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일요일, 태풍주의보가 내려저있는 가운데도 지인의 권유로 친구 두 명과 계원 언니 한분이랑 경북 울진군
백암산으로 복더위속 산행을 따라 나섰다. 관광버스 기사가 안내방송으로 태풍이 와도 우리가 산행을
마치고 하산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고있을 즈음 그때쯤이나 올것이라는 호언장담이었다. 그런데
이도저도 몽땅 빗나간 날씨 정보였고 하루 종일 우라지게 뜨거운 땡볕이 내려쬐는데 이건 뭐 땀으로
세수한다는게 옳을 듯, 어휴! 더워도 넘넘 더워... 각자 도시락 지참이라기에 조금씩 먹거릴 챙긴
배낭은 또 왜그리 무겁게 느껴지던지 에혀 돈 들여 고생 옹팡지게 한 하루였다. 온유월 염천에 콩밭을
메는게 차라리 났겠더라... 오죽했으면 원래 목표지였던 백암산 폭포를 그만두고 가까운 계곡으로 코스를 바꾸기
까지 했을까? 이런건 완전 내 스타일 아니야. 멋 모르고 따라나서긴 했지만 알고보니 이사람들은 울산 재래
시장(신정시장) 사람들이 주축이된 산악모임이였다. 우리가 숫기가 없는 건지 그들과 쉬 어울리질 못하고
겉돌아야했다. 당당하게 회비내고 따라왔는데도 영 서먹서멱, 사실 상인들끼리 단체라 그런지 객식구인 우리를
그닥 살갑게 챙기지는 않더구만. 기존 회원들의 공석이 생기니까 버스 한 대의 인원을 채우려 비회원으로 우리를
하루 섭외한 모양이야. 자기들은 자기들 대로 우리가 따로 논다고 볼수 있었겠지만 그건 아니지, 손님을 초대
했으면 당연 불편하지 않게 신경을 써줘야지... 각설하고 원래의 목표지가 바뀌는통에 시간 차가 생겨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더 경유하는 헤프닝이 벌어졌고, 그래서 일정에없던 일송정이란 곳도 들렸고 가수 태진아
동생이 간이 무대설치 관광객 상대로 영업을 했다는 영덕끝 병곡이라든가 그곳에도 들려 시간을 떼워야했다.
명색이 버스를 대절 하루 관광을 나왔는데 해도 지기전에 집에 들어갈 수는 없잖은가?. 그럼 아마 식구들에든
누구에게든 무지 쪽팔렸을 걸. ㅋㅋ! 고생 열나게 하고 돌아오는길 버스 안에서는 주객이 전도되게 우리 일행들이
음악에 몸을 맡기고는 완전 노는 분위기를 압도해버렸지, 그나마 왼종일 섭했던 마음들을 완전 우리 스스로
풀고온 셈이다. 그덕에 헤어질 때는 조금은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산악회원들과 하직 인사를 나눌수가 있었다.
눈꼽만큼 정이 들락말락? 팔월에 또 함께 해달라는 빈말같은 초대 인사를 들으면서 말이다. 기실 우리의
속마음은 콧방귀로 흥! 이었지만...
주차장에서 하차 배낭을 지고 계곡으로 진입 몇분인가 걷다보니 백암산 신선계곡 트레킹코스 안내표지판이 보이고
한소끔 땀을 훔칠 정자를 만났다, 요기서 조금 쉬어갔으면 좋겠더만 마 그냥 직진으로 패스!
말 그대로 신선계곡인지 산새는 험하지 않았지만 숲이 짙고 깊숙하게 이어지는 계곡으로 가뭄을 견디며 맑은 물이
쉬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계곡의 시작 지점에는 산사태나 홍수시의 토사유입 방지를 위한 길게 쌓아놓은 옹벽에는
벽화가 그려저 한층 신선한 느낌이었다.
신선계곡 트레킹 테크 탐방길,
오르락내리락 계단길이 많았다. 총체적으로 하체가 부실한 우리 네사람, 죽을둥살둥
걷고는 있지만 과연 몇 분을 버틸지?
