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오월이면 초등 동기생들과 봄소풍을 다녀온다. 아직은 건강을 잘 유지하고있어 해마다 소풍의 즐거움을 함께하는
친구들이 늘 반갑고 감사하다. 벌써 더러는 우리 곁을 먼저 떠난 친구들도 여럿 있기에 더욱 친구들의 건강이, 또 나의
건강이 무척 신경 쓰이게 된다. 바쁜 일들로 늘 참석하던 친구들 몇이 불참하여. 서운하기도 하고... 그래도 한잔 술로 흥이
오르니 기분은 여전하게 살아 있네 살아 있어, 굿! 좋아 좋아~~ 오늘의 봄소풍은 충북 제천 월악산의 덕주사, 등산을 위주로
움직이기엔 다들 하체가 무리수(? ), 나만의 염려이기를...
얄궂데이. 야들이 아침부터 와이카노? 술배 그래 골았노, 낮술 취하면 애비, 애미도 모른다카는데...
이른 시간에 출발 하느라 다들 공복으로 집을 나섰고 아침은 가까운 휴게소에 버스를 주차. 준비해온 김밥으로 간단하게 떼운 후
요란하게 낮술로 일찍 땀들을 흘린 탓에 월악산 덕주 휴게소에 도착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는 영양 보충 하느라 다들
숟가락질이 바빴다. 그려, 마음만 젊지 체력은 영 아니여, ㅎㅎ
점심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덕주골 계곡을 끼고 덕주사 탐방길에 나섰는데 한 친구랑 화장실 다녀온 사이에 일행을 놓쳤다. 웬걸
좌측 길인데 우측 계곡으로 길을 잘못 들어 자칫 친구랑 둘이서 미아가 될뻔했다. 정말 웃겨. 아마 그때도 술기운이 남아있었나보다.
앞서간 친구들과 전화 통화를 몇 번씩하며 겨우 덕주사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이미 일행과 한참을 뒤처졌다.
덕주사 가는 덕주골 계곡은 맑은 개울물 소리와함께 수수한 자연미를 풍기며 녹색 짙어진 숲길이 한걸음 뒤처진
우리 두 사람의 발길을 산뜻하게 반겨주었다.
계곡길 따라 수경대, 학소대, 명승지가 이어졌지만 걷기가 불편한 친구랑 앞서간 친구들 따라잡기에 마음이 팔려 그 좋은 자연 풍광도
건성으로 패스, 또 패스... 챙겨간 카메라가 무색했거든.
덕주산성 동문,. 덕주산성은 신라시대 덕주공주가 부왕인 경순왕을 그리워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권토중래의
비장함으로 쌓았다고 전해진다. 나도 경순왕 후손인디. 에공 애달프라. ㅠㅠ~~
드뎌 덕주사에 도착했다. 친구들 그림자도 없다. 앞선 친구들과는 못해도 반시각은 족히 뒤쳐진듯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 친구나 나나 더 이상의 산행은 무리다 다른 친구들이 돌아올때까지 덕주사 경내나 둘러볼밖에...
월악산은 북쪽으로 남한강을 끼고, 남쪽으로 험준한 백두대간을 둘렀다. 이러한 천해의 지형 덕분에 예로부터 월악산을
장악하는 자가 한반도를 지배했다고... 지금의 충북 제천과 충주, 경북 문경 일대를 말하는 중원(中原) 지역은 삼국시대
부터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그 탓에 깊고 험한 월악산에는 수많은 역사적 상흔과 전설이 굽이굽이 서려 있단다.
덕주사는 원래 상덕주사와 하덕주사가 있었는데 현재는 하덕주사가 근세에 들어 중건하여 유지되고 있고 상덕주사는 아직까지 절터와
마애불만이 그 흔적을 가늠, 근래에 들어 극락보전의 조성 등 조금씩 불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 그래서 하덕주사를 지금은
덕주사라고 부르고 있는데 중창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대웅전과 관음전, 약사여래석불을 모신 지붕형태의 누각과 아담한 범종루가
있을 뿐 그리 크지 않은 사찰로 길이 험하지않아 산책하기 좋은 사찰이라 하겠다.
월악산 덕주사는 신라의 마지막 왕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전설이 서린 도량이다. 망국의 한을 뒤로 하고 금강산으로 떠나던 남매는
월악산에서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하고 월악산 영봉에 마애불을 조성했다. 신라 진평왕 9년(586년)에 창건된 월악사는 이때부터
덕주사로 이름이 바뀌어 1500여 년의 세월을 면면히 이어왔다. (육이오 전란시 소실 되었으나 다시 창건,)
이 돌계단을 올라서면 정면으로 대웅전이 보인다. 햇살이 하도 진하여
한낮의 열기를 머금은 돌계단을 쳐다만봐도 숨이 턱, 턱,
대웅전 좌측에 위치한 덕주사 범종각, 덕주사를 에워산 산봉우리에서 월악산이 지닌 그 웅장함이 느꺄진다.
약사전, 석불의 머리가 큰게 참 특이하게 느껴졌음, 가족의 무병장수를 발원하며 지전놓고 삼배,
덕주사 관음전 앞에 놓인 3개의 남근석. 월악산의 강한 음기에 균형을 맞추고자 세웠다고 하는데 어째 음기를 누르기엔
영봉의 덩치에 비해 1m 남짓한 남근석들은 그야말로 많이 부실한 느낌이, ㅎㅎ
불편한 걸음걸이로 함께하고 있는 내 친구, 약수 한 바가지로 월악산 정기를 받는 중,
기다리보니 보물 406호 마애여래입상까지 탐방한 친구들이 한명 두명 돌아오기 시작했다. 먼저 내려온 부산 친구캉 셋이서 기념 촬영 찰칵.
이렇게 오늘도 봄소풍 단체사진에서 나는 또 빠지고 말았다. 에혀...
우리나라에서 산정상을 영봉이라 칭하는 데는 백두산과 이곳 월악산 단 두 곳뿐이라고 하는데 백두산과 더불어
이곳 월악산도 신성시 여기던 산중에 하나인듯,
몇몇 년만에 소풍을 함께한 이 친구, 사진 찍는 포즈에서 애교가 철철,
룰루랄라, 하산하는 친구들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ㅋㅋ, 이 것이 하산주(?) 뒤쳐진 친구들을 기다리며 막걸리 한 잔씩... C~ 언능 와, 늦게 오면 국물도 없지롱,
이마가 벗겨지고 머리가 하얘져도 우리 친구들의 감성은 여잔히 소년, 소녀들이였다
덕주사 탐방을 끝내고 울산으로 돌아가는길, 조금 시간의 여유가 있어
버스 기사님의 강추로 들린 곳이 충북 괴산군 칠성면 연풍로 쌍곡로 25-6 초원의집,
초원의 집은 이 재욱 선생께서 평생을 가꾸어 온 개인정원으로 즉 돌담집이다.
하필 우리가 초원의집에 도착했을때 갑자기 한때 비가 쏟아져 혼비백산하기도...
돌을 모으는데 15 년여, 그리고 이 정원을 완성 이렇게 가꾸기까지 25 년여,
합이 40 년여를 피와 땀으로 일궈낸 가히 인간 승리라 할수 있는 멋지고 아름다운 정원이였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냥 감탄사가 절로. 와~~ 물론 입장료도 있는 유료, 그러나 반전이,
ㅋㅋ, 초원의집 안에 설치된 500원짜리 자판기용 믹스커피 한잔, 또는 엿 한봉지라니
싸도 넘 싸다.
한고향에서 나고 자란 친척이 되는 내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