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시인 심련수의 대표시 해설
- 일제 암흑기와 심련수 문학의 개요 - 이 재 호(시인 . 한국언어철학연구회장)
20세기 중국조선족 문학사료전집 제1권으로 심련수문학전집이 발간되었다는 것은
우리 문학사에 있어 일제 시대를 조명할수 있는 획기적인 자료라 할수 있을 것이다.
비록 뒤늦긴 했지만 국내에서도 주요 일간지와 방송 등에 소개된 암흑기의 시인 심련수는
한국문학사를 다시 정리하는데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1930년대 후반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점점 가혹하기만 했던 일제의 폭압은 친일문학을 양산케
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들 친일 문학은 문학이라 할수 없을만큼 질량적으로 함량미달이었다.
우리 국내와는 다르게 비교적 민족의식을 고취할 수 있었던 당시 간도지역에는 우리나라 학생
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순수한 한글 문학 세대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우리 언어
연구에 있어 새로운 조명을 받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심련수는 재학중 문예반장
이었다는 것이고 그 당시 중학생 신분으로 만선일보에 이러한 작품을 발표한다.
시 : 대지의 봄
봄을 잊은듯하던 이 땅에도/소생의 봄이 찾아오고/
녹음을 버린듯이 얼었던 강에도/얼음장 내리는 봄이 왔대요.
눈 위의 마른풀 뜯던/불쌍한 양의 무리/새 풀 먹을 즐거운 날/
멀지 않았네/넓은 황무지에단/신기루 궁을 짓고/
새로 오신 봄님 맞이/잔치놀이 한다옵네
옛 봄이 가신 곳/내 일 바빠 못 왔길레/
올해 오신 이 봄님은/ 누구더러 보라 할꼬
시 : 여창의 밤
길손이 잠못 이루는/이 한밤/
호창의 희미한 등불/더욱이나 서글퍼요
갈자리 튼 눈에는/뭇손의 여진이 절어 있고/
칼자리 난 목침에는/여수가 몇천번 베어졌댔나
지난 손 홧김에/ 애꿎이 태운 담배 꽁다리/
구석에 타고 있어/마음 더욱 설레인다
어두운 이 밤길에 달리는 여차/왈그럭 덜그럭/
호마의 발굽과 무거운 바퀴/이 마음 밟고 넘어 가누나
소년아 봄은 오려니
봄은 가까이에 왔다
말랐던 풀에 새움이 돋으리니
너의 조상은 농부였다
너의 아버지도 농부였다
전지는 남의 것이 되었으나
씨앗은 너의 집에 있을 게다
가산은 팔렸으나
나무는 그대로 자라더라
저 밑의 대장간 집 멀리 떠나갔지만
끝 풍구는 그대로 놓여 있더구나
화덕에 숯 놓고 불씨 붙여
옛소리를 다시 내어 보아라
너의 집이 가난해도
그만한 불은 있을게다
서투른 대장장이의 땀방울이
무딘 연장을 들게 한다더라
너는 농부의 아들
대장의 아들은 아니래도…
겨울은 가고야 만다
계절은 순차를 명심하자
봄이 오면 해마다 생명의 환희가
생기로운 신비의 씨앗을 받더라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안겨준 시가 별로 없었던 시기에 <소년아 봄은 오려니>와 같은 시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은 눈물겹도록 감동적이다.
3. 심련수 시인의 시적 언어
민족시인 심연수 선생은 시의 종결어미에 있어 남다른 언어 씀씀이를 보이고 있다.
들으라, 부르라, 보라 할꼬. 배였구나, 설레인다, 가누나, 가버린다, 주려무나, 스며든다,
찾더라오, 어찌한담, 왠일인고, 나이다, 주었소, 으리니, 오리다, 얻노라, 쉬다니, 소이다,
오지요, 자란다, 큰다, 굶어라, 네것이다, 로다, 납소, 소서, 는고, 세라, 으리라, 더이다,
졌구나, 일이냐, 맞노라, 스럽다, 것이다, 봐라, 하여라, 들이다, 었다, 알리라, 다녔다, 하구나,
였구나, 싶구나, 좋겠소, 하나니, 이냐, 하라, 한다, 간다, 썼다, 란다
이러한 언어의 씀씀이는 주의시적 의지의 시풍을 형성하는 데 있어 사용되는 시적 용어임을
알 수가 있다. 선구자적 언어의 배열을 몸에 익힌 듯한 이 종결어미의 사용은 심연수 시인의
시 도처에서 발견될 뿐만 아니라, 왜 이러한 주의시적 시관을 통해 역사적 격변과 충격을 시적
위안으로 삼았는지 그 심층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관조일 것이다.
고집
고집을 써라 끝까지
티끌만한 순종도 보이지 말고
타고난 엇장을 굽히지 말라
벽을 문이라고 우기고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우기고
소금이 쉬여 곰팡이 낀다고 뻗치라
우기고 뻗치다 꺾어지건 통쾌해도
뉘게다 굽석거리는 꼴은
보기 싫도록 역겨웁더라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선쟁의 의도는 절개와 같은 것이다.
