔다. 시인은 「척분」 등의 시와 1999년 한 인터뷰를 '생명의 소중함'과 '반(反)-분신'의 필연성을 일관되게

 환기하고 있다. 율려운동과 생명문화운동은 이러한 시인의 신념에서 나온 사상 편력이다.


  
김지하 시인의 최근 모습


[2000년대: 생명+문화운동을 위하여]
이 시대의 아우라(Aura)는 있는가. 패러다임 부재의 세상에서 ‘거리의 미학자’를 자처한 시인은 민족미학의 교육과 함께,

‘모심[侍天主]’과 ‘살림’의 생명운동이야말로 실종된 아우라 재건을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시인은 서울발 문화 르네상스운동에 젊은 벗들이 함께 하기를 바라고 있다.


"어둠속 '흰 그늘'과도 같은 삶을 살기 위해서"


  1.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우선 3년 전에 쓴 한 편의 시, ‘詩(시)’라는 제목의 시로부터 그 대답을 시도해 보자.

짓지도
쓰지도 말라

이제
속에서 떨리고
밖에서 흐르라

넋이
넋이 아니거든

쓰지 말라

때로
창녀와의 풋사랑이

흰 그늘
빛나는 한 편의

詩.

  쉽게 말하자. 궁상도 청승도 허풍도 다 접고 한 마디로 말하자. 넋이 내 시의 기점(起點)이다. 넋이 무엇인가?
  넋은 사람이 죽었을 때 ‘날아오르는’ 혼(魂)이요 ‘흩어지는’ 백(魄)이다. 넋은 사람이 살았을 때, 안에서 ‘떨리는’ 영(靈)이요

 밖에서 ‘흐르는’ 생명(生命)이다.
  혼 없이 백 없고 백 없이 혼 없듯이, 영 없이 생명 없고 생명 없이 영은 없다. 영이 커질수록 생명은 복잡해지고,

생명의 복잡성이 촘촘해질수록 영의 깊이 또한 깊어진다.
  영이 안에서 ‘떨리고’ 생명이 밖에서 ‘흐르는’ 것을 일러 풍류(風流)라 한다.
  ‘떨리고 흐르는 넋’을 두고 ‘풍류도(風流道)’라 한다.
  “넋은 곧 도(道)인가?”
  그렇다.
  “도는 바로 넋인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넋의 풍류 탓이다.
  그 뿐.

  2. “너의 시는 억압, 투쟁, 고통, 외침, 저항, 혁명, 고문, 죽음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던가? 그것이 모두 넋의 시란 말인가?”

  그렇다.
  “왜?”
  그 극한적인 것들에 대한 내 넋의 떨리는 감응과 흐르는 반응이 곧 나의 시였다.
  “예를 들어라!”
  거의 모두 다 떨림과 흐름이 없을 때, 즉 나의 넋이 넋이 아닐 때 나는 짓지도 쓰지도 못하거나 아니면 태작을 썼다.

그러매 30년 시업(詩業)이 거의 적막하기까지 하다.
  “그 기념비(記念碑)는 무엇인가?”
  아마도 ‘황톳길’이나 ‘불귀(不歸)’나 ‘어름’이 아닐까?
  “그것은 아주 옛날인데 3년 전에 그 시론(詩論)을 반복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왜?”
  내 넋이 새로운 도전에 부딪쳐 전처럼 결연하지 못하고 방만했기 때문이다.
  “너의 시를 정치적 선동 선전시로 분류하는 사람도 있다.”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그럼 3년 전 앞뒤의 새로운 도전이란 무엇인가?”

  3. ‘애린’이다.

  그러나 나는 ‘애린’의 도전을 역시 내 넋의 떨림과 흐름으로 결연히 응전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창녀(娼女)와의 풋사랑이다.
  애린은 창녀다.
  창녀는 천민(賤民)이다.
  인간과 신(神)이 합일(合一)하는 순간의 기적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을 직업으로 하기 때문에 가장 참혹하게 저주받은 인간이다. 그러매 창녀와의 풋사랑은 고통에 찬 기적이다. ‘모순 어법’이다.
  “그것이 너의 새로운 문학이요 문학의 동기인가?”
  그렇다.
  “미학 또는 시학으로 그 말을 바꿀 수 있는가?”
  있다. ‘흰 그늘’이다. ‘그늘’은 삶의 신산고초요 생명의 복잡성이다. ‘흰 빛’은 초월적 ‘아우라’요 신령함이다. ‘

흰 그늘’이란 ‘신비의 과학’이나 ‘은총의 중력(重力)’처럼 ‘모순 어법’이다.
  “그것은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인가?”
  그렇다. ‘그늘’은 우선 우리 민족 전통예술 일반에 적용되는 민족 미학의 제1원리다. 그것은 윤리적이면서

미적인 패러다임이요, 전통적이면서 초현대적 패러다임이며 슬픔과 기쁨, 골계(滑稽)와 비장(悲壯),

이승과 저승 그리고 영성적이면서 생태학적인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그 패러다임은 일단은 미학적 계율에 불과하다. 그로부터, 그 안으로부터 새하얀 ‘아우라’,

동양적 표현으로는 신성한 ‘무늬’가 생성 계시될 때까지는.

  4. “너의 등단 배경을 말할 필요가 있다.”

  시인이기 이전에 나의 꿈은, 아직 확실치는 않았으나 일종의 ‘사드비프라’(인도 사상가 사르카르의 ‘행복한 길
운동’에서

 주체로 설정된 영적 혁명가) 혹은 일종의 ‘요기-싸르’(내면적으로는 수행자이자 외면적으로는 혁명가인 사람)이었다.
  명상과 변혁의 통일자, 혹은 ‘영적 혁명가’ 혹은, ‘삼ㆍ일신고(三ㆍ一神誥ㆍ단군이 겨레 지도자들에게 전한 가르침)식으로

 말하자면 ‘성통공완’(性通功完ㆍ성품을 도통하고 세상을 바꾸는 공을 이룸)의, ‘신선혁명가(神仙革命家)’를 꿈꾸었고

이곳 저곳을 찾아 헤맸다.
  동학(東學)에서 이것은 ‘시인(侍人)’ 즉 ‘모시는 사람’이니 ‘안으로 신령(神靈)이 있고 밖으로 기화(氣化)가 있는

사람’이라 칭한다. 안의 신령과 밖의 기화란 다름아닌 영의 떨림과 생명의 흐름이다.
  어쩌다 시인이 되었다. 시와 행동(行動)이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했다. 길흉(吉凶)을 점(占)치는 소발굽 같기도

하고 하나가 됐다 둘이 됐다 하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설화 같기도 했다.
  등단 전에 내 주변엔 ‘폰트라’(PONTRAㆍPOEM on TRASH, 쓰레기 위에 시를!)라는 사귐이 있었다.

여기서 어느날 한 여자 선배 왈, ‘네가 결혼하거나 연애를 하려면 반드시 사회적 지위가 있어야 하니 시인으로 문단에

등록해라’고 자꾸만 권유했다. 그래서 마지못해 등단했다.
  그런데 그 뒤의 나의 시가 과연 ‘폰트라’의 길을 갔던가?

