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부터 운을 뗀 제주도 여행, 기어이 올봄에 실행에 옮길 수가 있었다.
둘째 손녀 유림이가 손 잡고 아장아장 발걸음 뗄 때 가족여행 다녀온 후로 하마
햇수로 십 년이 흘렀다. 해외여행도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이제는 몇 시간씩
비행기를 탄다는 게 도저히 무리라 아쉬운 대로 그나마 제대로 여행맛 좀 내보자는
그런 발칙한 취지로 진행된 제주도 여행이다. 큵큵~~~
울산에서 제주도를 왕래하던 부산에어 항공편이 없어지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부산 김해공항까지 가야 하는 불편을 겪기는 했지만 암 커나 옆지기와 둘만 떠나는
오랜만의 제주도 여행이라 은근 밤잠 설칠 정도로 설레었는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황혼 나이에 떠나는 바다 건너 봄소풍이었다.
김해공항을 이륙 후 발 밑에 펼쳐진 남해의 풍경, 참 섬들이 많기도 하다.
예전 여행 때는 미처 못 느끼고 무심하게 지나쳤나보다.
오늘은 기류가 안 좋은 듯 비행기가 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이처럼 신이 나서 옆자리에서 연신 이야기를 하는 옆지기 때문에 귓전이 어수선했다.
저렇게도 좋을꼬? 참 나~~ 것도 잠시 삼사십 분이 금방 지나고 어느새 제주도 상공,
희뿌옇게 미세먼지(?)에 가려진 한라산 정경이 보이고 차츰 고도가 낮아지니 제주 시가지와
파도가 포말을 일으키는 해안선 풍경이 뚜렷하게 보인다. 진짜 제주도 도착이 금방이었다.
제주 공항을 나오니 우선 예상을 벗어난 싸늘한 날씨에 어깨가 웅크려 들었다. 어? 이게 아닌데?
얇은 봄 옷 속으로 스미는 싸늘한 바람이 나를 정말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으이그, 뭐 어쩔 수 없지,
추위를 견디는 수밖에.... 픽업 나온 미니 버스를 타고 가서 승용차를 렌트 후 일단은 옆지기가
고심하며 짜 놓은 일정표대로 제주도의 품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신나게 벚꽃 가로수 길을 달려서 우선적으로 찾아간 애월 벚꽃 길, 원체 어디서나 흔한
벚꽃인 만큼 미처 걷어내지 못한 축제 현수막이 아직도 걸려는 있었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애쓴 일정표가 소용 있을까 싶었다. 휘익 한 바퀴 드라이브로 벚꽃 길을
지나치며 눈에 들어온 밀감 나무 한 그루를 기념으로 사진에 담았다.
봄까지도 저렇게 열매가 달려있는 밀감 나무가 있을 줄 정말 몰랐다. 신기했다..
다음 코스로 찾은 곳은 상가리 야자숲, 여러 번 다녀간 제주도이니 색다르게 관심을 끄는 곳은
없을 듯하고 마 그냥 옆지기와 함께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며 여행 온 기분 즐기는 그저 이 설렘이
다 일 것 같았다. 눈 온날에 강아지처럼 발 빠르게 좋아라 앞서가는 옆지기를 종종걸음으로
쫓아가며 나는 연신 춥다 추워를 연발했다. "아이 C~ 제주도 봄 날씨가 와 이래 춥노?"
알고 보니 어제오늘이 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였다고.....
선인장 마을에도 들렸는데 역시나 추위 때문에 그냥 오들오들 내가 또 추위를 많이 타잖아....
올해는 윤달도 들고 야경이 좋다는 선운정사도 봐야 되는데 도저히 밤까지 버틸 용기가 없었다.
여기저기 쫓기듯이 후다닥 둘러보고는 막둥이가 소개하는 맛집 "안녕 협재씨"라는 식당 가서
먼저 저녁부터 먹고 용연 구름다리야경과 전능 벚꽃길야경이나 보기로 했다.
1시 40분 비행기라 김해공항에 미리 도착 공항 안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어야 했다.
ㅋㅋ 당연히 짧은 항공길 기내식이 없을 테니까...
탑승하러 가면서도 사진 찍고, 탑승 후에도 사진 찍고, 옆지기 때문에 제주도 여행하면서
사진 무지 찍을 텐데 사진 안에 이러다 영혼 다 빨리는 것 아닌지 몰라? 히ㅎㅎ~~~
막둥이의 첫 번째 소개 식당이 하필 휴일이라 두 번째 소개집 "도라지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먹을 만은 했지만 가격이 좀 비싸다 싶었다.
특히 갈치 찌개가 맛이 있었다. 해서 내일 통갈치 찌개 먹기로 한 건 퉁 치고 페스다.
저녁 먹고 나와서 차 안에서 챙겨 온 파자마를 바지 안에 껴 입었다.
도저히 야경 보러 다니면서 이 추위를 버텨낼 것 같지가 않아서다.
어두워지니 바람마저 거세지니 와~ 제주도 날씨 손님맞이 장난이 아니네 싶었다.
- 3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