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향기

젊어도 보았네 늙어도 보았네

엄마라는 나무에 자식이라는 꽃을 피워 그 향기가..."

시인의 숲(명시의 향기~)

천상병

가을비 우산 2009. 3. 16. 21:35

 

귀 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나의 가난은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갑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행 복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푸른 것만이 아니다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외로움에 가슴 조일 때
하염없이 잎이 떨어져 오고
들에 나가 팔을 벌리면
보일듯이 안 보일듯이 흐르는
한 떨기 구름
삼월 사월 그리고 오월의 신록
어디서 와서 달은 뜨는가
별은 밤마다 나를 보던가.
저기 저렇게 맑고 푸른 하늘을
자꾸 보고 또 보고 보는데
푸른 것만이 아니다.

편지                                             


점심을 얻어 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새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나무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강물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그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날개                                              
 

날개를 가지고 싶다.

어디론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고 싶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날개를 안 다셨는지 모르겠다

내같이 가난한 놈은

여행이라고는 신혼여행뿐인데

나는 어디로든지 가고 싶다

날개가 있으면 소원 성취다

하나님이여

날개를 주소서 주소서.......

 

 

 광화문 근처의 행복                                  

광화문에,

옛 이승만 독재와

과감하게 투쟁했던 신문사

그 신문사의 논설위원인

소설가 오상원은 나의 다정한 친구.

어쩌다 만나고픈 생각에

전화 걸면

기어코 나의 단골인

'아리랑' 다방에 찾아온 그,

모월 모일, 또 그랬더니

와서는 내 찻값을 내고

그리고 천 원짜리 두 개를 주는데---

나는 그 때

"오늘만은 나도 이렇게 있다"고

포켓에서 이천원을 끄집어 내어

명백히 보였는데도,

"귀찮아! 귀찮아!"하면서

자기 단골 맥주집으로의 길을 가던 사나이!

그 단골집은

얼마 안 떨어진 곳인데

자유당 때 휴간(休刊)당하기도 했던

신문사의 부장 지낸 양반이

경영하는 집으로

셋이서

그리고 내 마누라까지 참석케 해서

자유와 행복의 봄을---

꽃동산을---

이룬 적이 있었습ㄴ디다.

하느님!

저와 같은 버러지에게

어찌 그런 시간이 있게 했습니까?  

 

  

"크레이지 배가본드"                            


 1
오늘의 바람은 가고

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잘 가거라

오늘은 너무 시시하다.

뒷시궁창 쥐새끼 소리같이

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2
하늘을 안고,

바다를 품고,

한 모금 담배를 빤다.

하늘을 안고,

바다를 품고,

한 모금 물을 마신다.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

우물가, 꽁초 토막...... 

 

  

구름                                                     

저건 하늘의 빈털터리 꽃

뭇사람의 눈길 이끌고

세월처럼 유유하다.

갈 데만 가는 영원한 나그네

이 나그네는 바람 함께

정처없이 목적없이 천천히

보면 볼수록 허허한 모습

통틀어 무게 없어 보이니

흰색 빛깔로 상공(上空)수놓네.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론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내 마음 하늘

한편 가에서

새는 소스라치게 날개 편다.   

 

 

 기쁨                                                     

친구가 멀리서 와,
재미있는 이야길 하면,
나는 킬킬 웃어 제낀다.

그때 나는 기쁜 것이다.
기쁨이란 뭐냐? 라고요?
허나 난 웃을 뿐.

기쁨이 크면 웃을 따름,
꼬치꼬치 캐묻지 말아라.
그저 웃음으로 마음이 찬다.

아주 좋은 일이 있을 때,
생색이 나고 활기가 나고
하늘마저 다정한 누님같다.   


길                                                        

길은 끝이 없구나
강에 닿을 때는
다리가 있고 나룻배가 있다.
그리고 항구의 바닷가에 이르면
여객선이 있어서 바다 위를 가게 한다.

길은 막힌 데가 없구나
가로막는 벽도 없고
하늘만이 푸르고 벗이고
하늘만이 길을 인도한다.
그러니
길은 영원하다.  

 


나의 가난함                                            

나는 볼품없이 가난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부족하지 않다.

내 형제들 셋은 부산에서 잘 살지만

형제들 신세는 딱 질색이다.

각 문학사에서 날 돌봐주고

몇몇 문인들이 날 도와주고

그러니 나는 불편함을 모른다.

다만 하늘에 감사할 뿐이다.

이렇게 가난해도

나는 가장 행복을 맛본다.

돈과 행복은 상관없다.

부자는 바늘귀를 통과해야 한다 

 

넋                                                          

 

넋이 있느냐 라는 것은,

내가 있느냐 없느냐고 묻는 거나 같다.

산을 보면서 산이 없다고 하겠느냐?

나의 넋이여!

마음껏 발동해 다오.