  5. 거듭된 저항과 투옥으로,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된 피로감을 술로 풀다 풀다가 나는 지치고 병들었다.

내 자신이 쓰레기가 되어갔다.

  혹독한 ‘죽임’의 예감으로 나의 시는 일종의 ‘묵시’가 되기도 했으나 그 극단적인 시적 ‘반혼(返魂)’ 속에서 도리어

넋의 무거운 만가(輓歌)로, 영적 파탄으로까지 변해 갔다. 그 반환점이 곧 ‘애린’의 출현이다.
  그러나 애린은 ‘흰 그늘’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이제 내 앞에, 밑에, 틈에,

그리고 내 뒤에서까지 ‘흰 그늘’을 부름으로써 진정한 넋의 떨림과 흐름, 영과 생명의 풍류로 나아가고자

함이 지금의 내 삶과 내 시의 동기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바로 그것,
  넋의 풍류 탓이다.
  그 뿐.

  6. 내가 앓았던 그 오래고 오랜 질병의 한 끝에서 10여년 전에 나는 또 한 편의 시를 얻었다. 그 시 ‘속’으로부터

대답의 마지막을 갈무리해 보자.

솔직한 것이 좋다만
그저 좋은 것만도 아닌 것이

詩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

  ‘어둠’과 ‘햇살’!
  이 때 이미 ‘흰 그늘’은 왔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분열되어 있었다.
  확실한 미학적 의식으로 확대되고 심화된 과정은 4ㆍ19 직후인 스무 살 때의 아득한 흰 길의 한 환상, 민청학련 무렵인 서른 세 살 때의 우주에의 흰 길의 한 환상, 재구속되어 옥중에서 100일 참선에 돌입했던 서른 여덟 살 때의 흰 빛과 검은 그늘의 한 투시, 그리고 4년 전 율려 운동을 시작하던 쉰 여덟 살 때의 대낮의 뚜렷한 한 문자 계시를 통해서 왔다. 그리고 3년 전 가야(伽倻) 여행에서 점차 시학적 명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흰 그늘’의 길은 그 자체로서는 아득하다.
  지금 내게 있어 그 길은 우선 삶의 길을 뜻한다.
  목숨이 살아야 한다.
  그러나 영성적으로 살아야 비로소 넋이 넋다운 떨림과 흐름의 풍류도로 내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매 시는 내게 있어 일단은 하나의 ‘활인기(活人機)’다.
  ‘죽임이 가득한 이 세상과 이 넋의 지옥에서 ‘삶’과 ‘사람’과 ‘살림’을 가져올 하나의 ‘활인기’다.
  되풀이하지만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한 마디로 말하자. ‘살기 위해서’다.
  어찌 살려 하는가?
  이 길!
  나의 시, 나의 삶으로 가는 이 ‘흰 그늘’의 길!
  우주 저편으로까지 이어지는 이 ‘흰 그늘의 길’에 서는 것.
  나그네는 반드시 길에서 죽는다던가?
<한국일보>



김지하가 말하는 김지하 - '지하' 라는 필명에 대하여


5. 16 군사 쿠데타 뒤니까, 아마도 스물두 살 때였나 보다. 그때 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학교 앞에 ‘학림’이라는 음악다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다방에서 곧 나의 시화전(詩畵展)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가 여름이었다. 그때 내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인데 문단에 이미 같은 이름의 문사들이 여럿 있었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 개인 시화전을 여는 것은 마치 시집을 한 권 내는 것만큼 ‘준문단적’, 혹은 ‘준준문단적’ 사건이었는지라 아무래도 필명(筆名)이 하나 필요했던 것이다. 그랬다.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동아일보사에서 일하던 한 선배가 점심때 소주를 사줘서 실컷 먹고 잔뜩 취해가지고 거기서 나와 동숭동 대학가의 아지트였던 바로 그 음악다방으로 가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니 돈도 버스표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여름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술은 오를 대로 올라 비틀거리며 종로길을 갈지 자로 걸어오던 때다. 그 무렵 막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있었는데, 요즘에도 흔한 것이지만 길가에 자그마한 입간판이 주욱 늘어선 것이다. 다방, 이발소, 이용실, 뭐 그런 것들의 입간판인데 술김에도 괴상하게 여긴 것은 그 간판 위쪽에 다 똑같은 자그마한 검은 가로 글씨로 모두 한글로 ‘지하’라고 하나같이 써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하실에 다방, 이발소, 이용실이 있다는 얘긴데 왜 하필 그 글자만은 유독 똑같은 한글, 똑같은 검은 글씨로 맨 위쪽에 가로로 조그맣게 써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똑같은 것들이 여기도 ‘지하’ 저기도 ‘지하’ 저기만큼 가서도 또 ‘지하’, ‘지하’, ‘지하’! 그야말로 도처에 유(有) ‘지하’였다.

‘옳다! 저것이다! 저것이 내 필명이다!’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러해서 김지하의 지하 시대(地下時代)가 열리기 시작한다. 그 뒤로 내내 정보부 지하실과 경찰서, 유치장, 감옥, 지하 술집, 뒷골목과 허름한 싸구려 여관, 남의 집 문간방을 전전하거나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하기 일쑤인 스산하고 을씨년스런 지하시대 삼십여 년이 펼쳐진다.

작명가(作名家) 김봉수 왈, “이것도 이름이야? 감옥에 서너 번은 족히 가겠구먼!” 그랬다.

심지어 한창 지하시대에는 ≪워싱턴 포스트≫의 한 특파원이 내게 처음 악수하며 던진 말이,

“헬로! 미스터 언더그라운드 킴!” 이었으니까 뒷말은 할 필요가 없다.

‘언더그라운드’라면 혁명가를 뜻하는데, 모자라게도 그걸 은근히 즐길 때까지 있었으니 고생해도 싸다고 하겠다. 이름을 고치라고 충고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고집도 부렸지만 또 고쳐서 신문에 발표까지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결국엔 그것이 그것, 마찬가지로 나는 언제나 그대로 ‘지하’였다. 왜일까? 때가 차지 않아서였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과시 나의 필명 지하의 유행과 삶에서의 지하시대는 필연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름은 ‘위(位)’요 ‘궁(宮)’이라 ‘중(中)’ 즉 ‘마음’이 놓이는 ‘자리’를 말함이다. 일종의 ‘닻’의 뜻이다. 큰 바람이 불기 전에 벌레들이 자리를 옮기는 것은 그 때문이니 내게 큰 변화가 올 것이 틀림없다.

연초에 역(易)에 물으니 왈,

‘견군용(見群龍)’이라 했다.

천지가 요동하는 대개벽이다. 짐작대로다.

처신을 물으니 왈,

‘무수길(無首吉)’이라 했다.

‘목이 없으면 길하다’는 뜻이다.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 목을 숙이지 않으면 가차없이 잘려나간다는 뜻이니 그러매 크게 깊이 겸손해야 겨우겨우 길하다는 말로도 된다. 그만큼 내게 다가올 변화는 심각하고 그에 대한 대응은 어렵다는 것이리라.

