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수도검침원 참변"
"대구여대생 살인사건" 성추행 흔적도...
대구여대생 살인사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
경찰, 택시에만 몰두해 다른 관련자 수사 부실… ‘헛다리 수사’ |
[뉴스포스트=권정두 기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구여대생 사건’의 범인이 사건 발생 8일 만에 붙잡혔다. 잔인한 범행과정, 태연한 범인의 모습은 많은 국민들에게 또 한 번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여기에 경찰의 ‘헛다리 수사’에 대한 비난 여론도 들끓고 있다. 경찰은 당초 피해자가 탑승했던 택시의 운전기사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범인은 그날 피해자와 술집에서 합석을 했던 남성이었다. 경찰이 ‘택시’에만 몰두한 나머지 다른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허술하게 진행한 것이다. 게다가 범인은 과거 아동성범죄 전력이 있는 ‘성범죄 신상정보 공개자’였다. 경찰의 엉뚱하고 허술한 수사에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 경찰에 붙잡힌 '대구 여대생 살인 사건'의 피의자 조모(24) 씨.
대구 시내에서 실종된 여대생이 경주의 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던, 일명 ‘대구여대생 사건’의 범인이 피해자 실종 8일 만인 지난 1일 경찰에 붙잡혔다.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피해자인 남모(22·여) 씨는 지난달 25일 대구 시내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함께 일하며 알게 된 언니 2명과 함께 근처 A술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 약 4시간 뒤 A술집에서 나온 남씨는 새벽 4시 20분쯤 귀가를 위해 택시에 올라탔고, 함께 술을 마신 언니 2명은 남씨를 배웅했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집에 돌아오지 않은 남씨는 다음날인 지난달 26일 오전 10시 30분쯤 경주의 한 저수지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즉시 수사에 착수했지만 용의자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남씨의 시신에 특별한 단서가 남아있지 않았고, 남씨가 탑승했던 택시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남씨를 태운 택시기사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대구와 경주를 오가는 도로 및 시신이 발견된 저수지 인근 CCTV를 수집·분석했다.
남씨가 실종된 지 일주일이나 지난 지난달 31일, 경찰은 각고의 노력 끝에 해당 택시기사를 찾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경찰에 붙잡힌 택시기사 이모(31) 씨는 범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씨는 결정적인 진술을 했다. 남씨가 택시를 탄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남성이 남씨의 남자친구라고 말하며 택시에 올라탔다는 것이다. 그 남성은 바로 범인 조모(24) 씨였다.
범인은 아동성범죄 전력 있는 20대 공익근무요원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A술집에서 남씨와 합석해 술을 마셨던 인물이다. A술집은 조씨가 자주 찾는 술집인 것으로 알려진다.
조씨는 지난달 25일에도 친구와 A술집에서 술을 마셨고, 남씨 일행을 만나 합석을 했다. 이후 남씨 일행이 밖으로 나가자 조씨도 조심스레 이들을 따라나섰다. 잠시 후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던 남씨와 그 일행은 택시를 잡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조씨는 그런 남씨 일행의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고, 남씨가 택시에 오르자 자신도 즉시 택시를 잡아타고 남씨가 탄 택시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남씨의 택시가 교차로 신호에 걸려 멈춰 섰다. 그러자 조씨는 자신이 타고 있던 택시에서 내려 남씨의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기사에게 자신이 남자친구라고 뻔뻔하게 말한 조씨는 산격동 쪽으로 택시의 행선지를 바꿨다.
택시는 금세 산격동에 도착했다. 조씨는 술에 취한 남씨를 데리고 내려 주변 모텔을 돌며 빈방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빈방은 없었고, 결국 조씨는 남씨를 자신의 원룸으로 데리고 갔다. 조씨의 원룸 역시 산격동에 있었고, 이때가 새벽 4시 40분쯤이었다.
남씨를 자신의 방으로 끌고 오는데 성공한 조씨는 성폭행을 시도했고, 남씨는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러자 조씨는 남씨를 주먹 등으로 마구 때리고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원룸에 도착한지 30여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조씨는 당황하지 않았다. 남씨의 시신은 이불에 싸서 화장실에 놓았고, 지갑과 옷가지 등 소지품은 쓰레기봉투에 담아 집 앞에 버렸다.
▲ 사건이 발생한 대구 북구 산격동 조씨의 집 |
시신을 화장실에 두고 태연하게 시간을 보낸 조씨는 오후 5시 45분쯤 차를 렌트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1시쯤이 되자 18시간 가까이 화장실에 방치해 뒀던 남씨의 시신을 차에 싣고 경주의 저수지로 가서 시신을 유기한 뒤 돌아왔다.