내 몸의 모든 움직임은,

바로 내 넋의 가면이다.

비 오는 날 내가 다소 우울해지면,

그것은 즉 넋이 우울하다는 것이다.

내 넋을 전세계로 해방하여

내 넋을 넓직하게 발동케 하고 싶다

 

 

 마음 마을                                                          

 

내 마음의 마을을

구천동(九千洞)이라 부른다.

내가 천씨요 구천(九千)만큼

복잡다단한 동네다.

 

비록 동네지만

경상남도보다 더 넓고

서울특별시도 될 만하고

또 아주 조그만 동네밖에 안 될 때도 있다.

 

뉴욕의 마천루(摩天樓)같은

고층건물이 있는가 하면

초가지붕도 있고

태고시대(太古時代)의 동굴도 있다.

 

이 마을 하늘에는

사시장철 새가 날아다니고

그렇지 않을 때는 흰구름이 왕창 덮인다.

 

이 마을 법률은

양심이 있을 뿐이고

재판소 따위로는

양심법 재판소밖에는 없다.

 

여러가지로 지적하려면

만자(萬字)도 모자란다

복잡하고 복잡한 이 마음 마을이여

 

 

 새                                                                    

 

 저 새는 날지 않고 울지 않고 내내 움직일 줄 모른다. 상처가 매우 깊은 모

이다. 아시지의 성(聖)프란시스코는 새들에게 은총 설교를 했다지만 저

새는 그저 아프기만 한 모양이다. 수백 년 전 그날 그 벌판의 일몰(日沒)과

백야(白夜)는 오늘 이 땅 위에 눈을 내리게 하는데 눈이 내리는데......

 

 새 세 마리                                                       

나는 새 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텔레비 옆에 있는 세 마리 새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왜나하면
진짜 새가 아니라
모조품이기 때문이다.

한 마리는 은행에서 만든 저금통 위에 서 있는 까치고
두 마리는 기러기 모양인데
경주에서 아내가 사가지고 왔다.
그래서 세 마리인데
나는 매일같이 이들과 산다.

나는 새를 마우 즐긴다.
평와롭고 태평이고 자유롭고
하늘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을
진짜 새처럼 애지중지한다.

 

 

먼 山.....................................

먼 山은 나이 많은 영감님 같다
그 뒤는 하늘이고
슬기로운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다 제각기이고
통일이 없지만
하늘의 이치를 알게 되면
달라지리라고-

먼 山은
애오라지 역사의 거물
우리 인간은
그 침묵에서 배워야 하리......

들국화                                                   

84년 10월에 들어서
아내가 들국화를 꽃꽂이했다
참으로 방이 환해졌다
하얀 들국화도 있고
보라색 들국화도 있고
분홍색 들국화도 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우리방은 향기도 은은하고
화려한 기색이 돈다
왜 이렇게 좋은가
자연의 오묘함이 찾아들었으니
나는 一心으로 시 공부를 해야겠다.

꽃밭                                             

손바닥 펴
꽃밭 아래 놓으니
꽃빛 그늘 앉아 아롱집니다.

며칠 전 간
비원에서 본
그 꽃빛 생각 절로 납니다.

그 밝음과 그늘이
열렬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내 손바닥 위에서......
 

소릉조(小陵調)
- 70년 추일(秋日)에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
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主日 2

1
그는 걷고 있었습니다.
골목에서 거리로,
옆길에서 큰길로.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과 건물이 있습니다.
상관 않고 그는 걷고 있었습니다.

어디까지 가겠느냐구요?
숲으로, 바다로,
별을 향하여
그는 쉬지 않고 걷고 있습니다.

2
낮에는 찻집, 술집으로
밤에는 여인숙,

나의 길은 언제나 꼭 같았는데......

그러나
오늘은 딴 길을 간다.

 
아가야

  해뜨기 전 새벽 중간쯤 희부연 어스름을 타고 낙심을 이리처럼 깨물며
사직공원길을 간다. 행도 드문 이 거리 어느 집 문밖에서 서너 살 됨직한 잠
옷 바람의 앳된 계집애가 울고 있다. 지겹도록 슬피운다. 지겹도록 슬피운
다. 웬일일까? 개와 큰집 대문 밖에서 유리 같은 손으로 문을 두드리며 이 애기
는 왜 울고 있을까? 오줌이나 싼 그런 벌을 받고 있는 걸까? 자주 뒤돌아보면
서 나는 무심할 수가 없었다.
  아가야, 왜 우니? 이 인생의 무엇을 안다고 우니? 무슨 슬픔 당했다고, 괴로
움이 얼마나 아픈가를 깨쳤다고 우니? 이 새벽 정처없는 산길로 헤매어가는
이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아까야, 너에게는 그 문을 곧 열어줄 엄마손이 있겠지. 이 아저씨에게는 그
런 사랑이 열릴 문도 없단다. 아가야 울지 마! 이런 아저씨도 울지 않는데.....        

