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은 계절에 관계없이 흰 옷을 선호하던 민족이라 빨래도 계절이 없어 추운 겨울에도 냇가에서 두꺼운 얼음을 깨고 빨래를 했으니 여성들은 생활의 반을 가히'빨래와의 전쟁'을 하며 살아 왔다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깨끗한 물이 시원하게 흘러가는 강변의 빨래터, 개울가 자갈밭에 말리고 있는 흰 빨래들이 강물과 강변의 깨끗함을 말해주고 있다.(조선 풍속 엽서 1920년대) 큰강 어귀의 샛강 빨래터.(1920년대) 서울의 어느 마을 안 계천의 빨래터.(1920년대) 물이 있는 곳은 모두가 빨래터.집 앞 작은 계천도 예외는 아니었다.(1920년대) 가지가 아닌 필로된 천은 넓은 들이라야 말리기가 좋다.(1920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