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향기

젊어도 보았네 늙어도 보았네

엄마라는 나무에 자식이라는 꽃을 피워 그 향기가..."

시인의 숲(명시의 향기~)

김소월

가을비 우산 2008. 12. 1. 16:37

※  김소월

 

김소월님의 약력,

△1902년 평북 구성 출생. 본명 정식(廷湜) △1915년 오산학교 입학. 이곳에서 시 스승인 김억(金億)을 만남

 △배재고보 졸업, 도쿄상대 중퇴 △1920년 <창조>에 ‘낭인의 봄’ 등 발표하며 데뷔

△1922년 <학생계>에 ‘진달래꽃’ 발표 △1924년 <영대>에 ‘산유화’ 발표

 △1925년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 발간 △1934년 12월 음독 자살할 때까지 154편의 시를 남김

 

◆'진달래 꽃' 작품 특성

이별에 대처하는 한국인 특유의 반어법

김소월을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으로 만든 작시법의 대표작 진달래(1922년 "개벽"에 발표....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히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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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어눌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눌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어스름인가,

애달피 고운 비는 그어 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얹아 우노라.

 

 

~~~~~~~~~~~~~~~~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番)……

저 산(山)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江)물, 뒷 강(江)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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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아침에

 

어둑한 퍼스렷한 하늘 아래서
회색(灰色)의 지붕들은 번쩍거리며,
성깃한
섭나무의 드문 수풀을
바람은 오다가다 울며 만날 때,
보일락말락하는
멧골에서는
안개가 어스러히 흘러 쌓여라.

아아 이는 찬비 온 새벽이러라.
냇물도 잎새 아래 얼어붙누나.
눈물에 쌓여 오는 모든 기억(記憶)은
피흘린 상처(傷處)조차 아직 새로운
가주난 아기같이 울며 서두는
내 영(靈)을 에워싸고
속살거려라.

그대의 가슴속이 가볍던 날
그리운 그 한때는 언제였었노!
아아 어루만지는 고운 그 소리
쓰라린 가슴에서 속살거리는,
미움도 부끄럼도 잊은 소리에,
끝없이 하염없이 나는 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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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저녁에

 

물은 희고 길구나, 하늘보다도.
구름은 붉구나, 해보다도.
서럽다, 높아 가는 긴 들 끝에
나는 떠돌며 울며 생각한다, 그대를.

그늘 깊이 오르는 발 앞으로
끝없이 나아가는 길은 앞으로.
키 높은 나무 아래로, 물 마을은
성긋한 가지가지 새로 떠오른다.

그 누가 온다고 한 언약(言約)도 없건마는!
기다려 볼 사람도 없건마는!
나는 오히려 못 물가를 싸고 떠돈다.
그 못물로는 놀이
잦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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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江村)

 

날 저물고 돋는 달에
흰 물은 솰솰……
금모래 반짝…….
청(靑)노새 몰고 가는 낭군(郎君)!
여기는 강촌(江村)
강촌(江村)에 내 몸은 홀로 사네.
말하자면, 나도 나도
늦은 봄 오늘이 다 진(盡)토록
백년처권(百年妻眷)을 울고 가네.
길쎄
저문 나는 선비,
당신은 강촌(江村)에 홀로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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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아미

 

진달래꽃이 피고
바람은 버들가지에서 울 때,
개아미
허리 가늣한 개아미는
봄날의 한나절, 오늘 하루도
고달피 부지런히 집을 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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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여울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히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約束)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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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여울의 노래

 

그대가 바람으로 생겨났으면!
달 돋는
개여울의 빈 들 속에서
내 옷의 앞자락을 불기나 하지.

우리가 굼벵이로 생겨났으면!
비오는 저녁 캄캄한
기슭의
미욱한 꿈이나 꾸어를 보지.

만일에 그대가 바다 난끝의
벼랑에 돌로나 생겨났다면,
둘이 안고
굴며 떨어나지지.

만일에 나의 몸이
불귀신(鬼神)이면
그대의 가슴속을
밤도아 태와
둘이 함께 재 되어 스러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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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저기 저 구름을 잡아타면
붉게도 피로 물든 저 구름을,
밤이면 새캄한 저 구름을.
잡아타고 내 몸은 저 멀리로
구만리(九萬里) 긴 하늘을 날아 건너
그대 잠든 품속에 안기렸더니,
애스러라, 그리는 못한대서,
