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詩語)는 신호다 (수정)
내 이름은 서흥식이다.
내 이름은 나를 상징하는 것일 뿐 내가 아니다.
내 이름은 사람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진다.
나를 모르는 사람은 내 이름에서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한다.
나를 아는 사람은 기억에서 내가 누군지 금방 찾아낼 거다.
단어는 대상을 상징하는 것일 뿐 대상 자체가 아니다.
단어의 의미는 사람의 기억에 따라 달라진다.
굴참나무를 모르는 사람은 그냥 참나무 일종이거니 한다
굴참나무를 아는 사람은 독특한 나무껍질을 떠올릴 거다.
단어가 모여서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서 글이 된다.
단어의 의미가 사람의 기억에 따라 달라지듯
문장의 의미도 사람의 기억에 따라 달라진다.
<호젓한 산길 굴참나무 밑에서 두 연인은 포옹했다.>
이 문장은 한 가지 의미로만 해석되지만 그건 포괄적 의미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는 독자마다 달리 본다.
포옹해본 경험이 없는 독자는 그냥 막연하게 상상할 테고
경험 많은 독자는 포옹하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또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생길지 생생하게 그려낼 것이다.
이렇게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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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문장은 명확 간결하게 써야하는 것인데,
독자마다 글을 달리 보게 한다면 그건 잘못 아닌가?
대충 묘사하지 말고
두 연인이 포옹을 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주 치밀하고 자세히 적어주면 될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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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말로는 쉬운 것 같아도 실제로는 퍽 어렵다.
아주 자세히 적으려면 글이 너무 길어진다.
독자는 지루하고 산만해질 거다. 글을 덮고 싶어질 거다.
또, 그림은 글로 나타낼 수도 없다.
예로, 호젓한 산길이니 굴참나무니 하는 것도
글로는 그 이미지를 나타낼 수 없다.
언어는, 언어 자체만으로는, 표현력이 빈약하다.
언어로는 이미지를 명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또 경험도 명확히 표현하지 못한다.
의미(이미지, 경험, 사실, 생각)를 언어로 전달하려면
독자 머릿속에 있는 경험과 지식을 이용해야 한다.
특히 시가 그렇다.
몇 문장 안 되는 시에다가
몇 천 자 분량의 산문을 욱여넣어야 하는 판이다.
몇 안 되는 문장에다 몇 천 자를 올려놓을 수는 없다.
방법은 하나다.
독자 머릿속 경험과 지식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독자의 기억을 일깨우는 시어를 찾아내어야 한다.
시는, 그저 산문에서 요점을 뽑은 게 아니다.
시는 노래다.
가락이 있고 울림이 있어야 한다.
울림은 언어 혼자서는 만들어내지 못한다.
독자 스스로 그걸 찾아서 느끼게 해야 한다.
시어는 신호다.
그걸 계기로 독자 스스로 노래를 부르는 거다.
2016.7.8. (7.9. 참고사항 추가함)
서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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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
----- 시의 울림에 관하여
-1-
우선은 <시상>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하지요.
그러자면 독자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는 거구요.
시는 산문보다 훨씬 짧기 때문에 특히 그렇구요.
-2-
또 하나는, 시는 산문이 아니니까 울림이 있어야 해요.
독자의 마음을 진동하게 만들어야 좋은 시죠.
울림은 기본적으로 시인 스스로 울림을 느껴야
독자도 그걸 느낄 수 있죠.
-3-
울림에 관해서 몇 가지 추가합니다.
1) 시인이 울림을 느꼈더라도 그걸 독자에게 제대로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느낌을 표현하는 건 퍽 어렵다. 독자의 경험과 지식을 이용해서 전달해야 그나마 일부 가능할 거다.
2) 시인 혼자서 과잉 반응하는 수도 있다. 이건 전달할 방법이 없다. 독자가 <과잉 반응하는 시인>이 아닌 바에는.
3) 시를 쓰면서 울림을 찾는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막연하게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가 울림을 만나는 거지.
4) 시인은 그냥 담담하게 썼는데, 독자가 울림을 느끼기도 한다. 시인이 무심코 쓴 어느 시어가 독자를 흔드는 경우다.
5) 경험과 지식이 풍부할수록 울림 있는 시를 짓기 쉽다. 맹탕 상상으로 쓴 시에는 울림이 잘 안 생긴다.
6) 시를 잘 다듬으면 울림 생성에 도움이 된다. 예로, 독자 두뇌를 활성화 시키는 단어 (개념어 대신 구체어), 시각적인 연나누기와 행나누기, 리듬감을 주는 운율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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