또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연초 한낮 내 방에 그냥 홀로 무료하게 앉아 있을 때다. 문득 ‘노겸(勞謙)’이란 두 글자가 뇌리에 떠올라와 그 의미가 깊이 각인된다. ‘근로’와 ‘겸손’이니 언뜻 알아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앞으로 내 호(號)로 삼기로 작정하였다.

‘열심히 일하는 겸손’이요 ‘활동하는 무(無)’요 ‘아상(我相) 없는 노동자’, ‘노예 노동자’의 옛 뜻이기도 하다. 도대체 내가 그 동안 얼마나 게을렀으면 ‘근로’가 나오고 또 얼마나 오만방자했으면 ‘겸손’이 나오랴 싶었으니 앞날이 더욱 걱정되었다. ‘근로’와 ‘겸손’ 아니면 갈가리 찢겨나가 살 수조차 없는 운명이라는 내 맏아들 놈의 연초 카드점괘가 이미 나와 있었으니까.

물론 나도 안다. 『주역(周易)』의 겸괘(謙卦)는 노겸군자(勞謙君子)가 곧 타고난 천자(天子)이면서도 남의 밑에서 고개 숙여 근신하며 온갖 선행을 다 베푸는 그 아름다운 법(法)으로 결국 하늘을 차지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뜻에는 일말의 흥미도 없다. 나 같은 뼛속까지의 쌍놈, 민중에게는 도무지 안 맞는 뜻풀이기 때문이다. 그저 윤리적 패러다임으로서는 ‘근로’와 ‘겸손’일 뿐이니 내게 지금 결핍되어 있고 앞으로 그렇게 일관하여 고개 숙이고 살다 가지 않으면 큰 실수를 범할 것이 빈번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굳세게 견지할 따름이고, 미적 패러다임으로서는 곧 ‘활동하는 무(無)’의 뜻이리라! 언어작업에서 훨씬 더 여백(餘白)과 틈과 침묵을 살리고 설명을 없애며 말을 줄이는 대담한 소통성(疏通性)으로 ‘흰 그늘’과 ‘한’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고 삶의 내면에서 무궁무궁 저절로 살아 생성하게 하는 그런 텅 빈 창조력의 언어구조를 갖추고 닦으라는 가르침으로 일단 받아들일 따름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는 이제 작년 개천절에 공언(公言)한 대로, 아버님이 지어주신 이름, 꽃 한 송이 ‘영일(英一)’로 돌아가고자 한다. 내 인생과 민족 역사에 작고 소담하고 예쁜 삶의 꽃 한 송이만 피우고 가겠다는 조촐한 서원과 함께…….

그렇게 하여 결정된 것이 바로, 노겸(勞謙) 김영일(金英一)이다.

그런데 여러 친구들이 말한다. 영일은 너무 애이름 같으니, 그냥 한글로 ‘김노겸’이라 부르면 어떠냐는 것이다. 그 편이 무던하고 친밀감이 있어 좋다는 것이니 원컨대 부디 앞으로는 이 이름을 즐겨 불러주길 바란다.


  물과 구름의 도상학(圖像學)


― 金芝河의 서정시와 反映的인 물의 이미지


                                                                                       김수림

金芝河는 한국 현대시의 전통 속에서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물질적 상상력의 시인이다. 상승하는 불의 이미지는 거센 도전과 항쟁의 비장함이 주를 이룬 초기 서정시에서 특히 인상적인데, 이야말로 김지하가 지닌 물질적 상상력의 본류를 후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표현하는 핵심 圖像(icon)이다. 이러한 `불 이미지'의 지배적 성격은, 남진우가 생명의 불 영원의 빛 이라는 글에서 이미 통시적으로 섬세하게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김지하는, 불의 司祭인 것 못지 않게, 물의 詩人이다. 물 이미지는 김지하 시 전반을 볼 때 불 이미지만큼 폭넓은 분포를 보이지는 않는다. 출현하는 빈도 역시 적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물 이미지'가 지닌 의미 비중은 그 분포의 지엽성을 넘어서는 무게를 가진다. 김지하의 서정시에서 `물 이미지'는 지배적인 `불 이미지'를 때로는 견제하고 때로는 보완하는 구실을 한다. 때문에, 불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김지하의 투쟁적인 남성성을 이해하고, 아울러 그의 시적 변모를 측정하기 위해서도 물 이미지는 가늠자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강조할 필요도 없이, 물과 불은 서로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물질이다. 물과 기름은 섞여들지 않고 서로의 표면을 회유할 뿐이지만, 불과 물은 서로를 殺害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서로를 살해하는 두 물질이 한 시인의 세계를 역동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렇게 물과 불이 펼치는 혼돈스러운 모순과 相生의 변증법이야말로 김지하의 문학이 지닌 `역동성'의 상징적인 근원이 아닐까?1 그러나 `물과 불의 변증법'을 통해 김지하의 서정시편들을 조명하는 작업은 지금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이 글은, 실제 분석을 통해 `물의 이미지'가 김지하의 시 전반에 미치는 의미의 비중과 영향력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김지하의 시에서 불의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고 해서 물의 이미지가 사라지는 경우는 없다. 물의 이미지는 중기로 분류되는 애린 1부 이후부터 보다 활발히 드러나기 시작하지만, 첫 시집 黃土 에서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위적인 분류가 되겠지만, 김지하의 물 이미지는 대체로 사물을 비추는 자연의 거울로서 나타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후자의 경우에 물은, 불 이미지와 대립·모순되는 물질로서 제시된다. 그러나 좀더 지배적인 유형은, 물이 자연의 거울로서 드러나는 경우―더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사물을 자기 안에 되비추고 반영하는 작용 자체로서 드러나는 전자의 유형이다. 이 경우 `물'이라는 어휘나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반영의 이면에 감춰진 `물'이라는 물질을 충분히 도출, 또는 복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물 이미지는 단순히 병행하는 이미지群을 형성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소통적인 場 안에서,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통일된 의미 맥락으로 연결된다. 이 글의 제한적인 성격상 논의의 주안점은 반영적인 물의 이미지에 집중될 것이다. 반영적인 물의 이미지는 많은 경우 지극히 암시적인 형태로만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김지하에게 반영적인 물은 `숨어있는 물'이다.


내 오른팔을 호랑가시나무라고 불러라
내 왼팔을 사자봉 벼락바위라고 불러라
있다면
내게 힘이 있다면
한 팔로 너희들의 죽음을 막고
한 팔로 너희들의 삶을 껴안아주고 싶구나
무심한 구름이 용추다리 건너가는 내 발 밑에 와서
나의 힘없음을 비웃는구나.

― 용추다리 , 全文2



김지하의 용추다리 는 그의 시에 나타난 반영적인 물의 이미지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으리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요점적으로 말해, 용추다리 는 반영적인 물의 이미지가 시인에게 심리학적으로 얼마나 내밀한 深部에 자리잡고 있는가를 웅변해 주고 있다. 사실 용추다리 의 外觀이나 그것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일견 단순한 것이다. 시적 자아 또는 話者인 `나'는, "너희들의 죽음을 막고" "삶을 껴안아주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럴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욕망은 실현될 수 없는 욕망이며, 그런 의미에서 헛된 욕망에 불과하다, 라는 것이 이 시의 일차적인 내용이다. 그 행간을 확신과 비탄이 교차하는 정서가 채우고 있다.

