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향기

젊어도 보았네 늙어도 보았네

엄마라는 나무에 자식이라는 꽃을 피워 그 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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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이

옹이 / 류시화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니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 했으니

결혼식 스토리

남형제가 둘이지만 다 먼저 엄마 곁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남은 건 우리 두 자매뿐.... 특히나 남동생 소생인 조카 남매는 갈라선 부모 탓에 조모 손에서 키워지다가. 그마저도 부모를 일찍 여의게 되니 고모인 나에게는 가슴으로 낳은 또 다른 자식이 되어 늘 아픈 손가락이더니 영혼이 되어서도 손주들을, 아들딸을 잘 지켜 주었는지 둘 다 착하고 건강하게 성인으로 잘 자라주어 어느새 질녀가 짝을 맞아 결혼을 하게 되었다. 상견례를 하는 날 얼마나 가슴이 울컥하든지.... 다행하게 결혼식 준비에도 조금도 마음 상함이 없도록 배려를 해주시는 어진 시댁을 만났으니 동생이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감사하며 기뻐했을까 싶어 함께 할 수 없는 동생이 야속하여 두고두고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못난 놈" 지 새끼조차 나몰라..

밀린 일기를 쓰며 봄을 맞이하다

계묘년 새해 차례를 모시고 고향집 가듯 서둘러서 주과포를 챙기고 찾아뵌 엄마의 산소, 추석 때 갈아놓은 꽃이 온통 색이 바래서 다시 사다 꽂았더니 산소 앞이 화사해졌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동생도 찾아와 줘서 한참을 돗자리 깔고 앉아 우리 자매는 자식들의 일상을 생전처럼 엄마 앞에서 설대목밑에 떠나보낸 오빠이야기, 봄 무렵 결혼시킬 당신의 손녀딸 이야기까지 주저리 주저리 고해바치며 우리 자매는 울다가 웃다가 진상을 떨었다. "얼마나 외로우면 아들 둘을 다 그렇게 빨리 데려갔냐고? 그래서 이제 당신 저승살이가 더 많이 행복해젔냐고?" 두 딸들의 눈물 섞인 하소연에 날씨마저 추위가 누그러지니 무덤 앞의 시간도 견딜만했다. 이 몸이 워낙 추위를 잘 타서 말이다. 부모 없는 손녀딸 고모들이 잘 챙겨서 결혼식 치..

춘설

위쪽 지방의 눈소식을 들을 때마다 눈이 귀한 남쪽 (울산) 에 사는 나로서는 가끔 설원의 겨울 풍경이 아쉬워 부러운 마음이 들기는 했다. 어쩌다 눈이 내리는가 싶어도 이건 눈도 아니요 먼지도 아닌 것이 그저 그렇게 눈이 내리는 것인 양 잠시 흉내만 내고 스쳐가기 일수더니 올해는 웬일이니(?) 그것도 겨울이 꼬리를 내리고 매화꽃 소식이 전해지는 2월에 내 고장 울산에도 뜬금없이 눈이 내린 것이다, 그야말로 귀한 손님 같고 선물 같은 춘설이었다. 늦게 퇴근한 막둥이가 "엄마" 부르며 눈이 내린다길래 별 기대 없이 창밖을 봐도 외등 불빛 속에 비친 풍경은 그저 그랬고 밝은 날 아침에 봐도 "에게" 싶을 정도로 응달진 건물 담벼락 한편으로 가볍게 밀가루가 흩날린 듯 살짝 흔적만 남겨진 상태 더니 웬걸 병원 가려..