이후 사건이 널리 알려지며 대구 지역이 공포에 빠졌지만, 조씨는 도망치기는커녕 검거 당일 또 다시 A술집을 방문해 태연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믿기 힘든 모습이었다. 지난 1일 새벽 A술집에서 검거된 조씨는 “술에 취한 피해자를 부축해 집안으로 들어가다 피해자가 넘어져 피를 흘리자 경찰에 신고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들어 살해할 마음이 생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가 검거되자 충격적인 사실들도 잇따라 드러났다. 먼저 관심이 집중된 것은 조씨의 과거였다. 조씨는 지난 2011년 1월 울산 중구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추행을 저지른 성범죄 전과범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조씨는 당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성폭력 치료강의 80시간, 개인신상공개 등의 처분을 받아 성범죄자 정보를 알려주는 ‘성범죄자알림e’ 사이트에도 등록이 돼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씨의 직업이었다. 당초 ‘무직’이라고 했던 경찰의 말과는 달리 지하철역에서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이었던 것이다. 지난 2012년 8월말부터 대구지하철 1호선 방촌역에서 근무한 조씨는 평소 근무 태도가 그리 좋지 않았고, 9개월 만에 복무연장 대상자가 될 만큼 자주 병가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씨는 쉬는 날인 토요일을 앞둔 금요일 밤에는 A술집을 비롯한 대구 시내 술집과 클럽 등을 자주 찾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조씨는 범행 다음날인 27일을 비롯해 30~31일에는 두통과 요통을 이유로 병가를 냈지만, 28~29일에는 정상적으로 출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런 조씨에 대해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시신을 스스럼없이 방치한 뒤 유기한 점, 도주하지 않고 범행 후에도 태연히 출근을 한 점, 범행 대상을 만났던 술집을 또 찾아 술을 마신 점 등이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조씨는 과거 훈련소 동기에게 “나는 아동성범죄자다”라며 “여자는 내가 전문가”라고 유세를 부리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피해자 유족들에게 유감을 표명하고 있는 김용주 대구 중부경찰서장 |
허술한 경찰 수사, 비난 들끓어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 줄곧 남씨가 탑승한 택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남씨를 배웅한 일행의 진술과 남씨가 택시를 탄 것이 새벽시간대였다는 점을 미뤄 대구 시내 법인택시 소속의 20~30대 기사 300여명으로 용의자를 압축했다. 또한 대구에서 경주로 가는 도로와 시신이 발견된 저수지 근처의 CCTV를 분석해 용의차량을 찾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6,000여대의 차량을 데이터베이스화하기도 한 경찰은 결국 남씨가 탑승했던 택시를 찾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택시기사로부터 범인에 대한 결정적인 진술도 얻어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택시’가 범인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헛다리 수사’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검거된 조씨가 범행 당일 술집에서 남씨와 합석을 했었고, 과거 성범죄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남씨의 시신이 발견된 날 오후, 남씨의 스마트폰이 조씨의 원룸이 있는 대구 북구 산격동에서 켜졌다 꺼진 정황도 포착된 바 있다.
때문에 경찰이 택시 추적에만 집중하지 않고, 술집에서 합석한 남성 등 다른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 두었다면 더 빠르고 쉽게 범인이 검거됐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찰은 남씨 일행이 다른 남성들과 합석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CCTV에는 조씨의 모습이 비교적 명확히 찍혀 있었다. 하지만 택시 추적에 몰두한 경찰은 조씨의 신원은 물론 이름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특히 조씨가 과거 성범죄 전력이 있고, ‘성범죄자 알림e’에도 등록돼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경찰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경찰이 남씨와 합석했던 남성에 대한 수사를 등한시하지 않고, 남씨의 스마트폰이 켜졌던 산격동에 거주하는 성범죄자 정보를 확인했다면 시신이 유기되기도 전에 검거가 이뤄졌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경찰 내 공조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남씨의 실종·사망 사건을 담당하고 있던 대구 중부경찰서와 조씨의 거주지 관할인 대구 북부경찰서는 서로 발 빠른 협력을 하지 못하고 수사력을 낭비했다.
또한 경찰의 ‘헛다리 수사’가 제2, 제3의 피해자를 낳을 뻔 했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조씨는 범행을 저지른 뒤에도 도망치거나 잠적하지 않고 태연하게 생활했으며, 남씨를 만났던 A술집을 다시 찾기도 했다. 경찰이 일주일 넘게 헛심을 쓰고 있던 사이, 조씨가 충분히 추가 범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헛다리 수사’에 이어 조씨를 검거하고도 직업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며 실망스런 모습에 방점을 찍었다. 당초 경찰은 조씨의 직업이 ‘무직’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 조씨는 공익근무요원이었다. 경찰이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는 모양새다.