유리창

창은 다 유리로 되지만
내 창에서는
나무의 푸른 잎이다.

생기 활발한 나뭇잎
하늘을 배경으로
무심하게도 무성하게 자랐다.

때로는 새도 날으고
구름이 가고
햇빛 비치는 이 유리창이여 -

 

담 배

담배는 몸에 해롭다고 하는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끊지 못한다.
시인이 만일 금연한다면
시를 한 편도 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시를 쓰다가 막히면
우선 담배부터 찾는다.
담배연기는 금시 사라진다.
그런데 그 연기를 보고 있으면
인생의 진리를 알 것만 같다.
모름지기 담배를 피울 일이다.
그러면
인생의 참맛을 알게 될 터이니까!

 


 

막걸리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지니 말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옥수수로 만드는 막걸리는
영양분이 많다

그러니 어찌 술이랴


나는 막걸리를 조금씩만

마시니 취한다는 걸 모른다

그저 배만 든든하고

기분만 좋은 것이다

金冠植의 入棺

심통한 바람과 구름이었을 게다, 네 길잡이는
고단한 이 땅에 슬슬 와서는
한다는 일이
가슴에서는 숱한 구슬
입에서는 독한 먼지
터지게 토해놓고.
오늘은 별일 없다는 듯이
싸구려 관 속에
삼베옷 걸치고
또 슬슬 들어간다.
우리가 두려웠던 것은
네 구슬이 아니라
독한 먼지였다.
좌충우돌의 미학은
너로 말미암아 비롯하고
드디어 끝난다.
구슬도 먼지도 못되는
점잖은 친구들아
이제는 당하지 않을 것이니
되려 기뻐해다오
김관식의 가을 바람 이는 이 입관을.

내가 좋아하는 女子

내가 좋아하는 여자의 으뜸은
물론이지만
아내 이외일 수는 없습니다.

오십둘이나 된 아내와
육십 살 먹은 남편이니
거의 無能力者이지만

그래도 말입니다.
이 시 쓰는 시간은
89년 오월 사일
오후 다섯시 무렵이지만요-.
이, 삼일 전날 밤에는
뭉쿨 뭉쿨
어떻게 요동을 치는지

옆방의 아내를
고함지르며 불렀으나
한참 불러도

아내는 쿨쿨 잠자는 모양으로
장모님이
"시끄럽다-. 잠좀 자자"라는
말씀 때문에
금시 또 미꾸라지가 되는 걸
草者는 어쩌지 못했어요-.

村놈

나는 의정부시 변두리에 살지만
서울과는 80미터 거리다
그러니 서울과 교통상으로는
별다름이 없지만
바로 근처에 논과 밭이 있으니
나는 촌놈인 것이다
서울에 살면
구백만 명 중의 한 사람이지만
나는 이제 그렇지가 않다.
촌놈은 참으로 행복하다
나는 노래불어야 한다
이 대견한 행복을
어찌 노래부르지 않으리요
하늘이여 하늘이여
나의 노래는 하늘의 것입니다.

고향

내 고향은 경남 鎭東
마산에서 사십 리 떨어진 곳
바닷가이며
산천이 수려하다.

國校 一年 때까지 살다가 떠난
고향도 고향이지만
원체 고향은 대체 어디인가?
태어나기 전의 고향 말이다.

사실은 사람마다 고향타령인데
나도 그렇고 다 그런데
태어나기 전의 고향타령이 아닌가?
나이 들수록 고향타령이다.

無로 돌아가자는 타령 아닌가?
경남 鎭東으로 가잔 말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의 고향 - 無로의
고향타령이다. 初老의 切感이다.

 

River waters-  강물

The reason why the river flows toward the sea
is not only because I've been weeping
all day long
up on the hill.

Not only because I've been blooming
like a sunflower in longing
all night long
up on the hill.

The reason I've been weeping like a beast in sorrow
up on the hill
is not only because
the river flows toward the sea.

고향

내 고향은 경남 鎭東
마산에서 사십 리 떨어진 곳
바닷가이며
산천이 수려하다.

國校 一年 때까지 살다가 떠난
고향도 고향이지만
원체 고향은 대체 어디인가?
태어나기 전의 고향 말이다.

사실은 사람마다 고향타령인데
나도 그렇고 다 그런데
태어나기 전의 고향타령이 아닌가?
나이 들수록 고향타령이다.

無로 돌아가자는 타령 아닌가?
경남 鎭東으로 가잔 말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의 고향 - 無로의
고향타령이다. 初老의 切感이다.

 

 회상 2

그 길을 다시 가면
봄이 오고,

고개를 넘으면
여름빛 쬔다.

돌아오는 길에는
가을이 낙엽 흩날리게 하고.

겨울은 별수없이
함박눈 쏟아진다.

내가 네게 쓴
사랑의 편지.

