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老婦)여 / 김귀수 창가에 턱 고이고 앉아 감은 듯 실눈 뜨고 먼산을 바라보니 무딘 걸음으로 여생 길 가는 검은 실루엣 어디쯤 가고 있을까? 오던 길 되돌아보니 어둠 속의 섬광처럼 삶의 애환들이 찰나로 스친다 좋은 일도 슬픈 일도 지난 것은 모두가 가슴 먹먹한 애증의 세월..... 녹슨 자전거의 체인이 돌아가듯 세월의 나이테가 삐걱 그리며 명치끝을 헤집고 뇌리를 친다 노부 (老婦) 여 마음이 못 견디게 늙기도 서럽거늘 눈물 나게 쓸쓸한 뒷모습 걸음마저 재촉할까? 남은 해가 짧다 하여도 바쁠 일 하나 없으니 이제쯤 세상일에 귀 기울이고 저무는 길도 쉬엄쉬엄 쉬어간들 어떠리..... 지는 해 서산마루에 노을빛 석양이 저리도 고우니 사위어 가는 우리네 인생도 차마 슬프도록 아름다워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