아무리 햇살 따가워도 30분이라도 걷자고 굳게 다짐했지만 중간중간 계곡에 이미 자리잡고 앉은 사람들이 보이자
절로 기운이 빠진다. 지금 시간이 딱 정오에 가까우니 아주 정수리가 불이 난다. 땀을 주체할 수가 없다.
참나무 솔숲길을 지나 정상을 오르면 흰바위가 있다하여 백암산이라는데 결국은 더위에 굴복 30분을 못 걷고 가든길을
되돌아서 내려오고 말았으니 그야말로 백암산 입구에 살짝 발자욱만 남기고 만셈이다. 더위를 못참고 허둥지둥
계곡을 가로질러 건너편 물가 그늘밑에 돗자리를 깔고 배낭을 풀고 우리 넷 각자 챙겨온 먹거릴 꺼내놓자
금세 번듯한 먹자판이 만들어젔다. 켄맥주와 소주 1병을 곁들이니 산좋고 물좋고 신선놀음이 따로 없으렸다...
한참 분위기에 젖어있는데 어서 내려오라 메인팀에서 연락이 왔다. 계곡조차도 넘 더우니 바닷가 쪽으로
자리를 옮긴단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울진 바닷가의 솔밭이 우거진 월송정이었다. 월송정 솔밭앞 신작로에는 배롱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저 그 짙은 꽃빛이 햇살아래 불타는듯 검붉다.
주차장 화장실옆에는 접시꽃과 무궁화꽃이 서로 자태를 시샘하듯 꽃송이 활짝 그 자태 역시 아름답다.
솔밭 입구, 어느 분인가의 생전을 기린 공덕비 앞에서 내 친구 하나는 기념사진도 찍고...
솔밭속 정자에는 인근 주민들의 쉼터인듯 노인들이 자리를 꿰차고 앉았으니 나그네들은 발붙일 엄두도 못 내겠더라.
울진 월송정 솔밭이 울산 울기등대의 솔밭과 흡사하더라.
좌,우가 내 절친인 두 친구, 가운데는 20년지기 계원 언니,
맨 우측에 서 있는 분이 오늘 산행에 우리를 초대한 지인이다. 완전 장부 스타일, 헌데도 우리를 말발로 꼬드겨
초대만 해놓고는 살갑게 챙겨주질않아 많이 서운했다는거...
오늘 더운 하루를 함께한 시장팀 산악회원님들? 개중에는 우리처럼 하루 객원으로 따라온 사람도 있는가는 보더라.
하산주 한다면서 빙 둘러앉아서는 우리 보고는 한 잔 권하는 이가 없네. 배알이 틀려 우리 넷은 월송정 누각으로 발길을 돌렸다.
월송정(越松亭)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신라시대의 네,화랑(영랑, 슬랑, 남옥, 안양)이 이곳의 울창한 송림에서 달을 즐기며
선유(仙遊) 하였다는 뜻으로. 또 월국에서 송묙을 가저와 심었다하여 '월송정'이라고 이름이 붙여젔다는 두가지 설이 전해
진다. 해송이 숲을 이룬 월송정은 동해 푸른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누각위의 전망으로 명승지를 찾는 시인. 묵객들이
하나같이 탄복한 곳이라고 한다. 정자는 고려 시대에 창건 되었던 것을 낡고 허물어저 조선 중기 연산군 때의 관찰사
박원종(朴元宗)이 중건하였다. 1933년 옛 평해군 관사 재목으로 이축 등등, 그런 우여곡절끝에도 결국은 한말에 일본군이 철거
해 버렸으며, 1964년 제일교포 단체에 의해 콘코리트 건물로 세워젔다가 목조건물 원래의 정서를 살리지못했다하여 철거되
었다가 1980년에 현재의 정자로 개축 오늘에 이른다. 울진 월송정의 절경을 읊은 유명한 시는 숙종과 정조(正組)의 어제시,
안축, 이곡, 김시습, 이산해의 시 등 다수가 전해오며, 그림으로는 정선의 월송정도가 유명하다.
월송정 누각에서 내려다본 울진 앞바다.
동해의 맑은 물에 손발을 담그면 쪽빛 바닷물이 금세 파랗게 살갗으로 배어들것 같다.
2015, 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