일제의 수탈이 극심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할 때 시 <고집>이 뜻하는 민족정신의 뚜렷한 목적이
근본적인 물음에 접근하고 있다. 선생은 이 시를 통해 “티끌만한 순종도 보이지 말” 것을 강변
하면서, 우리의 “타고난 엇장(비분, 기개, 고집불통, 비타협)”과 같은 절개를 가질 것을 주문한다.
“벽을 문이라고 우기고(=절망을 희망이라 하고) /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우기고(=일제의 거짓말을
비유하고 있음)”에 유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선생은 <고집>이라는 이 시에서 그 저항의 본질을 이렇게 표현했다.
“소금이 쉬여 곰팡이 낀다고 뻗치라” 즉 사랑이 썩어 냄새난다고 뻗치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뻗치다의 말뜻이 갖는 시적 의미는 위에서 말한 절개의 정신과 맥을 잇고 있다.
그러면서 차라리 꺾어질지라도 타협하거나 일제에 순종하지 말 것을 고집이라는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다. *뉘게다(누구에게) 굽석(굽신)거리는 꼴은 / 보기 싫도록 역겨웁더라” 하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일제 치하에서 죽음을 뜻하는 일이었다.
턴넬
길다란 턴넬
감캄한 굴 속
자연이 가진 신비를
뚫어놓은 미약한 힘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찾아도
밟히우는 송장
바닥 가득 늘어자빠진 꼴
아, 빛이 없어 죽었나
그러나 또 무수한 생명이
레루를 베고 침목을 베고 누워
지나갈 바퀴를 기다리고 있음을
또 어찌하리
싸늘한 송장의 입김에서 들려오는
울부짖는 소리
우를 우러러도
아래를 굽어보아도
캄캄한 굴 속, 캄캄한 굴 속
시의 본성, 곧 시란 무엇인가? 시는 어떤 예술인가? 시는 어떤 언어인가?
시는 어떤 역사와 사회적 문화 현상인가? 시는 어떤 심혼의 소산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선생으로 하여금 일제의 흉탄에 돌아가시기까지 계속된 과제였을 터이다.
시가 당시의 현실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알고 있었던 선생으로서는 민족
문학을 위한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1943년 일본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오던 해에 창작된 것으로 알려진 시 <턴넬>은 선생의
문학적 삶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으나, 이 시를 읽지 않으면 심연수 선생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겠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터넬과 선생의 시 터넬이 뜻하는 의미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길다란 턴넬(=일제의 오랜 억압) / 캄캄한 굴 속(=일제 식민 치하에서의 생활)
/ 자연이 가진 신비를 / 뚫어 놓은 미약한 힘(=일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우리의 희망)
/ 눈을 감고 걸어도 / 눈을 뜨고 걸어도 / 밟히우는 송장(=일제 식민 치하에서 죽어간 백성들의 시체)
/ 바닥 가득 늘어자빠진 꼴 / 아, 빛이 없어 죽었나 / 빛이 싫어 죽었나(=자포자기한 상태의 암울한
현실을 비유) / 그러나 또 무수한 생명이 / 레루(레일)를 베고 침목을 베고 누워 / 지나갈 바퀴를
기다리고 있음을 / 또 어찌하리”
일제는 그들의 야욕을 위해 철도를 건설했으나 철로에 놓인 침목의 수만큼이나 많은 우리의 백성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다는 것은 이 시는 확실한 증언처럼 증명하고 있음이다.
“싸늘한 송장의 입김에서 들려오는 / 울부짖는 소리”
선생께서 턴넬을 바라볼 때마다 일제가 학살한 우리 민족의 귀중한 목숨들과 그 영혼의 처절한 울음
소리를 귀에 쟁쟁 듣지 않았으랴. “우를 우러러도 / 아래를 굽어보아도 / 캄캄한 굴 속, 캄캄한 굴 속”
이 시의 자아의지가 턴넬이라는 제목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턴넬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민족의 현실을
적극적인 의지로 표현할 수 있었다는 데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선생의 문학은세계를 지성적으로 갈파하고 있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봄의 뜻
읽고서 알았쇠다
님마음 알았쇠다
보고서 알았쇠다
님마음 알았쇠다
글자마다 살았고
구절마다 뛰더이다
─ 원문(당시 사용되는 언어)
읽고서 알았습니다
님 마음 알았습니다
보고서 알았습니다
님 마음 알았습니다
글자마다 살았고
구절마다 뛰고 있습니다
─ 수정(현재 사용되고 있는 언어)
이 시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 즉, 봄을 뜻으로 풀이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전체 6행의
시적 언어 의미가 ‘알았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봄을 읽고 알았다는 것은 님이라고 하는 마음을 말한다. 여기에서 님은 봄이 뜻하는 개화와 해방의
님인 것이다. 보다 더 의미심장한 싯구는 “글자마다 살”아 있다는 것과 그 “구절마다 마음이 뛰고
있”더라고 하는 내적 의미의 완결성이다.