그대여, 들으라 비가 되어
저 구름이 그대한테로 내리거든,
생각하라, 밤저녁, 내 눈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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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산(山)바람 소리.
찬비
뜯는 소리.
그대가 세상(世上) 고락(苦樂) 말하는 날 밤에,
순막집 불도 지고 귀뚜라미 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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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꿈꾼 밤

 

 

야밤중, 불빛이 발갛게
어렴풋이 보여라.

들리는 듯, 마는 듯,
발자국 소리.
스러져 가는 발자국 소리.

아무리 혼자 누어 몸을
뒤재도
잃어버린 잠은 다시 안와라.

야밤중, 불빛이 발갛게

어렴풋이 보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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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金)잔디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深深山川)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深深山川)에도 금잔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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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記憶)

 

달 아래 시멋 없이 섰던 그 여자(女子),
서있던 그 여자(女子)의 해쓱한 얼굴,
해쓱한 그 얼굴
적이 파릇함.
다시금 실 뻗듯한 가지 아래서
시커먼
머리낄은 번쩍거리며.
다시금 하룻밤의 식는 강(江)물을
평양(平壤)의 긴
단장슷고 가던 때.
오오 그 시멋 없이 섰던 女子여!

그립다 그 한밤을 내게 가깝던
그대여 꿈이 깊던 그 한동안을
슬픔에 귀여움에 다시 사랑의
눈물에 우리 몸이 맡기웠던 때.
다시금 고즈넉한 성(城)밖 골목의
사월(四月)의 늦어가는 뜬눈의 밤을
한두 개(個) 등(燈)불 빛은 울어 새던 때.
오오 그 시멋 없이 섰던 여자(女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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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하룻밤
나그네 집에
까마귀 가왁가왁 울며 새었소.

오늘은
또 몇 십리(十里)
어디로 갈까.

산(山)으로 올라갈까
들로 갈까
오라는 곳이 없어 나는 못 가오.

말 마소 내 집도
정주곽산(定州郭山)
차(車)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공중엔 길 있어서 잘 가는가?

여보소 공중에
저 기러기
열 십자(十字) 복판에 내가 섰소.

갈래갈래 갈린 길
길이라도
내게 바이 갈 길은 하나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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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언약

 

몹쓸은 꿈을 깨어 돌아누을 때,
봄이 와서
멧나물 돋아나올 때,
아름다운 젊은이 앞을 지날 때,
잊어버렸던 듯이 저도 모르게,
얼결에 생각나는 깊고 깊은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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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믿던 심성(心誠)

 

깊이 믿던 심성(心誠)이 황량(荒凉)한 내 가슴 속에,
오고가는 두서너
구우(舊友)를 보면서 하는 말이
이제는, 당신네들도 다 쓸데없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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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촉(燭)불 켜는 밤

 

꽃촉(燭)불 켜는 밤, 깊은 골방에 만나라.
아직 젊어 모를 몸, 그래도 그들은
해 달 같이 밝은 맘,
저저마다 있노라.
그러나 사랑은 한두 번(番)만 아니라, 그들은 모르고.

꽃촉(燭)불 켜는 밤, 어스러한 창(窓) 아래 만나라.
아직 앞길 모를 몸, 그래도 그들은
솔대 같이 굳은 맘, 저저마다 있노라.
그러나 세상은, 눈물날 일 많아라, 그들은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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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1)

 

닭 개 짐승조차도 꿈이 있다고
이르는 말이야 있지 않은가,
그러하다, 봄날은 꿈꿀 때.
내 몸에야 꿈이나 있으랴,
아아 내 세상의 끝이여,
나는 꿈이 그리워, 꿈이 그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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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2)

 

꿈? 영(靈)의 헤적임. 설움의 고향(故鄕).
울자, 내 사랑, 꽃 지고 저무는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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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길

 

물구슬의 봄 새벽 아득한 길
하늘이며 들 사이에 넓은 숲
젖은 향기(香氣) 불긋한 잎 위의 길
실그물의 바람 비쳐 젖은 숲
나는 걸어가노라 이러한 길
밤저녁의 그늘진 그대의 꿈
흔들리는 다리 위 무지개 길
바람조차 가을 봄 걷히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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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꾼 그 옛날

 