그 사랑의 글자에는
그러한 뜻이, 큰 강물 되어 도도히 흐른다.


 

주일 1

오늘같이 맑은 가을 하늘 위
그 한층 더 위에, 구름이 흐릅니다.

성당 입구 바로 앞
저는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입구 지키는 교통순경이
닦기 끝나면, 저도 닦으려고요.

교통순경의 그 마음가짐보다
저가 못한데서야, 말이 아닙니다.

오늘같이 맑은 가을 하늘 위
그 한층 더 위에, 구름이 흐릅니다.


Back to Heaven -귀천 - 영문판

I'll go back to heaven again.
Hand in hand with the dew
that melts at a touch of the dawning day,

I'll go back to heaven again.
With the dusk, together, just we two,
at a sign from a cloud after playing on the slopes

I'll go back to heaven again.
At the end of my outing to this beautiful world
I'll go back and say: It was beautiful. . . .

동그라미

동그라미는 여자고 사각은 남자다
동그라미와 사각형을 두 개 그리니까
꼭 그렇게만 보여진다.

상냥하고 자비롭고 꾸밈새 없는
엄마의 눈과 젖
손바닥과 얼굴이 다 둥글다.

울뚝불뚝하고
매서운 아버지의 눈과 입,
손목과 발힘이 네 개나 된다.

 

 

국화꽃

오늘만의 밤은 없었어도
달은 떴고
별은 반짝였다.

괴로움만의 날은 없어도
해는 다시 떠오르고
아침은 열렸다.

무심만이 내가 아니라도
탁자 위 컵에 꽂힌
한 송이 국화꽃으로
나는 빛난다!

진혼가 - 저쪽 죽음의 섬에는 내 청춘의 무덤도 있다(니체)

태고적 고요가
바다를 덮고 있는
그곳.

안개 자욱이
석윳불처럼 흐르는
그곳.

인적 없고
후미진
그곳.

새 무덤,
물결에 씻긴다.

 


동창

지금은 다 뭣들을 하고 있을까?
지금은 얼마나 출세를 했을까?
지금은 어디를 걷고 있을까?

점심을 먹고 있을까?
지금은 이사관이 됐을까?
지금은 가로수 밑을 걷고 있을까?

나는 지금 걷고 있지만,
굶주려서 배에서 무슨 소리가 나지마는
그들은 다 무엇들을 하고 있을까?

 

계곡 흐름

나는 수락산 아래서 사는데,
여름이 되면
새벽 5시에 까어서
산 계곡으로 올라가
날마다 목욕을 한다.
아침마다 만나는 얼굴들의
제법 다정한 이야기들.

큰 바위 중간 바위 작은 바위.
그런 바위들이 즐비하고
나무도 우거지고
졸졸졸 졸졸졸
윗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더러는 무르팍까지
잠기는 물길도 있어서......
(내가 가는 곳은 그런 곳)
목욕하고 있다 보면
계곡 흐름의 그윽한 정취여......

 

덕수궁의 오후

나뭇잎은 오후, 멀리서 한복의 여자가 손을 들어 귀를 만진다.
그 귀밑불에 검은 혹이라도 있으면
그것은 섬돌에 떨어진 작은 꽃이파리
그늘이 된다.

구름은 떠 있다가
中化殿의 破風에  걸리더니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는다.

이 잔디 위와 砂道
다시는 못 볼 광명이 되어
덤덤히 섰는 솔나무에 未安힌 나의 病
내가 모르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를 한다.

어리석음에 취하여 술도 못마신다.
연못가로 가서 돌을 주워 물에 던지면
끝없이 떨어져간다.

솔나무 그늘 아래 벤치
나는 거기로 가서 앉는다.

그러면 졸음이 와 눈을 감으면
덕수궁 전체가 돌이 되어 맑은 연못 속으로 떨어진다.


한낮의 별빛
-새-

돌담 가까이
창가에 흰 빨래들
지붕 가까이
애기처럼 고이 잠든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

슬픔 옆에서
지겨운 기다림
사랑의 몸짓 옆에서
맴도는 저 세상 같은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

물결 위에서
바윗덩이 위에서
사막위에서
극으로 달리는
한낮의 별빛을 너는 보느냐......

새는
온갖 한낮의 별빛계곡을 횡단하면서
울고있다.

 

하늘.2

하늘은 가이없다.
무한한 하늘은 끝이 없다.
어디까지가 하늘이냐
두무지 알 수 없다.

구름은 떠가지만
그건 유한한 하늘이고
새는 날으지만 낮은 하늘이고
우리는 그저 하늘을 받들면 그만이다.

태양은 빛을 보내고
달도 빛을 보내지만
우리는 그 빛의 고마움을 모르고
그저 고맙다고만 한다.


 친구(親舊).1
-히아신스-

섬세하다고  했어도 이리도 갸냘픈가.
사막에서는 명함도 못내 놓겠네.
수분기(水分氣)가 없는 것은 별개(別個)일거야.