하지만 시에 있어서만큼은, 표면적인 전언의 이해가 모든 의미화 과정의 深化와 그에 참여하는 독자의 정서적·심미적 체험을 보증하지 못한다. 심지어, 표면적인 전언과 의미화 과정은 서로가 서로를 배반하기도 한다. 좋은 시, 중층적인 의미화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시가 지닌 덕목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거듭거듭 질문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째서 화자는 구름이 자신의 힘없음을 비웃는다고 생각한 것일까?

처음 두 행의 명령어법이 주는 효과와 마찬가지로, 타인들을 위해서 그들의 삶과 죽음마저 관장하고 싶다는 화자의 욕망은 실로 거대한 것이다. 그 욕망은 인간으로서는 감히 꿈꾸기조차 불가능한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 욕망은, 초월적인 절대자나 적어도 신화적 영웅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는 욕망이다. 김현이 일컬었던 김지하의 `영웅주의적 경향'이란, 이렇게 거대한 욕망을 품고 있는 시인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그가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경계심을 다소 우회적으로 표현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과연 어떠한 체험이 그렇듯 거대한 욕망을, 그렇듯 손쉽게 꺾어 놓을 수 있었을까?

질문은 마지막 두 행에 집중된다. 화자는 구름이 자신을 비웃는다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한 이유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지 않다. 그 구절의 의미를 올바로 되새기려면 시의 전반부와의 대비가 불가피하다. "내 오른팔을 호랑가시나무라고 불러라 / 내 왼팔을 사자봉 벼락바위라고 불러라"라고 말하면서 화자는 거대한 자연물과 스스로를 동일시 하고 있다. 그의 명령어법은 거부하기 힘든 위엄을 느끼게 한다. 그는 이러한 명령어법에 의해서 초월적 존재를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웅변적으로 명령하는 화자의 상상적인 모습 역시 양팔을 치켜든 聖像을 연상케 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호랑가시나무와 사자봉 벼락바위라는 사물이 관찰자로 하여금 대상을 우러러 보게 만들고, 시각적인 위압감을 느끼게 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보다 심화된 분석은, 1·2 행의 이미지가 작은 것(오른 팔/왼 팔)에서 큰 것, 수직적인 높이를 지닌 것(호랑가시나무/벼락바위)으로 변화하는 은유적 움직임을 보여주며 그 과정에서 `팔'의 위치가 아래로 늘어뜨린 것이 아니라 위를 향해 치켜드는 역동적인 자세로 표현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어지는 3∼6행의 "죽음을 막고" "삶을 껴안"는다는 행위는, 앞서 나타난 `수직적인 상승'의 표상 작용에서 다시 수평적으로 확장되는 표상작용을 보여준다. 수직적인 높이와 수평적인 넓이를 함께 갖춘 나무·바위의 이미지는 이에 대한 아주 적절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1행에서 6행에 이르는 부분은 삶과 죽음을 주관하고 싶다는 화자의 욕망에 걸맞게 거대한 주체의 이미지를 표상한다. 그 거대함의 외적이며 동시에 내적인 크기는 간단히 `상승과 확산'이라는 이미지의 운동으로 규정된다. 여기에는 인간의 도덕적·정신적·육체적 한계들을 넘어서려는 높이에 대한 열망(상승)이라는 개인심리학이, 주변의 타인들을 보살피고 싶다는 바램과 만나고 있다. 또한, 외적인 세계에 맞서 싸우면서 위엄 어린 모습으로 현현하는 父性(男性性)이, 또 한 편으로는 타인의 삶을 자신의 품에 껴안는 母性(女性性)이 하나의 육체 속에 포개어진다.

이렇게 상승과 확산으로 규정되는 거대한 초월자의 이미지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7·8 행의 `구름'이다. 무엇에 얽매임 없이 세계를 부유하는 `구름'의 이미지는 동양적인 소요와 낭만주의적인 정신의 대표적인 상징의 하나로 남아있다. 우선 가능한 독법은 `구름'의 이미지를 낭만주의적인 상징으로서 이해하고, 그것을 다시 다리를 건너고 있는 화자와 대조시켜보는 것이다. 용추다리 의 후반부 두 행은 `화자가 다리를 건너가고 있는 중'이라는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해준다. 지상의 삶으로부터 초연한 채 자유롭게 天空을 부유하는 구름의 존재에 비추어 볼 때, 화자는 그가 가진 다리(脚)를 통해 地上에 묶여있고 무언가를 건너가기 위해 다리(橋)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그는 그가 욕망했고, 욕망의 이미지를 통해서 만들어냈던 인신이나 영웅이 아니다. 이러한 독법은 나름대로 유력한 의미들을 생산해내기는 하지만 비객관적인 지표에 기대어 있고, 지나치게 추론적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화자의 `자기 인식'에 대한 해설이 결여되어 있다. 자신은 人神이 아니며 하나의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자기 인식의 체험을 고려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용추다리 의 구름이 왜 천상에서 소요하지 않고 하필 화자의 발 밑에서 나타나는지를 답할 수 없다.

이 글이 줄곧 암시해온 바와 같이, 화자의 자기 인식의 근원에는 보이지 않는 `물'이 은밀하게 숨어 있다. `구름'이라는 단어가 독자에게 일차적으로 제공하는 心象은 하늘에 있는 구름, 즉 낭만주의자의 구름이다. 그러나 용추다리 에서 구름은 화자의 발 밑에 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화자의 발 밑에 와 있다는 말은, `물'의 이미지를 배제하고는 불가능한 진술이다. 시인은 어느 한 구석에서도 `물'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용추다리 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궁극적인 지표는 다름 아닌 `물'이다. 그 `물'은 명시적인 언표로서 존재하지 않지만, 의미의 행간에 숨어있다. "무심한 구름이 용추다리 건너가는 내 발 밑에 와"있다고 화자가 말할 때, 그는 하늘 위에 상승해 있는 구름이 아니라 물에 반영된, 즉 하강해 있는 구름을 보는 것이다. 그가 다리를 건너가는 도중이라는 상황은 이 시의 은밀한 심층에 `물'이 놓여있다는 사실을 보다 객관적으로 지지해준다. 자연의 거울인 `물'을 보는 체험은 언제나 내려다보는 체험이다. 따라서 그 하향적 시선은 호랑가시나무, 사자봉 벼락바위와 연관된 상향적 시선·욕망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거대한 욕망과 그만큼 거대한 초월자와 영웅의 이미지를 갈망하던 한 사람이, 어째서 그가 애초에 품고 있던 `높이에 대한 열망'(상승)과는 반대되는 하향적 시선(하강)을 취하는 것일까? 이러한 시선의 뚜렷한 엇갈림과 그에 따른 상반된 태도는 이 시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가 된다.