평범한 20대 공익근무요원의 얼굴 뒤에는 잔혹한 살인자의 모습이 있었다. 경찰은 충분히 빠른 검거가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헛심을 쓰며 ‘운 좋게’ 범인을 붙잡았다. 꽃다운 나이의 피해자는 꿈도 채 펼치지 못하고 무참히 희생당했다. 날로 늘어나는 강력범죄와 실망스런 경찰의 모습에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2013년 06월 03일 (월) 19:06:13 권정두 기자 amespresso@hanmail.net |
팬티만 걸친 男… 목줄 풀린 개…
공포에 떠는 女 방문노동자들
기사입력 2013-05-28 03:00:00 기사수정 2013-05-28 03:00:00
그후 열흘째인 18일 김 씨는 인근에서 알몸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공무원인 남편과 세 아이를 둔 김 씨는 생활비와 자녀 대학 학비를 마련하려고 수도검침원 일을 시작했다. 사건 당일엔 아내의 일을 돕겠다고 하루 휴가를 낸 남편과 봉양면에 왔다. 담당구역이 넓어 남편과 따로 각 가정을 방문하다가 변을 당했다. 경찰은 손 씨가 김 씨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24일 검거된 손 씨는 경찰에 “김 씨가 집으로 들어오면서 휴대전화를 꺼내기에 경찰에 신고하는 줄 알고 죽였다”며 “성폭행했는지, 인근 야산에 어떻게 유기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손 씨는 우울증 등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다. 그는 부모 집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혼자 살았다.
○ ‘나쁜 손’에 떠는 여성 방문근로자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수도검침원뿐 아니라 가스검침원, 정수기 렌털업체 직원 등 고객의 집을 직접 방문해 일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이 급증하고 있다. 업체들도 여성의 임금이 싼 데다 남자 직원이 방문하면 여성 고객이 문을 열어 주길 꺼리는 경우가 많아 여성 직원을 선호한다. 한 대형 정수기·비데 렌털업체의 방문 직원 1만3500여 명 중 85%가 여성이며, 수도권의 한 도시가스업체 검침원의 75% 이상이 여성이다. 대부분 40, 50대 주부인 이들은 적은 월급이지만 생활비, 자녀 교육비에 보태려고 억척스럽게 일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이다.
그러나 경북 의성에서 살해된 김 씨 사건이 보여 주듯 홀로 남의 집을 방문해야 하는 여성 방문 근로자들은 예기치 않은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2011년 A 씨(55·여)는 자녀 대학 학비를 마련하려고 가스검침원 일을 시작했다. A 씨는 고객의 집에 들어가 가스검침을 하는 데 걸리는 ‘5분’이 세상에서 가장 길게 느껴진다고 했다. 특히 집 안에서 여자나 어린아이 목소리 대신 남자 목소리만 들리면 더 불안하다. A 씨는 “혼자든 여럿이든 남성만 있으면 겨울에도 팬티만 입고 문을 열어 주는 일이 흔하다”며 “야한 농담을 건네고, 차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고, 뒤에 서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사람도 있다”고 토로했다.
정수기 렌털업체 직원 B 씨(45·여)도 남자 고객의 성희롱이 고민이다. B 씨는 “70대 노인이 ‘딸 같다’며 자꾸 어깨를 주무르고 안으려고 해 피하다가 나중엔 나보다 나이 많은 동료에게 점검을 부탁했었다”며 “그 노인은 대신 간 동료의 가슴을 무턱대고 만지더니 ‘딸 나이라 그런 거니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황당한 사고를 당해도 참아야 한다. 정수기 렌털업체 직원 C 씨(53·여)는 지난해 11월 고객이 기르던 애견에게 종아리를 물렸다. 주인은 사과는커녕 “사람을 절대 물지 않는 강아지인데 왜 당신만 물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C 씨는 “우리는 고객이 본사에 불만 접수를 하면 평가점수가 깎이고 예절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성희롱 등 각종 횡포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정신질환 남자에게 위협을 당해 혼비백산 도망친 사례도 있다.
○ 범죄 예방 대책은 메모지?
불안에 떠는 여성 방문노동자들은 각자 노하우를 공유하며 범죄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가스검침원 이모 씨(51·여)는 집 주인의 양해를 구하고 현관문을 열어 둔 채 집 안에 들어간다. 이 씨는 “겨울엔 춥다고 문을 못 열게 하거나 일부러 문을 갑자기 닫아 버리는 남자가 많아 별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검침원은 평소 행실이 나쁜 남자가 있는 집을 메모지에 적어 동료와 돌려 읽기도 한다. 또 방문하기 전에 집으로 전화를 걸어 여성이나 어린이가 있는지 확인하고 찾기도 한다.
업체들은 방문노동자 안전 대책엔 손을 놓고 있다. 한 도시가스업체 관계자는 “가정을 방문했을 때 범죄 피하는 방법을 따로 교육하지 않는다”며 “다만 피해를 본 검침원이 있으면 다음 번 방문엔 남자 검침원을 보내는 등 지사별로 해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렌털업체 관계자는 “인적이 드문 곳이나 유흥가엔 남자 직원을 보낸다”며 “두 달마다 가정을 방문해 충분한 신뢰를 쌓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남성만 있는 공간에 여성 검침원이 홀로 방문하면 충동 범죄가 일어날 위험성이 높다”며 “가급적 2인 1조로 검침하도록 하는 등 최소한의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훈상·김성모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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