여전스레 공기는 열기(熱氣)를 뿜어내고
다 뿜어내면 하늘까지라도 팽게칠 모양이다.
여행객(旅行客)이나 있으면 감상하여마지 않았을 텐데.

원시시대의 원방향(原方響)도 잊어먹었네.
이런 골치아픈 사막에 떨어지다니
원죄(原罪)야, 누구에게 신앙고백을 할까?

하느님 말씀 들었나이다.

1950년 10월 5일 정오경
나는 종로 2가
안국동쪽을 꺽고 있었습니다.
길꺽는 모퉁이에
한그루 가로수가 있었는데,
그 밑을 지나는 순간
하늘에서
낮으막하나,
그래도 또렷한 우리말로
'명상은 않되!'하는
말씀이 들리시더니
또 일분 후에
'팔팔까지 살다가, 그리고 더'라는
말씀이 들렸습니다.

하느님 말씀이 틀림없습니다.
2천년만의 하느님 말씀입니다.

저는 몸둘 바를 모르고
그냥 길바닥에 주저 앉아
한참 명상에 잠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카페

내 아내가 경영하는 카페
그 이름은 '귀천(歸天)'이라 하고
앉을 의자가 열다섯석 밖에 없는
세계에서도
제일 작은 카페

그런데도
하루에 손님이
평균 60여명이 온다는
너무나 작은 카페

서울 인사동과
관훈동 접촉점에 있는
문화의 찻집이기도 하고
예술의 카페인 '귀천(歸天)'에 복 있으라.

친구(親舊).4
-日曜日-


신도(信徒)는 천주교도(天主敎徒)를 말함이니
나도 위선 포함되고 전세계에는 6억인구가 넘는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편안하게 쉬어라.

구름이 다소간끼었는데,
태양을 막아서 어두워진 것 같다.
아폴로는 언제나 활을 쏠려는고,

유년시대(幼年時代)의 황금기는 벌써 지났다.
전기광속(電氣光速)보다 빠른 미터로 언제 올려나
천국의 제7지방(第七地方)에 가서 기도할 때가.

친구(親舊).3
-김치-

매일같이 먹는 김치에는 음식이 섞여든다.
생선(生鮮)도 고기도 적량(適量)껏 들어가 있으니
음식의 백화점이 따로이 없다.

아무리 먹어도 만복(滿腹)도 안된다.
대륙(大陸)을 통체로 자셔도 이렇게는
자양분(滋養分)이 적량(適量)이 되지 않겠다.

식물(植物)도 풀과 이파리니 전체나 마찬가지다.
맛도 미미천만(美味千萬)이니 딴것과 바꾸지 못한다.
우리 백의민족(白衣民族)이 시골뜨기가 아니라는
증일(證壹)이다.


우리집 뜰의 봄

오늘은 91년 4월 25일
뜰에 매화가 한창이다.
라일락도 피고
홍매화도 피었다.

봄향기가 가득하다.
꽃송이들은
자랑스러운 듯
힘차게 피고 있다.

봄 기풍(氣風)이 난만하고
천하(天下)를 이룬 것 같다.

마음의 날개

내 육신(肉身)에는 날개가 없어도
내 마음에는 날개가 있다.
세계 어디 안가본 데가 없다.
텔레비전은 마음 여행의 길잡이가 되고
상상력(想像力)이 길을 인도한다.
북극(北極)에도 가 보고
남양(南洋)의 오지(奧地)에도 가보았다.
하여튼 내가 안 가본 곳이란
없다.
내 마음엔 날개가 있으니까.

백조(白鳥) 두 마리

내게는 백조(白鳥) 두 마리가 있다.
그림이지만 참 좋다.

이유를 밝히면
'시조와 비평'이란 잡지의 창간호
표지에 그려졌는데
표지전체가 녹색이라서
약간 녹색조(綠色調)는 감출 수 없지만
그래도 백조는 백조다.

나는 이 그림을 참 좋아한다.
두 마리의 백조(白鳥)는 부부(夫婦)처럼 보인다.
너무나 사이가 좋아서 그런지
두 마리가 다 울고 있다.
기쁨에 못이긴 울음이리라.

유관순 누님
    
이화 학당의 학생이었으니
내게는 누님이 되오.
    
누님! 참으로 여자의 몸으로
용감하였소.
    
일제의 총칼앞에서
되려 죽음을 택하셨으니
    
온겨레가
한결같이 우러러 보오.
    
이제는 독립 되었으니
저승에서도 눈을 감으세요.
    
                    (91년 3.1절에)

허상(虛像) . 4
-구름-

구름은 백색(白色)이요 비오는 날엔 회암색(灰暗色)이다.
중간치기 색채(色彩)는 없다.
그런데 형태(形態)는 실로 각종각류(各種各類)다.