그가 건너가고 있는 `용추다리'를 추체험하는 독자에게 그 다리의 구체적인 실상이 과연 어떠한가에 대한 세세한 정보는 허락되어있지 않다. 그러나 토속적인 명칭과 산속에 있는 다리라는 사실이, 튼튼하게 만들어진 현대식 다리가 아니라 낡고 위태로운 다리라는 인상을 준다. 굳이 이러한 유추가 없더라도 다리는 그 높이 때문에 불안정하게 느껴지고 막연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물이다. 화자는 어쩌면, 다리의 높이와 그 불안정함에서 비롯하는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의 시선은 어째서 굳이 발 밑의 심연을 향하는 것일까? 융의 심리학은 인격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꿈과 무의식의 기능을 강조한다. 그의 이론은, 도덕적·정신적인 높이에의 극단적인 추구가, 언제나 추락에 대한 매혹과 두려움에 의해 보완·수정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3 용추다리 의 화자가 느꼈을지 모를, 다리 건너기의 불안은 공간적인 동시에 심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안 심리에 의한 정신적 균형 회복이라는 융 심리학의 해석적 전제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는 화자가 내려다보는 행위를 그 자체로 상향적 욕망의 반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은 욕망하는 바를 이루려는 맹목적 일념 속에서 욕망 자체를 반성하기도 어렵고 성취하기도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반성을 통한 욕망의 제동과 수정은, 당위적 상태에 대한 욕망과 현실적 제약 사이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노력일 수 있다. 生死의 반복으로부터 타인들을 보살피기 위해서 인간적 제약을 넘어선 힘과 높이를 바란다는 영웅주의적 욕망은 너무 크고, 너무 압도적이다. 그 욕망의 거대함이 그리는 심상에 비해 모든 인간 존재는 힘없고 초라하다.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는 행동은, 이 욕망의 위압과 맹목성으로부터 한 발 물러나 현실적 제약―"나의 힘없음"―을 돌아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수정하려는 고통스런 자기 확인의 행위가 아닐까.

이 하향적 시선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나의 힘없음"에 대한 성찰의 계기이다. `발 밑의 구름'이라는 언표의 이면에 숨어있는 물의 존재는 이 점에서 중요하다. 이 시의 화자가 과연 물에 비친 구름과 함께 초인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는 힘없는 자신의 영상을 내려다 보았는지는 단정짓기 어렵다. 그러나 반영적인 물 이미지는, 발 아래 물에 비친 구름의 영상을 보는 일이, 시적 자아에게는 자신의 범상함을 돌아보는 `자기 확인'의 중요한 계기였으리라는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발 밑의 구름'이라는 언표의 이면에 숨어있는 물의 존재는, 자연의 거울을 통한 화자의 `자기 확인' 체험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짐작을 가능하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반영적 물 이미지와 연관된 김지하의 시적 자아가 흔히 괴로운 자기 확인의 체험에 마주치고, 거기에서 자신의 제약과 한계를 통찰하는 성찰적 자아로서 나타난다는 점은 주의를 요한다. 가령 다음과 같은 초기작에서 물의 영상은 자신의 결함과 누추함에 대한 모멸감이 섞인 內省을 보여준다.

주무르고 벗기고 악을 쓰고 빨고 핧고
나는 고름 담긴
술 한 잔의 고름
시궁창 속 얼굴이
달과 내 오줌에 깨어질 때

― 뒷골목의 시궁창 까마귀 벌판 일부, (1: 122)



흔히 복수심·증오·恨 등의 비장하고 도전적인 정서를 수반하는 불의 상승 이미지가 중심인 작품에서와는 달리, 자연의 거울을 대하는 김지하의 시적 자아는 내성적인 면모를 강하게 보인다. 만약 그를 나르시스적 인간 유형이라 부를 수 있다면, 그때의 나르시스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한 탐미주의적 나르시스가 아니라, 당위(sollen)와 존재(sein)의 간극―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극복될 수 없는 간극을 통찰하고 괴로워하는 비극적인 나르시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깨달음이 인공의 거울이 아닌 자연의 거울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그와 연관하여 나타나는 것이 예의 고개 숙이는 행위―`하향적 시선'이라는 점이다. 초기 김지하가 치솟는 불의 미학을 통해 보여주었고 용추다리 에서도 나타나는 영웅주의적 태도는, 당위와 존재의 이런 괴리를 살피는 매개물인 `반영적 물'에 의해 견제된다. 그러나 물을 내려다 보며 얻은 깨달음은 너무 고통스러운 체험이다. 위의 인용에서도 보이 듯이, 물과 연관된 자기 확인의 체험은 흔히 비탄·자기 환멸 등의 정서를 낳는다. 그래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는 "도대체 자의식이 발달한 인간이 어찌 자기를 존경할 수가 있겠는가?"4라고 외친다. 용추다리 의 화자는 아직 깨달음의 고통으로부터 회복하지 못한 단계에 있다. 그는 여전히 욕망하는 바와 존재하는 바가 양분된 상태에서 괴로워한다. 시인이 자신의 고통을 점차 다스려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게 물-구름의 이미지를 다시 만나게 된다. 삼라만상·1 에서 그것은 놀라운 물질적 상상력을 통해 제시된다.

썩은 물도 물은 물
흐르는구나
하늘을 비추는구나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구나
아니
구름 한 점 어린 것 보니
돌아오겠다
깨끗이 되어
또 오고
또 돌아오겠다.

― 삼라만상·1 全文, (2: 243)



黃土 에 실린 비녀산 이라는 작품에서 시인은, "삶은 탁한 강물 속에 빛나는 / 푸른 하늘처럼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것"(1: 52)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때의 구름이 속한 하늘과 지상의 물은 푸른 광채와 탁함이라는 양극의 이미지로 분열된 것이었다. 그 분열은, 그러나 양쪽으로 찢겨진 별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만은 아니다. 좌절된 꿈 때문에 우리가 고개 떨굴 때, 누추한 현실을 증거하는 바로 그 탁한 물이, 지상의 반대편에 위치한 푸른 하늘과 구름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준다. 반영적인 물은, 우리가 그 앞에서 성취될 수 없는 욕망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기억해야 하는 聖所와도 같다. 시인이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이 땅의 삶이 누추하고 더럽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더러운 강물/현실 속에 망각할 수 없는 기억과 꿈으로서 푸른 하늘이 빛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좁혀질 수 없는 듯이 보이는 하늘과 지상의 거리를 거듭 확인하고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 괴로운 것이다.

비녀산 에서 푸른 하늘을 비추고 있는 강물의 이미지는, 지상과 천상의 행복한 합치가 아니라 대립과 분열의 심화이고, 그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삼라만상·1 에 이르러서 물과 하늘/구름의 이미지는 근본적으로 변화된 양상을 보여준다. 분열과, 그것에 대한 기억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던 더러운 물의 이미지는 이제, 순환과 생성의 그것으로 변모한다.