밖에는 눈, 눈이 와라,
고요히 창(窓) 아래로는 달빛이 들어라.
어스름 타고서 오신 그 여자(女子)는
내 꿈의 품속으로 들어와 안겨라.

나의 베개는 눈물로
함빡히 젖었어라.
그만 그 여자(女子)는 가고 말았느냐.
다만 고요한 새벽, 별 그림자 하나가
창(窓)틈을 엿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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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으로 오는 한 사람

 

나이 차라지면서 가지게 되었노라
숨어 있던 한 사람이, 언제나 나의,
다시 깊은 잠속의 꿈으로 와라
붉으렷한 얼굴에
가늣한 손가락의,
모르는 듯한 거동(擧動)도 전(前)날의 모양대로
그는
야젓이 나의 팔 위에 누워라
그러나 그래도 그러나!
말할 아무것이 다시 없는가!
그냥 먹먹할 뿐, 그대로
그는
일어라. 닭의 홰치는 소리.
깨어서도 늘, 길거리에 사람을
밝은 대낮에
빗보고는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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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나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苦樂)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怜悧)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스랴.
제석산(帝釋山)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
무덤에 풀이라도 태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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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들가에 떨어져 나가 앉은 메기슭
넓은 바다의 물가 뒤에,
나는 지으리, 나의 집을,
다시금 큰길을 앞에다 두고.
길로 지나가는 그 사람들은
제각금 떨어져서 혼자 가는 길.
하이얀 여울턱에 날은 저물 때.
나는 문(門)간에 서서 기다리리
새벽새가 울며 지새는 그늘로
세상은 희게, 또는 고요하게,
번쩍이며 오는 아침부터,
지나가는 길손을 눈여겨보며,
그대인가고, 그대인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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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樂天)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맘을 그렇게나 먹어야지,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꽃 지고 잎 진 가지에 바람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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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나라 땅

 

돌아다 보이는 무쇠다리
얼결에 띄워 건너서서
숨 고르고 발 놓는 남의 나라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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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촌(城村)의 아가씨들
널 뛰노나
초파일 날이라고
널을 뛰지요

바람 불어요
바람이 분다고!
담 안에는
수양(垂楊)의 버드나무
채색(彩色)줄 층층(層層) 그네 매지를 말아요

담밖에는 수양(垂楊)의 늘어진 가지
늘어진 가지는
오오 누나!
휘젓이 늘어져서 그늘이 깊소.

좋다 봄날은
몸에
겹지
널 뛰는 성촌(城村)의 아가씨네들
널은 사랑의 버릇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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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흰눈, 가비엽게 밟을 눈,
재가 타서 날릴 듯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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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저녁

 

바람 자는 이 저녁
흰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今年)은……

꿈이라도 꾸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눈 타고 오시네.

저녁때. 흰눈은 퍼부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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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과 벗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향기(香氣)로운 때를
고초(苦草)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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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에게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
추거운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낯모를 딴 세상의 네길거리에
애달피 날 저무는 갓 스물이요
캄캄한 어두운 밤 들에 헤매도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비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추거운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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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노래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門) 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에 들려요