불교적이 아닐까.
기독교를 닮았기도 할까.
마호멧교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하늘의 높음과 지상평면(地上平面)과의 연합체다.
마음대로 인간을 굽어삼킨다.
외양(外樣)은 부드러운 것 같지만은 단단할지 모른다.

이것은 아무래도 고체인가 액체인가.
전체로는 고체요 부분으로는 액체다.
기체에 쌓였으면서도 증류수(蒸溜水)인데......
.
친구(親舊).1
-히아신스-

섬세하다고  했어도 이리도 갸냘픈가.
사막에서는 명함도 못내 놓겠네.
수분기(水分氣)가 없는 것은 별개(別個)일거야.

여전스레 공기는 열기(熱氣)를 뿜어내고
다 뿜어내면 하늘까지라도 팽게칠 모양이다.
여행객(旅行客)이나 있으면 감상하여마지 않았을 텐데.

원시시대의 원방향(原方響)도 잊어먹었네.
이런 골치아픈 사막에 떨어지다니
원죄(原罪)야, 누구에게 신앙고백을 할까?

친구(親舊).2
-歲月-

세월(歲月)은 흘러서 100년 가까히 됐다네.
오만불손 했던 성격도 맞다네.
죽어도 괜찮다네.

도령(道令)이 천국가까이 왔다네.
오면은 기꺼이 가서 대꾸하리다.
이제도 가히 그 절념시기(絶念時機)가 안온다네.

산복(山腹)에 정좌(靜坐)하여 두고두고 살피니
저쪽 빛깔도 구름까지도 같지가 않니
제 7의 천국이며는 얼마나 좋겠니.

친구(親舊)

천가(千家)는 우리나라 성(姓)가운데서 쌍놈이다.
화산군(火山群), 천만리공(千萬里公)은 임진왜란때
이여송(李如松)과 더불어 중화로부터의 구원병이다.

20세기의 제2차 세계대전이라면은
미합중국의 맥아더 장군(將軍)같은 존재야.
수군통제사 이순신(李 臣)제독도 못당했을 거다.

그 왜놈의 희로에서 1930년 1월 29일생이야.
참으로 무슨놈의 팔자출생(八字出生)일는지
그러다가 사납게도 수도 동경부 근처로 이사했다.


 

어머니 변주곡(變奏曲)

어릴적이었지만은 자가제(自家製) 연날기를 했단다.
유리가루를 연실줄에 묻혀서 날린다.
그러면 5,6세 연령인데도 오십미터 가까이 날아간다.

연날리기대회는 내 고향, 진도에서는 설날인가 했단다.
나는 중학생인 형님과 짝을 지어 관망(觀望)하면서
일심(一心)으로 상대가 될 대항자(對抗者)를 찾는다.

마츰 호기(好氣)어린 짝놈을 찾는다.
전쟁을 걸어오면은 사야한다네.
붙기는 붙었다.

날고 있는 연을 교차해서 대항자(對抗者)의 연을 날리만 이긴다.
벌써 대한자의 연은 바닷바람에 높이도 솟는다.
나는 목을 한참 들면서 꺼질 때까지 바라볼 뿐이다.

그 무렵, 어머니께서 형님과 나의 전승을 기도하면서
집에서 대기하셨겠지만은
그 어머니, 지하(地下)에 계신지 10년도 넘는다

 


어머니 변주곡(變奏曲) . 4

어머니는 앓다가 저 세상(世上)으로 가셨다.
둘째 누이의 이실직고(以實直告)로는
거의 괴로울대로 괴로웠단다.

불행(不幸)한 일이다.
만사에 있어 무사태평(無事泰平)했던 당신께서
임종기(臨終期)가 그랬다니 아들인 나는 쥬피터에게
항의(抗議)하고 싶다.

살결이 다소 나와 닮아서 검었다는 것 말고는
신체조건(身體條件)은 깨끗하셨고 훌륭했었다.
그런데도 그 그런 고달픈 충격의 고역(苦役)이었다니

성서(聖書)의 전면(全面)을 들쳐 읽어도
그러한 대목과 만날 수는 없어도
확실한 사실은 그녀는 천사(天使)의 부흥(復興)이었다는
것 뿐이다.

 

 

하늘위의 일기초(日記秒)
-河口-


최남단인 부상항구, 다대포(多大浦)는
낙동강(洛東江) 하구(河口)요 바다의 접촉점이다.
옛날에는 해상교통사고도 더러 있었다는데......

저쪽 저 멀리에는 일본국이 있을 것이며
안 닿던 곳이 없지 않을까?
런던도 바닷길을 해서 연맹체(聯盟體)일까요.

어디로 가든지 갈 수 있고 또 갈 수도 없다오.
북극(北極)에라도 배만 있으면 가겠다나.
추위가 혹심해서 견딜 수가 없겠구나.