"썩은 물도 물은 물"이다. 그 물은 흐르고, 하늘을 비추고, 낮은 곳을 찾아 흘러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물질이다. 그것이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물의 속성이다. 그런데 시인은 곧이어 그 물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지고 있다. 이 부분의 내용을 단순화시켜 보면 다음과 같다.

a) 썩은 물은 흘러간다

b) 썩은 물은 하늘을 비춘다

c) 썩은 물은 돌아오지 않는다

d) 썩은 물에 구름이 어린다

e) 썩은 물은 (깨끗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물이 구름이 되고 그것이 대기의 순환을 거쳐 다시 비가 되어 내린다는 상식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 그러한 자연과학적 상식이 삼라만상·1 의 화자가 진술하고 있는 내용을 한층 수월하게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가 초등 교육의 수혜자라면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상식을 시적인 형태로 변형시켜 놓은 작품에 불과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썩은 물에 구름이 비친 모습을 본다는 것과, 그 썩은 물이 돌아오겠다는 진술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연관도 존재할 수 없다. 독자가 자신의 과학적인 상식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그 간격은 메워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텍스트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일차적인 독해에 있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대기와 물의 순환에 관한 과학적 상식이다. 시인의 직관은 그러한 첨언이 없이, 물에 어린 구름을 보는 행위와, 그 물의 회귀와 순환이라는 두 개의 문장을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어미 `-니'로써 연결짓는다. 물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다시 물로 變轉하는 과정에 대한 일체의 설명을 생략함으로써 시인은 결국 하나의 사실을 강조한다. 썩은 물과 승화된 구름은 궁극적으로 하나이다.

더러움과 부패 그리고 어두움과 무거움 등을 속성으로 하는 썩은 물의 이미지와, 깨끗함·맑음·가벼움·밝음 등을 속성으로 거느린 구름의 이미지는 우리의 감각적인 인식에서 대립·모순된다. 사물의 外觀에 바탕을 둔 인식은 결코 그 상반된 이미지들을 한 데 통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간단한 과학 상식은 썩은 물과 순백의 정화된 구름이 특정한 변화의 단계에 속해 있을 뿐이며 근원적으로 동일한 물질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면서도, 그것들이 서로 다른 밀도를 지닌 별개의 사물이라고 구별을 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물의 순환 과정에 대한 언급을 모두 생략하고 다만 그 물이 "돌아오겠다"는 말이 되풀이될 때, 그것은 시인의 직관이 물과 구름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언술의 조직 방법이다. 돌아온다는 動詞는 흘러간 것과, 지금 썩은 물 위에 어리는 것과, 또 미래에 이 땅에 내릴 것이 동일한 물질이라는 전제 없이는 불가능한 표현이다. 계속적으로 형태를 뒤바꾸는 물에 있어서 가고 돌아옴, 즉 `순환'은 결국 물이라는 물질의 내재적인 속성으로 표현된다. 지상의 썩은 물도, 하늘에 浮遊하는 구름도, 돌고 도는 순환의 궤도 안에 있는 하나의 자리이며, 동적인 순환성을 함께 나누어 갖고 있다. 그것을 직관적으로 깨닫는 물질적 상상력의 소유자에게 있어 구름은 곧 `가벼운 물'이다.

더러운 물과 대비되는 구름은, 심리학적으로 말한다면 `더러운 물'이 높은 차원으로 高揚되고 승화(Sublimation)된 形象, 아니 말 그대로 `昇華' 자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더럽지 않은 물이 과연 어디에 있을 것인가. 고양된 순수성의 상징인 구름은, 非육체적이고 지상의 욕망에 대해서 초월적이라는 점에서 낭만주의자들의 구름과 속성을 같이하지만, `가벼운 물'의 진정한 이미지가 비로소 확연히 드러나는 지점은 무거운 물·더러운 물이 변화한 모습이 바로 구름이라는 점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구름은 자기 고양과 단련을 거쳐 淨化된 썩은 물 외에 그 무엇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벼운 물'로서의 구름은 낭만주의자의 구름과는 상당한 거리에 놓여 있다. 부패하고, 더럽고, 무거운 육체를 지닌 썩은 물이 하나의 잠재적인 `질료'라면, 그것의 미래적 `형상'이 저 정화된 구름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흘러가는 썩은 물이 "깨끗이 되어 / 또 오고 / 또 돌아오겠다"고 말하는 화자의 어조는 분명히 관조적이고 아직 짐작의 형태에 머물러있음에도 낙관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승화의 과정은 거의 언제나 욕망의 전환과 지연, 혹은 쾌락의 억제와 같이 고통스럽고 부정적인 억압을 수반하지만, 삼라만상·1 에서 淨化 작용으로서의 승화는 그런 억압의 부정적인 내용과는 상당한 거리에 있는 작용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승화의 과정을 거친 썩은 물은 대기 속에 머물러만 있지 않고 지상으로 되돌아온다. 그것이 되돌아옴으로써 천상과 지상은 하나의 圓環 속에 놓이게 된다. 구름과 물이 다르다면 지상과 천상은 어떤 연계점도 없이 분열만을 영원히 계속할 뿐이다. 그 둘은 그저 단절된 세계에 불과하다. 일단 천상의 가벼운 물과 지상의 썩은 물이 동일시됨으로써만, 물이라는 물질의 속성에 하늘과 땅을 가로지르는 `순환'이라는 새로운 속성이 추가된다. 그 `순환'이야말로 썩은 물의 淨化를 가능하게 하는 운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물의 순환성을 깨닫는 일은, 현재에는 아직 잠재적인 모습으로만 머물러 있는 운동들을 미래와 과거로 확장된 시간의 지평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전후에 포개어져 있는 시간을 볼 수 있는 시인만이 물의 순환성을 깨닫고, 정화의 가능성을 예감한다. 삼라만상·1 의 화자는 썩은 물 속에 "구름 한 점 어린 것"을 일별함으로써 현재 속에 충일한 시간과, 거듭되는 `삼라만상'의 우주적 순환을 감득하고 있다. 물가에 자리한 시인은 썩은 물이라는 잠재적인 질료 속에서 정화된 구름이라는 미래태를, 그러나 동시에 발견하는 것이다. 그에게 언젠가 도래할 미래태(구름)는 잠재태로서의 질료(썩은 물) 안에 내재되어 있다. 그는 현재와 미래를, 현실과 꿈을 한꺼번에 생각하며, 그 안에서 존재하는 것(sein)과 당위적인 것(sollen)은 극적으로 동일성을 획득한다. 그러한 同時性과 共存의 가장 함축적이고 탁월한 상징은 `구름을 반영하는 썩은 물의 이미지'에 의해 표현된다. 그 반영적인 이미지는 `물과 구름'이 아니라 `물-구름'이다. 물과 구름을 별개로 여기지 않고 물-구름으로 인식하는 시인은 이제 "맑은 나도 더러운 나도 / 앞서거니뒤서거니 함께 / 내 안에서 걷고 있다"( 속살·1 )고 담담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더러움과 맑음이 순환하는 물의 궤적 속에 있는 등가적인 부분임이 밝혀진 후에야 그는 비로소 더러움 또한 분명히 자신의 일부이라는 것을 용인할 수 있다. 삼라만상·1 의 관조적이고 여유로운 어조는 이러한 관용의 자세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물-구름의 이미지가 없이, 또 그 이미지를 바라보는 행위가 없이, 과연 이 모든 깨달음과 예감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물-구름을 바라보는 행위가 얼마나 본질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가령 서로 짝을 이루고 있는 `b) 썩은 물은 하늘을 비춘다―c) 썩은 물은 돌아오지 않는다'와 같은 내용소의 짝이 `d) 썩은 물에 구름이 어린다―e) 썩은 물은 돌아올 것이다' 와 같은 내용소의 짝과 얼마나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가 하는 점을 한 번 눈여겨보면 명확해진다. 하늘만을 비출 때, 물은 돌아오지 않는다. 구름을 비출 때만이 그 반영적인 물은 다시 돌아올 물이 된다. 즉, 순환하는 물이 된다. 이것은 분명히 넌센스다! 하지만 그러한 넌센스와 몽상이 없이, 어떻게 우리는 썩은 물과 구름이 같고, 그것들이 자리를 바꾸며 순환하고, 마침내 "또 오고 / 또 돌아"올 것을 떠올릴 수 있겠는가. 구름을 반영하는 물의 이미지가 없이 천상과 지상, 당위와 존재는 하나의 圓環 속에 자리할 수 없다. 구름을 비추는 순간 반영적인 물의 이미지는 물-구름이 된다.