고이도 흔들리는 노래가락에
내 잠은 그만이나 깊이 들어요
고적(孤寂)한 잠자리에 홀로 누어도
내 잠은 포스근히 깊이 들어요

그러나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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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말씀

 

세월이 물과 같이 흐른 두 달은
길어둔
독엣물찌었지마는
가면서 함께 가자 하던 말씀은
살아서
을 맞는 표적이외다

봄풀은 봄이 되면 돋아나지만
나무는 밑그루를 꺾은 셈이요
새라면 두
죽지가 상(傷)한 셈이라
내 몸에 꽃필 날은 다시 없구나

밤마다 닭 소리라 날이 첫시(時)면
당신의 넋맞이로 나가볼 때요
그믐에 지는 달이 산(山)에 걸리면
당신의
길신가리 차릴 때외다

세월은 물과 같이 흘러가지만
가면서 함께 가자 하던 말씀은
당신을 아주 잊던 말씀이지만
죽기 전(前) 또 못 잊을 말씀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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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

 

정월(正月) 대보름날 달맞이,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새라 새 옷은 갈아입고도
가슴엔 묵은 설움 그대로,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달마중 가자고 이웃집들!
산(山) 위에 수면(水面)에 달 솟을 때,
돌아들 가자고, 이웃집들!
모작별
삼성이 떨어질 때.
달맞이 달마중을 가자고!
다니던 옛동무 무덤가에
정월(正月) 대보름날 달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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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소리

 

그대만 없게 되면
가슴 뛰는 닭소리 늘 들어라.

밤은 아주
새어올
잠은 아주 달아날 때

꿈은 이루기 어려워라.

저리고 아픔이여
살기가 왜 이리 고달프냐.

새벽 그림자
산란(散亂)한 들풀 위를
혼자서 거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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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꼬꾸요

 

닭은 꼬꾸요, 꼬꾸요 울 제,
헛잡으니 두 팔은 밀려났네.
애도 타리만치 기나긴 밤은……
꿈 깨친 뒤엔
감도록 잠 아니 오네.

위에는 청초(靑草) 언덕, 곳은
깁섬,
엊저녁 대인 남포(南浦) 뱃간.
몸을 잡고
뒤재며 누웠으면
솜솜하게도 감도록 그리워 오네.

아무리 보아도
밝은 등(燈)불, 어스렷한데.
감으면 눈 속엔 흰 모래밭,
모래에 어린 안개는 물위에
슬 제

대동강(大同江) 뱃나루에 해 돋아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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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나의 긴 한숨을 동무하는
못 잊게 생각나는 나의 담배!
내력(來歷)을 잊어버린 옛시절(時節)에
낳다가
새 없이 몸이 가신
아씨님 무덤 위의 풀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보았어라.
어물어물 눈앞에 쓰러지는 검은 연기(煙氣),
다만 타붙고 없어지는 불꽃.
아 나의 괴로운 이 맘이여.
나의 하염없이 쓸쓸한 많은 날은
너와 한가지로 지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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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흰눈은 한 잎
또 한 잎
영(嶺) 기슭을 덮을 때.
짚신에
감발하고 길심매고
우뚝 일어나면서 돌아서도……
다시금 또 보이는
다시금 또 보이는.

 

 

들돌이

  

들꽃은
피어
흩어졌어라.

들풀은
들로 한 벌 가득히 자라 높았는데
뱀의 헐벗은 묵은 옷은
분전의 바람에 날아 돌아라.

저 보아, 곳곳이 모든 것은
번쩍이며 살아 있어라.
두 나래 펄쳐 떨며
소리개도 높이 떴어라.

때에 이내 몸
가다가 또다시 쉬기도 하며,
숨에 찬 내 가슴은
기쁨으로 채워져 사뭇 넘쳐라.

걸음은 다시금 또 더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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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不運)에 우는 그대여,

 

불운(不運)에 우는 그대여, 나는 아노라
무엇이 그대의 불운(不運)을 지었는지도,
부는 바람에 날려,
밀물에 흘러,
굳어진 그대의 가슴속도.
모두 지나간 나의 일이면.
다시금 또 다시금
적황(赤黃)의 포말(泡沫)은
북고여라, 그대의 가슴속의
암청(暗靑)의 이끼여, 거치른 바위
치는 물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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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변(變)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걷잡지 못할만한 나의 이 설움,
저무는 봄 저녁에 져가는 꽃잎,
져가는 꽃잎들은 나부끼어라.
예로부터 일러 오며 하는 말에도
바다가 변(變)하여 뽕나무밭 된다고.
그러하다, 아름다운 청춘(靑春)의 때에
있다던 온갖 것은 눈에 설고
다시금 낯 모르게 되나니,
보아라, 그대여, 서럽지 않은가,
봄에도 삼월(三月)의
져가는 날에
붉은 피같이도
쏟아쳐 내리는
저기 저 꽃잎들을, 저기 저 꽃잎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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