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향기

젊어도 보았네 늙어도 보았네

엄마라는 나무에 자식이라는 꽃을 피워 그 향기가..."

시인의 숲(명시의 향기~)

한용운

가을비 우산 2008. 12. 1. 16:53

한용운

 

◆약력

▦1879년 충남 홍성 출생. 호 만해(萬海) ▦1905년 강원 백담사에서 승려가 됨

▦1913년 <조선불교유신론> 출간해 불교의 개혁과 현실참여 주장

▦1919년 3ㆍ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에 참가했다가 복역

▦1926년 시집 <님의 침묵> 출간 ▦1935년부터 장편소설 <흑풍> <후회> <박명>

<삼국지> 등 신문 연재 ▦1944년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중풍으로 입적

 

 " 나의꿈"/한용운

 

당신이 맑은 새벽에 나무 그늘 사이에서 산보할 때에

나의 꿈은 작은  별이 되여서

당신의 머리 위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당신이 여름날에 더위를 못 이기어 낮잠을 자거든

나의 꿈은 맑은 바람이 되어서 당신의 주위에 떠돌겠습니다.

당신이 고요한 가을밤에 그윽히 앉아서 글을 볼 때에

나의 꿈은 귀뚜라미가 되어서

책상 밑에서 귀뚤귀뚤 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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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속에 숨기고 싶은 그리움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않은

어느 햇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내 안에서만

머물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람 같은 자유와

동심 같은

호기심을 빼앗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게만 그리움을 주고

내게만 꿈을 키우고

내 눈 속에만 담고 픈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내 눈을 슬프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작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만을 담기에도

벅찬 욕심 많은 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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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설

함께 영원히 없음을 슬퍼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더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 하지 말고

이 만큼 좋아해 주는 것에 만족하고

나만 애태운다고 원망말고

애처롭기까지 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그와 기쁨으로 여기 함께 기뻐할 줄 알고

알 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 하지 말고

깨끗한 사랑이라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나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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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까닭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눈물로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주검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며 사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에요

진정한 사랑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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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의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 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를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는 만날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이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사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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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막혀

 

당신의 얼굴은 달도 아니건만

산 넘고 물 넘어 나의 마음을 비칩니다.


나의 소닐은 왜 그리 짧아서

눈 앞에 보이는 당신의 가슴을 못 만나지요.


당신이 오기로 못 올 것이 무엇이며

내가 가기로 못 갈 것이 없지마는

산에는 사다리가 없고

물에는 배가 없어요.


뉘라서 사다리를 떼고 배를 깨뜨렸습니까.

나는 보석으로 사다리 놓고 진주로 배 모아요.

오시려 해도 길이 막혀서 못 오시는 당신이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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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합니다.

나는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고통도 나에게도 행복입니다.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얼마나 미워하겠습니까.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일생에 견딜 수 없는 불행입니다.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자 하여

나를 미워한다면, 나의 행복을 더 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원한의 두만강의 깊을수록

나의 당신을 사랑하는 행복의 백두산이 높아지는 까닭입니다.

 

◆님의 침묵으로 본 해설

이 작품은 독립지사이며 승려였던 만해 한용운이 설악산 백담사에서 창작하여 1926년 간행한

시집 <님의 침묵>의 표제작이다. ‘님의 침묵’은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님이 침묵한다는 것은

님의 부재를 통한 현존을 가리킨다.

침묵은 절대 무(無)로서의 없음이 아니라 있음의 없음이며 활동하는 없음이다.

가시적인 현상으로는 부재하지만 비가시적인 본질에서는 분명 현존하는 것이다.

제목이 내포하고 있는 반대일치의 역설은 이 시의 내용구성의 기본적인 형성원리이다.

10행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기, 승, 전, 결의 4연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4행에 이르는 첫 연은 님과의 이별의 정황과 그 통절한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님이 가시적인 현실 세계에서 비가시적인 세계로 떠난 것이다. 시적 화자는 주체하기 힘든 이별의 아픔을 겪게 된다.

이별의 아픔은 서술형 어미 ‘갔습니다’의 거듭되는 반복을 낳는다.

님이 떠나면서 ‘황금의 꽃’ 같던 ‘옛 맹세’는 ‘한숨의 미풍’이 되고 말았으며 추억은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지’고 만다. 두 번째 연에 해당하는 5, 6행은

절대적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님에 대한 회억과 뜻밖의 이별에 대한 ‘새로운 슬픔’을 전언하고 있다.

 절대적 사랑이 오히려 이별의 슬픔을 극대화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3연에 이르면 1, 2연에 걸친 이별과 슬픔의 하염없는 하향곡선이

 ‘새 희망’의 상승의지를 불러오는 역동적 힘으로 전환된다. 슬픔의 극한이 역설적으로 희망의 씨앗이 되고 있다.

슬픔과 희망이 상반성을 넘어 연속성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역설은 궁극적으로

이별과 만남 역시 근원 동일성을 지닌다는 깨달음을 낳는다. 만남이 이별의 전제이듯이

이별은 만남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마치 밤의 어둠이 낮의 밝음을 불러오고 낮의 밝음이 밤의 어둠으로 치환되는 이치와 상응한다.

그래서 마지막 연에 이르면 시적 화자는 첫 행의 ‘님은 갔습니다’라는 현상적 사실을 넘어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습니다’라는 반대일치의 심원한 근원을 노래하게 된다.

이제 그의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현실적 결핍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찬연할 수 있다.

한용운이 ‘님의 침묵’의 역설의 원리에 입각한 절대적 사랑을 통해 식민지하의 어둠 속에서도 일관되게

자신은 물론 겨레의 아픔을 위무하며 삶의 희망을 지켜내었던 배경이 여기에 있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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