이제 땅에도 구름은 있고, 하늘에도 물은 있다. 前과학적인 정신에게 있어서 물과 대기의 순환에 관한 과학적 상식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썩은 물 속에 구름이 비치고 그 구름을 보면서 명상에 잠기는 일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썩은 물이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그 물은 사물을 더 훌륭하게 비추어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반영적인 물이 지닌 `부패와 반영의 정비례 법칙'에 의해서, "썩은 물도 / 물은 물"일 뿐만 아니라, 썩었으면 썩었을수록 그 물은 더 좋은 물이 된다. 물의 내부에서 진행되는 부패와 혼돈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그 물은 `구름'이라는 승화의 꿈을 더욱 뚜렷하게 반영하고, 시인은 그 앞에서 더욱더 자주 명상에 잠길 것이기 때문이다. 수면에 비친 구름으로부터 물의 순환성을 깨닫는 정신에게 있어, 승화의 가능성은 이미 순환하는 물의 내재적인 속성일 뿐만 아니라 썩은 물(반영적인 물)의 그것이기도 한 것이다. 시인의 사유 속에서 무화과 의 꽃이 열매의 내부에서 만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 / 그게 무화과 아닌가 / 어떤가 (2: 191)), 백색의 구름은 썩은 물의 진창 속에서 피어오른다. 김지하의 물 이미지는, 고양·정화·조화된 形象(구름/속꽃)을 저 혼돈스럽고 더럽기 짝이 없는 질료(물/과육) 속에 이미 잠재해 있는 가능성으로 파악하는 역동적인 사유의 한 유형을 열어 보여준다. 그것은 정태적인 현재를 가능성이 들끓고 있는 곳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역동적이며, 그 가능성을 썩음/더러움/혼돈/모순 등이 뒤얽혀 있는 `運動'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또한 역동적이다. 그러니 `혼돈과 더러움을, 부인하지도 두려워하지도 말라'. 누구보다도 혼돈과 더러움에 찌든 이 땅의 자아로 인해 괴로워해온 시인이, 당위와 존재 사이의 불화로 고통받아온 시인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당위-존재 간의 분열로 괴로워하던 비극적 나르시스는 이제 썩은 물(존재/질료)과 구름(당위/형상)의 화엄적 얽힘을 통찰함으로써 거대한 긍정에 도달한다. 나로서는 그러한 긍정의 강도와 수량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 긍정은 경이롭고, 섬찟하다. 이렇게 역동적인 긍정성은 마침내 逆旅 와 같은 절창 속에서 연꽃이라는 불교적 상징을 이용하여 불의 형상(붉은 연꽃)을 물이라는 질료(진흙창) 속으로부터 개화시키고, 양자 간의 친화와 잠재적인 하나됨을 이끌어내기에 이른다.


내 이마는 기억의 집

회한과 원한 가득한 진흙창

연꽃 한 송이 일찍 피어

이마를 가르며 붉게 벌어진다

― 逆旅 일부, (2: 302)



이로써, 반영적인 물의 이미지는 김지하의 역동적인 시적 旅程을 이해하는 중요한 圖像으로 자리한다. 김지하는 단일한 명제로 정의되기를 끊임없이 거부하는 현재 진행형의 시인이다. 초기에 도전적인 불의 상승 미학으로 세상과 격렬하게 맞부딪쳐온 청년 시인은, 반영적인 물의 이미지에 기대어 역동적인 갱신을 이루어낸다. 시인은 물을 굽어보는 자세로 초기의 영웅주의적 자의식을 수정하고, 지상적인 존재에 대한 긍정을 통해 당위와 존재의 분열을 감싸안기에 이른 것이다. 그 과정을 동행하는 물-구름이라는 도상은 끝내 逆旅 라는 상징적인 제명의 후기시에 와서, `불'-`물' 두 원소의 근원적인 대립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둘 모두를 감싸안는다. 모밀을 태우는 태양과 더운 피와 횃불이 지배하는 저 황토 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또 애린 이후의 변모가 보여주는 단절과 연속을 다각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구름과 반영적인 물의 도상은 김지하 시의 동력원의 하나로 주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반영적인 물의 상상력은 시적 원동력의 하나일 뿐이지 김지하가 도달한 궁극적인 해결점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다음과 같이 사뭇 절박한 어조로 "내 마음을 쳐라 / 불타는 노을이여 / (…) / 맑은 샘물에다 구원 청하는 / 산란한 내 마음 / 더욱더 산란하게 쳐라"( 쳐라 , 2: 283) 외치면서 물에 의지하는 자신을 불의 힘으로 부정한다  
-[동아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작]

 

 

       사진출처(내 영혼의 깊은 곳)

 

[김지하가 말하는 '지하'라는 필명]

 

5. 16 군사 쿠데타 뒤니까, 아마도 스물두 살 때였나 보다. 그때 나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미학과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학교 앞에 ‘학림’이라는 음악다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다방에서 곧 나의 시화전(詩畵展)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가 여름이었다. 그때 내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인데 문단에 이미 같은 이름의 문사들이 여럿 있었다. 당시 서울대 학생이 개인 시화전을 여는 것은 마치 시집을 한 권 내는 것만큼 ‘준문단적’, 혹은 ‘준준문단적’ 사건이었는지라 아무래도 필명(筆名)이 하나 필요했던 것이다. 그랬다. 그런데 그런 어느 날 동아일보사에서 일하던 한 선배가 점심때 소주를 사줘서 실컷 먹고 잔뜩 취해가지고 거기서 나와 동숭동 대학가의 아지트였던 바로 그 음악다방으로 가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니 돈도 버스표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걷기로 했다.