봄의 뜻이 담고 있는 독창성은 개성이다. 이러한 개성이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시적 언어의
주제의식이 참신해야 한다. 따라서 심연수 시인의 문학적 이원성은 봄이라고 하는 의미를 뜻으로
파악하고 있는 데서 이 작품의 독창성과 함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비록 짧은 시이긴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 또한 충족하고 있다. 봄의 뜻이 말하고자 하는 심미성,
대중성, 상징성이 시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어서 살아 있는 정서를 경험케 한다.
따라서 원문과 수정된 시를 함께 싣는 것은 1940년대 당시에 사용된 우리말의 씀씀이를 이해하기
위한 것으로 참고되어야 한다는 뜻에서이다.
새벽
미명의 광야를
달리는 자 누구냐
동 터올 새벽을 기뻐 맞을 젊은이냐
짧아진 희대에 활활 붙는 불
새빨간 불길이 춤을 춘다
푹푹 우그러든 자국마다
땀이 고였고
대기를 몰입한 듯한 호흡의 율동
지심을 놀랠 만한 그 무보(武步)는
피 묻은 싸움의 여세(餘勞)의 연장
암흑을 익힌 개선장병아
분투의 앞에 굴복한 과거는
캄캄한 어둠 속에 쓰러졌다
승리자여,
만난을 극복한 투사여
오래지 않아 서광이
그의 얼굴을
그의 몸을 비치리니
속으로 웃어 마음에 간직하라
잡고 있는 횃불 아래
따라오는 무리의 갈 길을
가르쳐주라
해 돋는 동쪽 하늘가
넓고 넓은 그곳으로
심련수 시인의 일반적인 시들의 주제가 주의시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어두운 시대에 대한
고뇌와 자아 성찰이 비교적 쉽고 상징적 표현 속에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회의와 번민, 처절한 고독 속에서의 희망을 잃지 않는 새벽을 꿈꾸는 자세는 예언자적
미명을 기다리고 있다. 지성의 면모를 보는 듯하지 않는가? 시대의 현실을 통찰하는 이 역사적
자아의 승화는 심연수 시인의 정신적 지향을 의미하기도 한다.
새벽이라는 이 시의 주제의식은 우리 민족의 해방에 대한 간절함을 비유와 은유기법을 이용해서
작품화했다. 시인의 시적 소재는 실제의 사건과 그 일어날 것에 대한 개연성과 필연성을 동시에
갖는다.시가 역사보다 더 철학적일 뿐 아니라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보편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편성이란 우리 민족의 미명인 해방이라는 현실적인 명제가 내재되어 있으므로
이 가능성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암흑을 익힌 개선장병아 / 분투의 앞에 굴복한 과거는 / 캄캄한 어둠 속에 쓰러졌다 / 승리자여,
/ 만난을 극복한 투사여” 오래지 않아 서광이 비칠 것이니, 이때 마음 속으로 웃고 그 섭리를
마음속에 간직하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등불
존엄의 거룩한 등불이
문틈으로 새어 나오다가
한줄기 폭풍에 꺼져버렸습니다
그 옛날 조상께서
처음 켠 그 불이
그동안 한 번도 꺼짐이 없이
이 안을 밝혀 왔습니다.
그들은 그 빛을 보면서
옛일을 생각하였고
하고 싶은 말을 하였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어둠 속에서
촛불을 켜는 이 있으니
또 다시 밝아질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그 등잔에는 기름도 많이 있고
심지도 퍽으나 기오니
다시 불만 켜진다면
이 집은 오래 오래 밝아질 것입니다.
이 시의 시적 언어의 특성은 함축적인 의미의 서정을 예언자적 목소리로 표출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서정적 자아는 민족의 역사적 숨결을 느끼게 한다.
들불
임자 모를 불
거침없이 타는 천리 저쪽 녘
누가 놓은 블씨이기에
저토록 꺼짐 없이
밤하늘을 붉히느뇨
사정없이 타오르는
불길! 불길! 불길!
끌래야 끌 수 없는 위대한 작탄!
언제까지 이 들판에 살아 있을지
어두운 저녁 혼자 보는 들불
그 불똥이 이 가슴에 튀어오기를
삼가 경건히 머리 숙이고
말없이 숭엄히 바라보노라.
l945년 2월 16일, 이 날은 윤동주 시인이 옥사한 날이다.
1945년 8월 8일, 이 날은 심연수 시인이 학살된 날이다.
여기에서 윤동주와 심연수라는 두 시인 가운데 왜 윤동주 시인은 우리에게 알려졌으며 심연수
시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이토록 뒤늦게 발굴되어야 했는지 그것이 궁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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