하구는 꽤 복잡다단하다.
내부지밀(內部至密)에서는 고기들의 생식 때문에 바쁘고
외면표피(外面表皮)에서는 양쪽 부유물(浮遊物)들이
논다.

하늘위의 일기초(日記秒)
-生鮮-

천국에 생선이 있는지 없는지 미루어 짐작하라.
고래같은 대어(大魚)는 없겠지만은 돔새끼는 있을 것이다
잡다한 추한 생선은 없으면 좋겠는데......

맛이 좋든 그르든 그 신기함에 환성을 지를 것이다.
대체로 맛이 좋은게 생선이니까.
요리책이나 갔다놓고 이러쿵 저러쿵 아옹다옹이다.

물은 벌써 준비되어 있고 끄집어 내기만 하면 되는데.
이 요리(料理)쟁이는 꼼짝도 안한다.
그저 구경만 하고 춤이나 추라는 것인가......

웬만하면 이젠 구경하는 것도 싫증이 난다.
견딜려니 고역(苦役)이요 악경험(惡經驗)이다.
이만하면 지옥에 가져다 냅다 버렸으면......


 

하늘위의 일기초(日記秒)
-냇물가 植物-


냇물가 식물은 꼭 동양(東洋)의 군자와 같다네.
움직일려고 하는데 그것은 물의 흐름 때문이다.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인지 요량할 수도 없다네.
동양의 군자들은 유교(유교)를 선봉했는데,
요것들은 유교(儒敎)라니 턱도 없을 테니,
자기들의 뿌리나 믿는 게  아닐까.

하여튼 바다와 육지가 섞이는 공장이다.
게도 장난삼아 왕래(往來)하겠다.
여양분있는 반식(飯食)이 없나 하고 말이다.

사회계급(社會階級)이니 그런 것이 있을까......
다들 평등해서 착취나 노예도 없을 게다.
군대조직단(軍隊組織團)이니 뭐니 하는 불필요한 것도.

소야(小夜)

소야(小冶)는 괜히 고요스레 충일(充溢)하고,
과감하게도 일찍 일어났다.
그러나 어떤 소식(消息)이 없고 보매,
마치 조그만 섭리(攝理)가 어슴프레하다.
기차(汽車)소리 가득히 요란하고
저 기차(汽車)는 언제 서울에서 떠났든가?

산소의 어버이께

두분 아버지 어머니 영혼은,
하느님께 인사드렸는지요?
죽은 내친구 인사 받으셨는지요?

생각컨대
어버이님은 아무런 죄 없으시고
착실하고 다투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님은 아버님보다 10년 더 넘게
오래 사셨다 가셨는데
하늘나라서 행복한 초혼(初婚) 영원히 비슷하겠군요.

그저 둘째아들 염려이실테고
요놈이 게으름뱅이 노릇 그만하고
천국(天國) 가까이나 와 주었으면 하시겠지요!

나는 행복(幸福)합니다

나는 아주 가난해도
그래도 행복(幸福)합니다.
아내가 돈을 버니까!

늙은이 오십세살이니
부지런한 게 싫어지고
그저 드러누워서
KBS 제1FM방송의
고전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最高)의 즐거움이오. 그래서 행복(幸福).

텔레비젼의 희극(喜劇)을 보면
되려 화가 나니
무슨 지랑병(炳)이오?

세상은 그저
웃음이래야 하는데
나에겐 내일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찌 어기겠어요?

행복은 충족입니다.
나 이상의 충족이 있을까요?

 

노도(怒濤)

황풍(皇風)아래 제철이 한창이다.
굳센 공간상(空間相)이지만은
그래도 일말의 서정미(抒情味)를 풍기는 것은 물이다.

직선형광경(直線形光景)에 저항(抵抗)하는 것은
약하디 약하고 형편없이 무력하기만 한
액체집단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소금은 대지(大地)의 소금이라지
그래도 물속에 있어야만 현상유지다.
바람아 더욱 불어라. 그래야 일요일이다.


 

해변(海邊)

잡다한 직선이 모여 들어야만
이와같은 직평면체(直平面體)가 구성될 성싶은데,
그런 직선(直線)이라고는 도방 없는 것 같다.

그러기에 가난뱅이 시인이 다소곳하게,
눈꼴 사납게 직선(直線)의 자죽을 찾는 것도 할 수 없다.
저렇게 생기복(生起伏)을 이룬 가면노도(假面怒濤)가 탈이다.
오대양에 비교하면 턱도 없지만서도.

심연(深淵)이란 깊다는 것만이 이유가 아닐게다.
수심이 시꺼멓다고 깊이를 알게 뮈냐.
고심참담(故心慘憺)하게 알필요 없고 필요상 덮어두자.


무위(無爲)

하루종일 바빠도
일전한푼 안 생기고
배만 고프고 허리만 쑤신다.