 

여름 한낮의 태양은 뜨겁고 술은 오를 대로 올라 비틀거리며 종로길을 갈지 자로 걸어오던 때다. 그 무렵 막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 있었는데, 요즘에도 흔한 것이지만 길가에 자그마한 입간판이 주욱 늘어선 것이다. 다방, 이발소, 이용실, 뭐 그런 것들의 입간판인데 술김에도 괴상하게 여긴 것은 그 간판 위쪽에 다 똑같은 자그마한 검은 가로 글씨로 모두 한글로 ‘지하’라고 하나같이 써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하실에 다방, 이발소, 이용실이 있다는 얘긴데 왜 하필 그 글자만은 유독 똑같은 한글, 똑같은 검은 글씨로 맨 위쪽에 가로로 조그맣게 써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 똑같은 것들이 여기도 ‘지하’ 저기도 ‘지하’ 저기만큼 가서도 또 ‘지하’, ‘지하’, ‘지하’! 그야말로 도처에 유(有) ‘지하’였다.

‘옳다! 저것이다! 저것이 내 필명이다!’

 

 

김지하 金芝河 (1941. 2. 4 ~      )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반체제 저항시인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명사상가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본명은 영일(英一)이며, 지하(芝河)는 필명으로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을 안고 있다. 1941년 2월 4일 전라남도 목포의 동학농민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원주중학교 재학 중 천주교 원주교구의 지학순(池學淳) 주교와 인연을 맺은 뒤 서울 중동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1959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가한 뒤,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항만의 인부나 광부 등으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하였다.

 

1963년 3월 《목포문학》에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시〈저녁 이야기〉가 처음으로 활자화되었고, 같은 달 2년 동안의 도피 생활을 청산하고 복학해 이듬해부터 전투적인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64년 6월 '서울대학교 6·3한일굴욕회담반대 학생총연합회' 소속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4개월의 수감 끝에 풀려난 뒤, 1966년 8월 7년 6개월 만에 대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번역과 학생 연극에 참여하는 한편, 1969년 11월 시 전문지 《시인》에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저항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 《사상계》 5월호에 권력 상층부의 부정과 부패상을 판소리 가락으로 담아낸 담시 〈오적〉을 발표하면서 단숨에 박정희 군사 독재 시대의 '뜨거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 〈오적〉으로 인해 《사상계》와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의 발행인·편집인이 연행되었고, 《사상계》는 정간되었다.

 

김지하는 이때 '〈오적〉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으나 국내외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석방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희곡 《나폴레옹 꼬냑》, 김수영(金洙暎) 추도시론 《풍자냐 자살이냐》를 발표하였고, 1970년 12월 첫시집 《황토》를 발간하였다. 1971년 이후에는 천주교 원주교구를 중심으로 계속 저항시 발표 및 저항운동에 전념하면서 연행과 석방, 도피 생활을 거듭하던 중 1974년 4월 체포되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1주일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1984년 사면 복권되고 저작들도 해금되면서 1970년대 저작들이 다시 간행되었고, 이 무렵을 전후해 최제우(崔濟愚)·최시형(崔時亨)·강일순(姜一淳) 등의 민중사상에 독자적 해석을 더해 '생명사상'이라 이름하고 생명운동에 뛰어들었는데, 이때 변혁운동 진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이 당시의 시집으로 《애린》 《검은 산 하얀 방》과 최제우의 삶과 죽음을 담은 장시집 《이 가문 날에 비구름》, 서정시집 《별밭을 우러르며》 등이 있다.

1990년대에는 1970년대의 활기에 찬 저항시와는 달리 고요하면서도 축약과 절제, 관조의 분위기가 배어나는 내면의 시 세계를 보여주었는데, 《일산 시첩》이 대표적인 예이다. 1992년 그 동안 써낸 시들을 묶어 《결정본 김지하 시 전집》을 출간하였고, 1994년 《대설, 남》과 시집 《중심의 괴로움》을 간행한 뒤, 1998년에는 율려학회를 발족해 율려사상과 신인간운동을 주창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민족문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70년대 내내 민족문학의 상징이자 유신 독재에 대한 저항운동의 중심으로서 도피와 유랑, 투옥과 고문, 사형선고와 무기징역, 사면과 석방 등 형극의 길을 걸어온 작가로, 복역 중이던 1975년에 아시아·아프리카작가회의로부터 로터스상을 받았고, 1981년에 세계시인대회로부터 위대한 시인상과 브루노 크라이스키상을 받았다. 위의 저서 외에 시집으로 《꽃과 그늘》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예감에 찬 숲 그늘》 《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편지》 등이 있다.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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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야기 
 
민주화의 상징, 그 곰삭은 영혼의 언어


김지하는 5.16 쿠테타 이후 30여년 간 계속되었던 군부독재 상황에 온 몸으로 저항하면서 시를 쓴 시인이다. 그 시절 그는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였고, 그의 삶과 문학이 하나의 신화에 값하는 것이었다. 그는 척박한 황톳길 위에 내동댕이쳐진 육신의 상처를 붙안고 그 상처보다 더 곰삭은 영혼의 상처를 추스리면서 살아야 했다. 몸은 '오적'들에 의해 억눌리고 귀와 입은 틀어막혀 신산스런 모독의 상처를 붙안은 채 견디거나 버티거나 저항해야 했던 나날들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삶이면서 삶이 아니었던 것, 차라리 죽음에 가까웠던 것이었다. 하고보니 그런 나날들의 중심에서 치열하게 살고자 했던 이들은 역설적으로 죽음에 대한 속절없는 체험을 해야 했다.


1970년 그가 담시 '오적'을 발표하자 공안당국은 그를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한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다섯 부류의 부정부패 분자들을 통열하게 풍자하면서 생존권마저 박탈당한 채 고통받고 있는 민중의 현실을 정면에서 문제삼은 일종의 단형 서사시가 바로 '오적'이다.

 

김지하는 그 누구보다도 가장 치열하게 실존과 문학 등 모든 영역에서 그런 체험을 감당해야 했던 시인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시 제목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현실을 견디고 문학으로 싸워야 했던 것이다. 여러 형태의 죽임과 죽음 체험의 절정에까지 이르렀던 그였다. 그 절정에서, 혹은 타는 목마름의 절정에서, 그는 죽임의 현실을 초극하고 진정한 '생명의 바다'를 지향하는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확실히 큰 시인다운 면모에 값한다.

 

시력(詩歷) 30년을 넘긴 그가 <중심의 괴로움>에서 이른 세계는 삶과 죽음의 세속적 갈림을 탈탈 털고 넘어선 해탈의 지평이요, 뭇 존재들이 서로 일으키고 피차의 경계를 허허로이 넘어서며 융섭하고 상생하는, 그래서 궁극으로 꽉찬 둥근 세계이면서 동시에 공(空)의 세계인 만공(滿空)의 우주이다. (우찬제/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 저서

 

첫 시집 『황토(黃土)』(1970) 이후,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1982), 『검은 산 하얀 방』(1986), 『애린』(1986), 장시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6), 『별밭을 우러르며』(1989), 담시집 『오적』(1993), 『중심의 괴로움』(1994) 등의 시집이 있다. 이밖에도 대설(大說) 『南』(전5권, 1994년 완간)을 비롯해, 산문집 『나의 어머니』(1988), 『밥』(1984),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1984), 『남녘땅 뱃노래』(1985), 『살림』(1987), 장시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1991), 대담집 『생명과 자치』(1994),『사상기행』(전2권, 1999), 『예감에 가득찬 숲그늘』(1999), 강연 모음집 『율려란 무엇인가』(1999) 등의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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