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향기

젊어도 보았네 늙어도 보았네

엄마라는 나무에 자식이라는 꽃을 피워 그 향기가..."

창작.(자작· 수필&산문&시...

그리운 옛날이여...

가을비 우산 2006. 11. 12. 22:55

그리운 옛날이여/김귀수

 

겨울이 온다.  

꽃 지고 잎 진 황량한 대지위로

겨울이 온다.

추수 끝 난 논밭에는 참새 떼 재잘대는 소리...

불청객처럼 무리지어 찾아든 갈가마귀 떼는

문상객처럼 전봇대마다 줄을 타고 앉아 ,

나뭇가지마다 가지를 타고 앉아,

음침한 날개를 쉬고 있다.

떨어지는 낙조가 새들의 붉은 깃털처럼

강물위에서 물결을 탄다.

 

얕은 물위로 얼굴을 내민

작은 돌덩이들이 출렁대는 물결따라

수영이 서툰 아이처럼 흘떡이며 숨 찬 자맥질을 한다.

산을 기대고 앉은 마을 집들의  통나무 굴뚝 위로

부지런한 아낙들의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울타리 밑에 흙을 파고  둥지를 털고 졸고있던 암닭이

개구장이의 손사래에 놀라

꼬꼬댁 홰를 치며 닭장 속으로 줄행랑을 친다.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든 누렁이가

낮은 포복자세를 하고

왈왈대며 덩달아 짖어댄다.

남은 햇살마져도 산그늘 뒤로 내려앉고

지친 농부들의 평안한 안식을 배려하듯

종일 골목을 휘몰아 먼지를 일으키든

거친 바람도 대나무가지 끝에서 고요한 휴식에 들었다.

 

하나 둘 씩

희미한 불빛을 챙기며 짙은 어둠이

마을을 감싼다.

간간히 들고양이들의 앙칼진 울음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트리고

먼 발자욱소리만 듣고도

충실한 누렁이놈 왕왕 짖어가며

막걸리 한 잔 으로 기분이 좋아진

주인의 귀가를 반긴다.

 

시골집 저녁 끼는 항상 이르다.

겨울의 긴 밤  잠이라도 늦들라치면

어른 아이 없이 배속이 출출해진다.

때 맞추어 챙겨 주시는 어머니의 야참들...

쌀얼음이 동동 뜨는

동치미 국물에 아삭거리는 잘 삭은 무우 조각들.

군불 지핀 아궁이에서 꺼내 오신 달콤한 군고구마...

화롯불 속의 군밤도 꺼내 먹고...

장독간 큰 항아리에서 홍시도 꺼내 먹고...

 

아!

입맛 돋구는 감칠맛 나는 고향의 먹거리들...

뜻뜻한 사랑체 아랫목에 둘러 앉아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 들으며 겨울밤이 깊어 간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머릿결에 바늘을 문질러가며

아이들 헤진 양말 꿰매시는

어머니 모습도 보인다.

교과서속에 포개어 킥킥대며 이불 뒤집어 쓰고

 만화책 읽던 내 모습도 보인다.

 

언제라도 눈 감으면

성장을 멈춰버린 아이 때 그 모습으로

젊은 어머니 곁의 내 모습이

흑백 영상으로 생생하게 떠 오른다.

이제는 돌아 갈 수 없는

아! 그리운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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