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향기

젊어도 보았네 늙어도 보았네

엄마라는 나무에 자식이라는 꽃을 피워 그 향기가..."

시인의 숲(명시의 향기~)

가을의 시.박인환 외 5인..,

가을비 우산 2015. 10. 18. 08:00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 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가을의 노래 / 베를랜느 가을날 바이올린의 서글픈 소리 하염없이 타는 마음 울려 주누나 종소리 가슴 막혀 창백한 얼굴 지나간 날 그리며 눈물 짓는다 쇠잔한 나의 신세 바람에 불려 이곳 저곳 휘날리는 낙엽이련가
    석류 / 발레리 너무 많은 알맹이에 버티다 못해 반쯤 방싯 벌여진 단단한 석류여 스스로의 발견에 번쩍거리는 고귀한 이마를 나는 보는 듯 하다 오오 방싯 입 벌린 석류여 너희들이 겪어 온 세월이 오만하게도 너희들로 하여금 애써 이룩한 홍옥의 칸막이를 삐걱거리게 해도 또한 껍질의 메마른 황금이 어느 힘의 요구에 따라 찢어저 빨간 과즙의 보석이 되어도 그래도, 그 빛나는 균열은 비밀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내가 지닌 영혼을 생각케 한다
    가을 노래 / 오든 이제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니 유모(乳母)의 꽃도 저버리겠네 유모(乳母)들은 무덤으로 떠나버려 유모차(乳母車)들만 굴러 다니네. 속삭이는 이웃들이 좌우에서 우리의 참다운 기쁨을 송두리채 앗아가고 우리의 일손들이 각 무릎 위에서 쓸쓸하게 얼고야 만다. 등 뒤에서 망령들이 수백이야 멍청하게 우리를 뒤쫓으며 불끈 쳐든 책망의 팔들은 그릇된 사랑의 자세, 앙상한 숲속에서 굶주리기에 먹이를 찾아 호통치며 치닫는 허깨비들 나이팅게일은 노래를 잃고 천사도 보이지 않는다. 차갑고,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 산머리가 앞에 솟는다. 그 곳엔 하얀 폭포가 있어 나그네들이 마지막 피로를 풀 수도 있으리라. 시들어 가는 유원지 게으르게 가 보자, 시들어 가는 유원지로 아득히 먼 곳, 바닷가, 아련한 빛 찾아 정한 구름들, 홀연한 푸른빛 찾아 연못하며 황홀한 작은 길 더욱 빛난다. 흰버들, 화양목, 짙은 노랑빛 부드러운 회색잎들 꺾어보면, 바람도 따스하여, 철 늦은 장미도 시들지 않아 가려 내어 입맞추고 화환을 엮어 보자. 여기 피어 남은 한 송이 수국도, 들포도 넝쿨에 얽힌 자홍색 잎들도 잊지를 말자. 아직도 푸른 생명 살아 남는 것 가벼운 가을 빛으로 엮어 보아지고,



    사랑 사랑 내 사랑 / 오탁번 논배미마다 익어가는 벼이삭이 암놈 등에 업힌 숫메뚜기의 겹눈속에 아롱진다 배추밭 찾아가던 배추 흰나비가 박넝쿨에 살포시 앉아 저녁답에 피어날 박꽃을 흉내낸다 눈썰미 좋은 사랑이여 나도 메뚜기가 되어 그대 등에 업히고 싶다


    다시 찾아온 구월의 이틀 / 류시화 구월이 비에 젖은 얼굴로 찾아오면 내 마음은 멀리 간다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가장 먼 곳 오솔길이 비를 감추고 있는 곳 돌들이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곳 내 시는 그곳에서 오고 그곳으로 돌아간다 그 구월의 하루를 나는 다시 숲에서 보냈다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려 양치류는 몰라보게 자라고 뿌리보다 더 뒤엉킨 덩굴들 기억이 들뜨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누르고 있는 바위들 그곳에 구월의 하루가 있었다 셀 수 없는 날들을 타야만 하는 불씨가 있었다 얼마나 자주 이곳에 오고 싶었던가 그렇다. 나는 이곳을 떠나왔었다 그렇게도 오래 나 혼자 모든 흐름이 정지했었다 다만 어디서 정지했는지 알 수 없었을 뿐 어느날 밤에는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맑아서 창에 이마를 대고 밖을 내다보았다 어떤 물결이 내 집 앞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별들은 집 뒤 습지에서 밤을 지새고 그때는 생각들이 온통 내 삶을 지배했었다 뒤엉킨 뿌리처럼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디 그것이 아니다 나는 그곳을 떠나온 것이 아니었다 눈을 돌리기만 하면 그곳에서 비 내리는 구월의 이틀이 있다 비와 오솔길이 소나무를 감추고 있는 곳 쐐기풀이 구름에게 손을 흔드는 곳 한때 그곳에 얼음에 갇힌 시가 있었다 내 안에 불을 일으킨 단어들이 있었다 곤충들을 움직이게 하고 심장을 빨리 뛰게 하던 것이 구월의 끝에서 나비들은 침묵하고 별들은 흔들린다 그 구월의 이틀이 지난 뒤 비와 돌들의 입맞춤으로 파해처진 길 위에서 눈먼 자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등 뒤로 예언을 하고 곧 누군가가 길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그곳에 적힌 시를 읽으리라 다시 얼음에 갇힌 시를


사랑하는 블방 이웃님들 향기차 한잔하세요^^*



'시인의 숲(명시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냥개비 사랑/프레베르  (0) 2016.02.24
봄 / 윤동주  (0) 2016.02.13
사랑의 말 / 김 남조  (0) 2015.07.20
그대 앞에 봄이 있다 / 김종해  (0) 2015.05.16
내 안에 피어나는 봄 / 김 춘경  (0) 201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