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여행 아무리 멋진 소풍이라도 체력이 따라 주지 않으니
그저 마음만 앞서서 허둥대고, 마 내게는 당일치기 여행이 최선인 듯
고작 제주도 여행 이틀 만에 녹초가 되었다.
자고 나면 새 기운인 것도 아득한 옛말이 되어버렸고 피곤하니 되려 잠이
설쳐지고 아침이 되어도 몸이 천근만근 쉽게 피로가 풀리지가 않았다.
집 떠나올 때의 설렘도 약발이 떨어졌는지 심신이 너덜너덜, 마냥 지칠 줄
모르는 옆지기 뒤만 졸졸 따라다녔으니 그저 어이없어 쓴웃음만 나오더라,
"노세, 노세, 젊어 노세, 늙고 병들면 못 노나니"라는 노랫말이 이렇게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고 공감될 수가..... 그래도 본전 생각이 나서 죽으라고 열심히
뒤처질세라 옆지기를 쫓아다녔다. 어쩌면 내 생에 이번 제주도 여행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처량한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아~ 인생 서글퍼.....
그 와중에도 좀 고급지게 놀겠다고 이중섭 미술관도 들렸다.
간만에 죽어가는 뇌세포에 영양 공급을 좀 해준 셈이다.
그렇게 저렇게 제주도에서 일탈의 시간을 채우다 보니 또 하루 해가 지고 저녁 시간,
오늘의 마무리는 허브 동산 야경 관람. 조명빛에 이끌려 얼마나 돌아다녔던지 숙소로
돌아와 확인하니 세상에나 오늘 내가 만 오천 보 가까이 걸었다. 대박이다.
이렇게 되면 당근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내리겠지? 참 여러 가지 하는 늙은이다. ㅋㅋㅋ
허브 동산에 하나둘씩 빛이 밝혀지기 시작할 즈음에 허브 동산 바로
근처에 있는 흑돼지 구이 집에 들러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식당 내부는
제법 너른데 달랑 아저씨 한 분이 장사를 하고 있다. 주문하고 기다리자니 주부
십 단의 내공에서 오는 답답함에 온몸이 들썩들썩 참느라 애를 먹었다.
가까스로 상차림이 준비 됐는데 낮에 고등어 회를 얼마나 맛나게 먹었든지
도통 식욕이 살아 나지 않았다. 제주도의 흑돼지를 안 먹고 갈 수도 없고
나 이번처럼 성의 없게 음식을 먹은 적이 없다 싶을 만큼 정말 근성으로
저녁을 먹었다. 신이 나서 뭐든 다 사 먹일 거라고 흥이 나 있는 옆지기를 보니
이건 정말 대략 난감이었거든~~
열명 남짓한 가족 팀들이 뒤이어 식당으로 들어왔지만 더딘 준비에
손님들도 지쳤는지 허브 동산 먼저 둘러보고 오겠다며 메뉴만 정해 놓고 나갔다.
혹시나 공 칠까 봐 주인장 음식 값은 선불로 챙긴다. 그 손님들 다시 오기는
하겠더라. 뭐 둘러봐도 근처엔 여기밖에 식당이 없기도 했다.
사실 낮에는 관광하고 저녁에는 멋진 뒤풀이로 근사하게 분위기 좋은 곳에서
술 한잔 하기로 했지만 체력 방전으로 결국은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제주도에서 저녁 술자리는 갖지를 못했다.
참 살다가 보니 이럴 때도 있다니. 늙기는 늙었나 보다. 세월 앞에 장사가 없네.
~제주도에서의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