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향기

젊어도 보았네 늙어도 보았네

엄마라는 나무에 자식이라는 꽃을 피워 그 향기가..."

시인의 숲(명시의 향기~)

가을에는 / 최영미

가을비 우산 2016. 8. 27. 06:00


 
가을에는 / 최영미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지는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갸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무작정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대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시인의 숲(명시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잠(思箴)-이규보(李奎報 )  (0) 2017.02.01
얼굴  (0) 2016.12.14
성냥개비 사랑/프레베르  (0) 2016.02.24
봄 / 윤동주  (0) 2016.02.13
가을의 시.박인환 외 5인..,  (0) 2015.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