이제 전세계를 다 준다고 해도
할 일이 없고 움직을 수도 없다.
절대절명(絶對絶命)이니 무아지경(無我之境)이네.

도라니 어런 것인가 싶으다.
선경(仙境)이라니 늙은 놈만 있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최고다.


책미치광이

내 나이 이제 오십한살.
말썽꾸러기 내가
아직 한번도 안했던 자기자랑을
여기 적어 볼까 합니다.
자기자랑은 팔불출이지만
초로의 노인이 된 내가
어찌 불출이 되지 못하겠습니까?

국교 이학년때부터
나는 일본서 살았는데
어머니는 나를 '책 미치광이'라 불렀습니다.
미치광이라니 천만의 말씀!
읽어서 큰 공부되고
덕볼뿐만 아니라 재미만점이고
지식과 슬기를 주는 독서가
왜 미치광이란 말입니까!

국교 육년때 일이었는데
일본에서, 나 살던 곳은
치바켄 타태야마시 호오죠 동내였는데
그 역전 근처에
시립도서관이 있었고,
학교 파하면
나는 반드시 거기 갔었습니다.
다닌지 칠팔개월 지난 어느날,
아내하고 두사람뿐인 어른직원이,
목욕하고 온다고 하면서
도서관 지켜달라면서
서적 서가 열쇠를
내게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른은
시립도서관장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니까 국교육년생이
단시간만이라도
시립도서관장 임시대행을
살짝 지냈다는 꼴이 아닙니까?

우스우면 우습고,
맹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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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千祥炳 (1930. 1. 29 - 1993. 4. 28)                                                 
 
경남 창원(昌原) 출생.

1955년 서울대학교 상과대 4년 중퇴. 1949년 마산중학 5학년 때, 《죽순(竹筍)》 11집에 시 《공상(空想)》 외 1편을 추천받았고, 1952년 《문예(文藝)》에 《강물》 《갈매기》 등을 추천받은 후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 등을 발표했다. 1967년 7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가난 ·무직 ·방탕 ·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그는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1971년 가을 문우들이 주선해서 내준 제1시집 《새》는 그가 소식도 없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그의 생사를 몰라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리던 그는 지병인 간경변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막에서》 《귀천(歸天)》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등의 시집과 산문집 《괜찮다 다 괜찮다》, 그림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등이 있다. 미망인 목순옥(睦順玉)이 1993년 8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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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야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허심(虛心)과 동심(童心)

 


천상병은 새의 시인이다. 허공을 향해 비상하다가 어느 순간 한 점, 소실점으로 사리지는 새. 이 새는 우선 현실의 시공간을 넘어 초월적인 세계로 날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종래에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생존의 현장으로 되돌아온다. 그의 시가 자주 죽음을 입에 올리지만, 결코 허무주의의 낙수로 떨어지거나 구차스러워지지 않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천상병은 첫 시집의 표지에 자신의 분신인 <새>라는 표찰을 달아 준다. 또한 그는 '새'라는 제목으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그 가운데 1959년 발표한 '새'는 천상병 시인의 출사표라 하겠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내 영혼의 빈터에/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이 필 때는,/내가 죽는 날/그 다음 날.//산다는 것과/아름다운 것과/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한창인 때에/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 시인은 스스로를 태운 재 속에서 다시 생명을 얻는 전설의 새처럼 죽음 저편의 세상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런데 그 영혼의 빈터에서 노래하는 새는 삶의 외로움이나 쓸쓸함, 그리고 죽음이란 실존적 한계의 비극만을 한탄하지 않는다. 새는 삶의 아름다움과 기쁨까지도 흥겹게 지저귄다. 살아서 고독했던 세상은 죽어서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에 그는 허심(虛心)과 동심(童心)을 유지할 수 있을 터이다.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죽음 자체의 의미를 골똘히 관조하는 새, 삶과 죽음의 어스름한 경계 위,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가난한 새, 이 것이 바로 천성병 시인의 자화상이다. 그러기에 그는 '주정뱅이 천사'로서 이 지상에 머물러 천진난만한 삶을 꾸려 갈 수 있었을 터이다.

랭보가 꾀죄죄한 도시형 '잿빛 천사'라면, 천상병은 천진무구한 농경 사회의 '하얀 천사'이다. 그의 대표작인 '귀천'은 천상병의 투명한 시심을 짐작케 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삶이 소풍이라는 깨달음은 놀랍다.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올라가 삶이 아름다웠다고 말하는 처연한 인식이 돋보인다.

 

모든 삶의 무게를 털어 버리고 깃털처럼 가볍고 이슬처럼 투명해지는 한 마리 새. 그러나 그의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쉽게(?) 삶이 아름답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삶을 긍정하는 그의 해맑은 동공 뒤에 아프게 맺혔을 시인의 고독과 슬픔, 그 뼈아픈 전사(前史)를 떠올리니, 파렴치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무참스럽기 그지없다. (류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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